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법학 98) 선수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정말 크다’였다. 압도되는 느낌이랄까. 그가 말을 꺼내자 더욱 주눅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겐 익숙하지 않은 말투, 그리고 당당한 눈빛.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타자라는 수식어가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서 묻어나는 자신감은 과거의 명성, 현재의 실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중학교 때 전국대회 타격상, 광주일고 시절 대통령배 최다 홈런상을 수상하며 강타자로서의 두각을 드려냈던 최희섭이었다. 그런 그에게 메이저리그라는 새로운 세계가 다가왔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 대표로 캐나다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했어요. 사실 고교야구에서 상대할만한 투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계무대는 다르더라구요. 미국, 캐나다 선수를 상대하다보니 메이저리그의 꿈이 저절로 생겨났어요.”

최희섭 선수가 광주 출신이었으므로 당시 해태 타이거즈(현 KIA)에게 우선 지명권이 있었다. 하지만 최희섭은 고려대를 선택한다.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그였기에 학교에 대한 추억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기전을 화제로 꺼냈을 때 그의 답변은 의외였다.

“4타석 2타수 2안타, 볼넷 2개였어요.”

어느 한 경기에서 자신의 성적을 정확히 기억하는 선수가 있을까. 그는 아마추어 경기뿐만 아니라 프로에 와서도 정기전과 같은 열광적인 관중의 응원은 경험하지 못했다. 그만큼 정기전이 특별한 경기인 것은 틀림없지만, 최희섭 선수의 대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짧았지만 소중했던 학창시절의 기억일 것이다. 최희섭 선수는 경기 초반에 2점을 득점했다. “이쪽(고려대)은 난리였어요, 저쪽(연세대)은 안 좋았고. 경기 끝나고 총장님을 목마 태워서 경기장 한 바퀴 돌았어요. 이틀 뒤, 총장님이 절 부르셨어요. 몇 학년인가, 하시더니 신입생이라고 하자 놀라시더라구요. 4학년인지 아셨대요.”

최희섭 선수는 당시 얼마나 죽기 살기로 했으면 정기전 시합 단 하루만에 10킬로그램이 빠졌더라고 회상했다. 경기 끝나고 탈진 증세를 보여 쓰러진 탓에 승리 후의 달콤한 뒷풀이도 제대로 못 했다고. 10년 전 그날로 돌아간 듯 아쉬워하던 최희섭 선수다.

당시 선수들만 아는 이야기지만 1학년들이 고연전을 앞두고 팀을 대거 이탈했다. 당시 그는 4번 타자였다. 이탈의 이유는 선배들의 괴롭힘. 바로 잡혀왔지만 분위기는 소위 말해 ‘장난 아니었던 것’. “지면 죽는거죠(웃음). 팀 이탈이 진 이유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지면 그 화살이 다 이탈 사건으로 갈 테니까요. 꼭 이겼어야 했어요.”

최희섭 선수는 당시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법대를 다녔다. 그의 학교생활은 어땠을까.

“미팅, 소개팅을 한 번씩 해봤어요. 과 친구들과 잘 지냈구요. 다른 선수들은 수업을 안 가는데 저는 강의를 들으러 갔어요. 다들 저를 복학생으로 알더라구요. 다가오지도 못하고... 교수님께서 학생은 누구냐고 물으셔서 야구부 신입생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 때부터 친구들이 생겼죠. 한 친구가 소개팅도 주선해 주고” 소개팅은 잘 됐냐는 물음에 “잘 안됐으니 지금 뭐...” 하며 웃는 최희섭 선수다.

대학 시절, 박용택(LG 트윈스) 선수와 친했다. 최희섭 선수가 박용택 선수의 결혼식 사회를 봤을 정도다. 지금도 98학번 모임을 1년에 몇 차례 갖고 있다고 했다. 두 선수 외에 다른 친구들은 사회인이다. “98학번 모임이 저의 유일한 외부 모임이기도 하구요”하는 최희섭 선수의 말에서 학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두 선수 모두 이번 해에 다시 비상하고 있다. 현재 홈런 1위(5월27일 현재)인 최희섭 선수와 팀의 1번 타자로서 화끈한 공격야구를 이끌고 있는 박용택 선수. 작년에는 두 선수 모두 부상과 부진에 시달렸다. “밑바닥까지 떨어진거죠. 각 팀에서 이름값 있는 선수인데...서로에게 위로가 많이 됐어요” 하며 당시 기억을 떠올리는 최희섭 선수. 본인은 재학 시절 부상 없이 잘 해냈지만 박용택 선수는 초반에 부상을 겪었다. 최희섭 선수가 미국으로 간 후, 부상에서 벗어난 박용택 선수는 팀의 4번 타자로서 활약했다.

학교도 좋았지만 미국에 가고 싶었다. 미국으로 떠날 당시 학교와 마찰이 어느정도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런건 없었어요. 미국에 가는 조건으로 대학을 선택했던 거니까요. 부모님, 이치훈 에이전트와 학교 사이에는 어땠는지 저는 내막을 잘 몰라요. 학교에서는 3학년 마치고 가라고 했지만 사실 그때가 아니면 가기 힘들 것 같았어요. 학교를 끝까지 못 다닌게 아쉽긴 하지만 지금 돌아봐도 가기로 결정했으면 빨리 가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는 2007년에 국내로 복귀하여 기아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었다. 소속팀은 전년도인 2006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여 4위를 기록했다. 그 전 해에 8위를 한 후의 포스트시즌 진출이었기 때문에 최희섭 선수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국내로 복귀하면서 이승엽 선수의 홈런 기록을 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는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고 그에 비해 자신은 나태했다. 결국 좋은 성적을 못 낸 것은 물론이고 부상도 당하는 등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년에 비해 지금은 매우 달라진 모습의 최희섭 선수다. 그 2년 동안은 자신이 보기에도 하나부터 열까지 적응에 실패한 모습이었다. 그는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체중 감량의 영향이 크다고 대답했다.

“20킬로그램을 뺐어요.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체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혼자서 등산을 자주 갔는데, 머리도 깨끗해지고 몸도 강해졌어요. 특히 하체가 강해졌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니 뭐가 하고 싶겠어요? 야구가 하고 싶어진거죠.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최희섭 선수는 홈런 14개로 부문 단독 1위이다(5/27). 브룸바, 페타지니 선수가 근소한 차이로 뒤따르고 있다. 그는 홈런왕이 되기 위해서는 경쟁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 선수가 아니라 어느 선수나 다 경쟁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팬들은 최희섭 선수의 경기력이 향상되면서 소속팀 전체가 변화되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인터뷰 당시, 전날(5/14) 경기에서 무려 6명의 선수가 홈런을 쳤다. 이러한 팀의 변화를 느끼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그는 4번 타자로서 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부담감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본인 때문에 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팀 전체가 2008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감독님, 코치님, 선수 할 것 없이 최선을 다하고 대화도 많이 하게 되면서 팀웍(Teamwork)이 강해졌다. ‘누군가 해 주겠지’ 하는 것이 2008년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각자 ‘내가 아니면 안된다’ 하는 생각으로 임한다고.

그런데 고의사구로 최희섭 선수를 거르고 다음 타자를 상대하려는 투수들이 많이 보인다. 그는 8개 구단 모든 타자들이 기록한 고의사구 40개 중 7개를 얻어냈다. 그만큼 최희섭 섭수를 두려워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경계대상 1호구나’ 하는 느낌이죠. 제가 칠 기회를 빼앗기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죠”라고 답했다. 그가 국내 복귀 후 2년간 친 홈런이 13개였다. 이미 그 수를 넘어선 상태다. 2003년 이승엽 선수(56개) 이후로 40개를 친 홈런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페이스로는 40개를 넘기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혹시 몇 개의 홈런을 기대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이에 대해 최희섭 선수는 “목표는 홈런왕이지만 개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를 만만하게 봤던 투수들에게 이제는 제가 경계대상 선수로 보이길 바랍니다. 홈런을 많이 치기 위해서는 삼진아웃 역시 많이 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대 투수에게 위압감을 주는 거죠. 삼진 아웃을 당하더라도 스윙은 홈런 스윙처럼 할 수 있는 타자. 그래야 계속 페이스가 이어지는 것 같아요. 앞을 내다보는 건 욕심이죠. 나태해 질 수 있거든요. 사실 인터뷰를 잘 안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거절을 많이 합니다.” 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안 하지만 오늘은 학교 후배들이라 승낙했다고 옆에서 프런트 한 분이 말해주신다.

홈런 선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루 1000개 이상의 타격 연습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항상 ‘어떻게 하면 잘 칠 수 있을까’ 하는 연구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의 타격은 다 버렸다. 한국 투수에 맞게 폼을 고치는 것은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계속 연구 중이다. 최희섭에게 야구는 ‘자신감’으로 표현된다. 예전에는 자신감이 없어서 상대방만을 칭찬했다면, 지금은 아웃되더라도 ‘칠 수 있었는데 아쉽다!’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이번 시즌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 항상 목표는 우승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개인적인 목표는 홈런왕이다. 이번 시즌뿐만 아니라 야구 선수로서의 개인적인 목표에 대해 물어보았다.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일은 없고 오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죠. 홈런왕은 하나의 목표이지 제 욕심은 아니에요. 내년 아시안 게임이나 4년 후의 WBC 참가... 그런건 아직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제가 올해 2회 대회에 참가하지 못해서 자존심 상한 것은 사실이었어요. 빅 초이(Big Choi)라는 별명에 걸맞는 선수가 되어야죠.”

최희섭 선수는 일본 전지훈련 때 우리학교 야구부를 만났다(당시 우리학교는 KIA와의 연습경기에서 4-11로 패했다). 후배들이 왔다고 해서 김종국(체교 92), 김상훈(체교 96) 선수와 함께 뛰었다. 같이 경기 해 보니 후배들이 야구하는 방식을 알게 되었다. 선수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말에, 시즌 중에 치러지는 전국대회 역시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정기전 우승이라고 강조했다. 정기전에서 지면 1년이 피곤할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말이다. 학교 출신의 많은 선배들이 지켜보고 있는 정기전, 이번 해에는 꼭 승리로 장식하길 바란다고 했다. 작년 정기전을 보셨냐고 묻자 표정이 굳어지며 한동안 말이 없는 최희섭 선수다. 혹시 다른 팀처럼 고대, 연대 출신 선수들이 정기전을 두고 내기 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연대 선수가 없어서 내기는 안한다”고 답했다. “이현곤 선수가 연대 출신인데...”하자 최희섭 선수의 대답이 이어진다. “현곤이는 레벨이 안되죠, 종국이 형이 버티고 있는데(웃음).”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팀 내의 고대 출신 선배들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스포츠계에 많은 고대 출신들은 인사도 잘 하고 예의가 잘 갖춰진 것 같다며 자부심을 비쳤다.

끝으로 최희섭 선수를 좋아하는 고대 학우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대학 4년이 중요하죠. 저에게는 1년뿐이었지만 그래도 매우 소중했습니다. 지금 후배들은 잘 모르겠지만 졸업하면 고대 출신이라는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느꼈어요. 제가 시카고에도 있었고 LA에도 있었지만 어느 곳에 가나 고려대의 파워가 정말 어마어마했어요. 후배님들도 자부심을 가지세요.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공부나 운동 어떤 것이든 간에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세요. 노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전문직을 갖든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하며 후배들을 진심으로 격려하는 최희섭 선수에게서 학교와 후배에 대한 사랑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지금도 홈런왕을 위해 순항중이다. 그의 도전은 어디까지일지 기대를 해 본다.

최희섭 선배가 들려주는 슬럼프 탈출 조언!

운동선수에게 슬럼프가 찾아오는 건 2가지 이유가 있어. 야구 실력이거나 야구 외적인 이유지. 야구가 이유라면 자만했거나 노력을 안해서, 혹은 부상일거야.

부상은 어쩔 수 없이 회복기간이 필요하지만 자만하거나 노력 안하는 건 달라. 여기서 중요한 건 쉬운 길을 찾으면 안된다는 거야. 자신의 사소한 습관부터 바꿀 수 있어야하지. 오랫동안 익숙해진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해. ‘슬럼프니까 기분 전환으로 술 한 잔 하고 내일부터 새로 시작해야지’ 하는 생각은 절대 안 돼. 슬럼프는, 힘들 훈련을 통해서 본인이 바뀌는 걸 경험해야 다음에 찾아왔을 때도 벗어날 수 있어. 기술적, 정신적으로 지금과 똑같이 하면 안 되고 빨리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야해.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한다면, 누구나 될 수 있는 선수로 남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야구 외적인 이유라면 가정에 일이 생겼거나 여자친구와의 문제가 있을거야. 사적인 문제라면 냉정하게 생각하고 깨끗이 잊어버리는 게 좋아. 혼자 괴로워하지 말고 감독님이나 코치님, 선후배나 친구들에게 상담하는 게 도움이 될거야. 나는 직설적인 성격이라 바로 감독님을 찾아가는 편이야.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많이 힘들지만 다 이겨낼 수 있어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고대 야구부 파이팅!

형.저.메. 스토리
야구팬이라면 최희섭 선수에 대한 ‘형저메’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최희섭 선수에게 그 별명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굉장히 큰 오해가 있었어요.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언론에 나가버려서... 그 내용에 대해 인터뷰도 했었죠.”

김태균 선수를 격려하기 위한 농담이 심각한 말로 전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이러했다.

“WBC 1회 대회 때였어요. 승엽이 형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생긴 일이죠. 당시 한화와 연습경기를 가지면서 김태균 선수와 친해졌어요. 어느 날 김태균 선수가 화가 나 있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이승엽 선수가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했어요. 제가 ‘그럼 내가 한마디 할게’ 했죠. 저는 그때 메이저리그 출신임에도 슬럼프에 빠져서 부진했고 반면 승엽이 형은 당시에 홈런 5개로 날리고 있었어요. 그 때 제가 잘하고 있을 때였으면 그래도 괜찮았는데 말이에요. 결국 같은거죠. 승엽이 형이 태균이가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처럼, 저 역시 “형, 저 메이저리거에요.” 라고 장난으로 말한 건데. 기분 나쁘게 들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수만의 이야기로 웃고 넘기면 되는데 언론에 나와서 문제가 커진 거죠.”

최희섭 선수는 당시 WBC 대회에 아쉬움을 갖고 있는 듯했다. 사실 이승엽 선수 덕에 저희가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거나 다름없으니 도리어 고마워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평생 은인으로 생각해야죠(웃음). 언론에서 그렇게 말해도 난 괜찮다고 했어요”

언젠가 미국에서 최향남 선수를 만났다고 했다. “‘희섭이 너에 대한 소문이 안 좋더라. 그런데 너를 직접 만나보니 소문과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최향남 선수 말대로, 제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저를 알게 되고 진짜 모습을 보면 인식이 달라지지 않겠냐고 했어요.”

최희섭 선수는 민감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야구팬들의 오해를 풀고자 성실히 답변했다. 그는 이익을 구하지 말고 차라리 손해 보는 쪽을 택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항상 생각한다고 했다. 앞으로 실력과 함께 최희섭 선수의 진정한 본모습이 팬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