가난이 대물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당장의 생활에 급급한 이들은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거나, 배움을 통한 정신적인 삶을 누리기 어렵다. 소외계층에게 인문학을 가르친다는 ‘클레멘트 코스’는 지난 1995년 미국의 언론인 얼 쇼리스(Earl Shorris)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는 죄수와의 만남을 통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신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문학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서울시에서도 ‘희망의 인문학’이란 이름으로 클레멘트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와 △경희대 △동국대 △서울시립대 △성공회대는 저소득층과 전·현직 노숙인을 대상으로 매주 2회 2시간씩 6개월 과정으로 △문학 △역사 △철학 수업을 진행한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자활정책팀 안순봉 팀장은 “지난해에 시범과정을 거쳐 올해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며 “수강생들의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고 참여 열기도 뜨겁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목) 저녁, 서울 충정로역에 위치한 구세군브릿지센터에선 ‘죽음’에 대한 강좌가 열렸다. 구세군브릿지센터에선 동국대와 함께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이날 수업엔 15명의 수강생이 참석했다. 수강생들은 인사를 나눈 후 5분여 간 명상을 하며 하루 일과를 반성하고 내일의 일을 계획하는 시간을 가졌다.

수업이 시작되자 철학을 강의하는 이석주(동국대 철학과)강사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철학의 주제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를 꼽는데 죽음은 세 번째 단계에 해당합니다. 죽음에 이르기 전인 노화 단계에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강사의 물음에 수강생들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어 죽음에 관련된 영상을 시청했다. 10여 년 전 방영된 KBS 일요스페셜 5부작 생로병사의 비밀 중 ‘검은 빛 죽음’이라는 영상이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사람들 △죽은 사람을 처음 마주한 의대생 △암으로 죽은 여성과 그녀의 가족들 △대학에서 죽음학을 수강하는 학생들 △안락사 논쟁 등 죽음을 주제로 한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다. 1시간가량 영상을 보는 동안 조는 사람도,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를 뜨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고, 몇몇은 가끔 노트에 뭔가를 적기도 했다. 암으로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나오는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수강생도 있었다.

영상을 시청한 후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노숙인은 “대학에 죽음학이라는 과목이 있는 줄 몰랐다”며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죽음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데, 그런 감정을 줄일 수 있게 준비하는 차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도소를 방문해 사형수를 만난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사형수는 모든 것을 포기하니 해방된 듯한 기분이고, 욕심을 버려 마음이 편하다고 하셨어요.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이 편안한 건 죽음을 눈앞에 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함께 갔던 목사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마음속에 신이 존재하고 신 안에 우리가 존재하는데, 신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인간은 한계에서 기다리는 행위자일 뿐이라고…”

현재 강의는 중반쯤 진행된 상태다. 수강생들은 인문학 수업을 통해 어떤 것들을 깨닫고 있을까. 어느 수강생은 강좌를 들은 이후부터 밤에 잠을 덜 자게 됐다고 했다. “수업이 시작된 뒤부터 자기 전에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하루에 30분 정도 덜 자게 됐죠. 아직 제가 어떤 깨달음을 얻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업을 들으러 나올 때 걸음이 가벼워요. 또 마음이 한가해진다는 느낌도 들어요” 또 다른 수강생은 반성의 시간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동안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 모른 채 나 자신을 잊고 살았어요. 이 수업을 통해 그동안 잊었던 나 자신을 차근차근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다음 시간엔 ‘남기고 싶은 한 마디’를 주제로 유서를 써보기로 했다. 수업을 마친 후에도 수강생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책상을 정리하며 담소를 나눈 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구세군브릿지센터의 박우신 씨는 “스스로 인문학 수업을 듣고자 신청을 하신 만큼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하신 분들”이라며 “노숙 생활을 하다 보면 조급해지고 다른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데, 이들은 강좌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양식을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강의를 한 이석주 강사는 “연세가 적지 않으신데도 배우려는 의지를 갖고 오셔서 감사하고, 오히려 내가 많이 배우고 보람을 느낀다”며 “일방적으로 가르친다기보다 이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조언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루려 노력하며 적극적으로 재기를 시도하는 이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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