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13:55 (일)
빅터(Victor), 승리(Victory)를 위해 Korea로
빅터(Victor), 승리(Victory)를 위해 Korea로
  • 김민규 기자
  • 승인 2009.06.20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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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최초의 외국인 감독 빅터 리(노문 93, 한국명 이용민)에 관한 기사는 작년 6월호 ‘돌아온 빙판의 스타 빅터, 그리고 조민호’란 기획으로 한번 나갔다. 그래서 이번 외국인 기획을 하면서 빅터를 넣어야 하나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외국인’ 최초 고대 감독으로 그의 의미를 높이 평가해 이번 기사를 준비했다. 94년부터 97년까지 한국 아이스하키의 전설로 남은 그를 만나보았다.

한국과의 첫 인연

93년 자코파네 동계유니버시아드 아이스하키 러시아 대표팀에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 끼어 있었다. 그가 바로 빅터 리. 주장 김혁의 말을 빌리면 “세계 최강인 러시아 대표팀에서 에이스로 있었다”니 그의 실력을 짐작할 만하다. 출중한 실력은 팀 우승과 대회 최우수선수라는 명예로 보상받았다. 이런 빅터를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으니, 지금 우리학교 5개부 김광환 총감독(당시 석탑건설 감독). 우리나라 유니버시아드 대표를 이끌던 김 총감독은 빅터의 경기 모습을 보고 “무조건 영입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김 총감독은 러시아에 사는 지인들을 통해 빅터 영입 작전에 총력을 기울인다.

아이스하키 중흥기를 이끌다
김 총감독의 끈질긴 구애와 노력으로 빅터는 우리학교 노문과로 편입할 수 있었고, 95년 정기전에서 홀로 5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90년 이후 5년 연속 무승(無勝, 1무 4패)의 고리를 끊었다. 선수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정기전. 빅터는 당시 상황을 “당시 경기력 측면에서 힘든 점은 없었고, 너무 쉽게 이긴 경기였다. 하지만 보통선수들은 23분 정도 경기에 뛰는데 나는 거의 40분 넘게 뛰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기술적 측면에서 압도적이었던 빅터가 경기장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팀에 위협이 될 수 있었다. 95년 11월 귀화를 추진하며 실업팀에서 뛸 수 있게 된 빅터는 석탑건설에 입단, 출중한 외모와 독보적인 실력으로 아이스하키 ‘붐’을 이끌었다.빅터가 석탑건설에서 95년에 세운 경기당 평균 2.25 포인트 기록은 97년 심의식(한라 위니아)의 기록과 함께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다.

러시아에서 다시 한국으로
하지만 다른 실업팀에서 다른 러시아 선수를 ‘고려인 5세’라고 억지를 부리며 영입에 나서자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서는 말썽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외국 국적을 가진 선수는 국내대회에 뛸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스타를 잃은 한국 아이스하키는 IMF 타격까지 겹치면서 침체기를 맞게 되었고 아직도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빅터는 러시아로 돌아가 1999년 러시아 최고 스타들이 뛰고 있는 디나모(경찰팀), CSKA(군대팀), H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등 슈퍼리그와 슈퍼리그 바로 아래 1부 리그 리프챠니크 팀에서 2005년 까지 현역으로 뛰며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러시아 체육아카데미 코칭스쿨을 졸업,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러시아에 있을 때, 국내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국 팬들이 보여준 뜨거운 사랑과 동포애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지도자 생활을 한국에서 하고 싶다”고 밝힌 그는 2006년 5월 소망대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학교 아이스하키부를 맡았다. Korea를 위해 돌아온 빅터는 귀국당시 “나는 훈련을 많이 시키려고 한다. 체력에서 만족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훈련을 할 수 없다”며 체력에 중점을 둔 훈련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물론, 정기전에서의 승리가 1순위 목표지만 그 밖에 다른 대회에서도 우승을 하기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빅터는 자신의 생각대로 훈련 스케줄을 진행시켜 왔다. 운동부를 옆에서 지켜보는 김현목 트레이너는 “아이스하키부 훈련이 엄청나게 늘었다. 보통 비시즌 때는 휴가를 갔는데 아직도 훈련을 하고 있다”며 높아진 훈련강도에 혀를 내둘렀다.

선수들도 서서히 빅터가 가져온 선진화된 전술에 적응하고 있다. 신형윤(체교 09)은 “처음 학교에 왔을 때 감독님의 전술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서서히 적응하고 있다”며 팀이 좋아지고 있다고 평했다.

빅터는 우리학교의 경기력 향상에 만족하지 않는다. 빅터가 마음속에 두고 있는 큰 그림은 우리나라 아이스하키의 발전이다. 그리고 밑그림은 우리학교에서 그리고 있다. “우리학교가 아이스하키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서 좋았다. 우리나라에서 크고 있는 어린선수들을 키우고 싶다”며 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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