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의 MVP를 만나다!
한국농구의 MVP를 만나다!
  • 고봉준 기자
  • 승인 2009.07.11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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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남자, 주희정


[KU Star] 한국농구의 MVP를 만나다!
‘최초’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남자, 주희정

한국프로농구 최초의 얼리 엔트리, 최초의 정규리그 신인상, 통산 최초 4000어시스트 그리고 6강 탈락팀 소속 선수 중 최초의 정규리그 MVP. 최초라는 단어는 원래 ‘첫번째’를 뜻하는 말이지만, 그는 항상 2인자라는 칭호를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올시즌 그는 한국농구의 진정한 1인자로 거듭났다. 그는 바로 서울 SK의, 아니 한국농구의 대표가드, 주희정(체육 95, PG)이다.

Part Ⅰ 와신상담

주희정 선수의 프로필엔 ‘고려대학교 2년 중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저 몇 글자는 주희정 선수의 힘들었던 대학시절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은 1990년대를 한국 대학농구의 황금기로 기억하지만 주 선수에게 있어 그 당시는 시련의 시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먼저 농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학창시절 얘기 좀 들려주세요.

-농구를 시작한 때는 대신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농구부에 들게 되었는데요. 교실 뒷자리에 앉았다가 농구부 감독님이 갑자기 들어오시더니 뒷자리 앉은 남학생들 보고 다 나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리고는 달리기를 시키시더니 제가 빨리 달리는 걸 보고 농구부에 들어오게 하셨죠. 그러다가 1년 동안은 농구부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었는데 5학년 때 농구하면 ‘빵이랑 우유’ 준다고 하기에 다시 농구를 시작하게 됐죠.

부산의 농구명문 동아고를 KCC 조우현(33, F) 선수와 함께 졸업하게 되었는데요. 주 선수는 고려대에 어떻게 해서 입학하게 되셨나요?

-동기들끼리 중앙대를 가기로 했는데(실제로 조우현 선수는 중앙대로 진학했다) 임정명 코치님이 내려오셔서 스카우트 제의를 하셨고 또 박력있는 학교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신입생 시절 얘기 좀 해주세요.

-고3때 진학이 결정되면 학교에 미리 올라와요. 학교 농구부 올라와서 처음 한 게 냉면 그릇에 소주 부어먹다 기절한 거였죠.(웃음)

입학 첫해였던 1995년 당시, 대학농구의 인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는데요. 팬과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주희정 선수도 이국적인 외모 덕분에 많은 인기를 얻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어떻게 보면 동남아쪽 또 어떻게 보면 유럽쪽 얼굴이란 소리를 듣는데 사실 그 당시 (전)희철이형이나 (김)병철이형 (신)기성이형에 비해서는 팬이 없었죠. 항상 형들 쫓아다니다 남은 팬들이 저를 따라다니셨죠. 저는 가끔가다 팬레터 받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오히려 남자분들이 더 많이 알아봐주셨어요.

그럼 혹시 여자친구는...?

-우리학교 국문과에 다니는 여자애를 살짝 좋아하긴 했었죠. 벌주 대신 벌칙으로 여자 한명 데려오는 게 있었는데 그 여학생을 보고 짝사랑했던 기억이 나요. 대학교 때 사랑이야기라고는 그것밖에 없네요.

지금 우리학교 농구부 임정명(경영 77) 감독님이 그 당시 코치로 계셨는데 당시의 임 감독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그리고 많은 농구팬들이 궁금해 하는 박한(행정 65) 前 감독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두 분 다 ‘호랑이’라는 표현을 하면 맞아요. 특히 박한 감독님은 신입생이었던 제 입장에서 봤을 때 포스가 느껴지는 분이셨어요. 아 그리고 임정명 코치님이 고3때 저를 올라오라고 하셔서 서울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금 고대 코치를 하고 계신 이지승 선배 집에서 잔 기억도 있네요.

(기자가 잠시 머뭇거리며) 많은 이들이 이미 알 듯, 주 선수의 1․2학년 시절은 굉장히 힘들었었다고 들었는데...

-연대랑 정기전을 하잖아요. 그 때 제가 뭐 했는지 아세요? 40분 내내 워밍업만 하다가 경기가 끝났었어요. 그래도 경기는 이겼으니까 단상에 올라가서 응원을 하긴 했지만... 사실 어쩔 수 없었던 게 제 위로 기성이형, 병철이형 같은 넘을 수 없는 선배들이 있으니 막연하게 기회를 기다리기만 했었죠. 오히려 더 힘들었던 것은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어요. 정말 힘들 때는 농구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래서인지 주 선수는 3학년이 되기 전 얼리 엔트리(Early Entry, 대학을 졸업하기 전 앞당겨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를 신청하셨습니다. 사실 대학교를 중퇴하고 처음으로 프로에 뛰어든 첫 케이스인데, 당시 어떤 계획을 가지셨나요?

-제일 큰 문제는 역시 ‘돈’이었어요. 프로로 가면 돈을 벌 수 가 있잖아요. 고민도 많았죠. 좋은 학교에 와서 졸업도 못하고 그만두어야 하나....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그리고 원주나래 감독이셨던 최명룡 감독님께서 실업팀 감독 시절 때부터 저를 눈여겨보셨기 때문에 원주행으로 결정을 내린거죠.

드래프트 신청 당시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나요?

-아니에요. 오히려 주위에서는 ‘프로로 가라’는 말들을 많이 했어요. 당시 제 입장을 잘 알았기 때문이죠.

학교 측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뒷이야기가 있는데요. 제가 직접 박한 감독님 댁을 한밤중에 찾아갔아요. ‘제가 이러이러해서 학교를 그만두어야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렸죠. 박 감독님을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제 진로는 프로로 결정되었죠.

학교를 중퇴하고 힘들어할 당시 의지가 됐던 선수나 주위 분이 계시나요?

-모든 걸 저 혼자 해내야했어요. 제가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해야했던 시기였어요. 의지가 됐던 건 ‘농구’ 하나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있어온 농구공이라는 친구가 제 곁을 지켜주었죠.

혹시 당시의 일을 후회하지는 않으신지요.

-후회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지금이라도 학교를 졸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에요. 하지만 당시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저는 프로행을 선택할 거예요.

결국 주 선수는 고교시절 은사 최명룡 감독이 있는 원주나래 연습생을 거쳐 본격적으로 프로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연습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정식 선수와 대우가 달랐던 점이 있었나요?

-그런 건 별로 없었어요. 저 혼자 알아서 산도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훈련하고 열심히 연습했기 때문에 별다른 차별 같은 건 없었어요. 당시 고대 선배님들이었던 정인교, 강병수 선배들도 저랑 나이차이가 꽤 났기 때문에 저는 아예 관심 밖이었죠.

Part Ⅱ 상상초월

지난 2007년 SPORTS KU 3월호의 17면에는 이러한 기사가 실려있다. ‘주희정 프로농구 통산 최다인 3500어시스트 기록!’ 그런 그는 채 다음시즌(08‘~09’)이 끝나기도 전에 4000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이것만 보아도 주희정이라는 선수가 현재진행형인 최고의 가드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활약 덕분인지 주희정 선수는 올시즌 기자단 투표에서 정규리그 MVP로 뽑혔고 이로써 신인상과 플레이오프 MVP 그리고 시즌 MVP를 모두 석권한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시즌 MVP를 예상하였냐는 질문에 주희정 선수는 기자가 깜짝 놀란 답변을 내놓았다.

먼저 MVP 얘기를 해야겠죠. 다시 한 번 MVP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시즌이 끝나기 전부터 주희정 선수의 최우수선수상 수상을 점치는 이들이 많았었는데요. 솔직히 MVP를 예상하셨나요?

-사실 시즌 초반부터 MVP가 되리라고 조금은 예상하였습니다. 초반부터 개인기록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거든요.

주 선수는 MVP로 뽑혔지만 안타깝게도 소속팀 KT&G는 시즌 7위에 그치며 6강행 티켓을 따내지 못했습니다.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어요...

-마음이 정말 많이 아팠죠. 팀이 이렇게 됐는데 내가 MVP가 돼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구요.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MVP와 6강을 바꾸라면 고민없이 바꿀 것입니다. 그만큼 저에겐 팀이 우선이거든요.

KT&G는 시즌 전 갑작스런 사령탑 교체와 시즌 중 외국인선수 마약 파동 때문에 올시즌에는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막판까지 6강 경쟁을 벌였는데요. 주희정 선수가 팀의 리더로서 어떻게 팀원들을 이끌어 나갔나요? (올시즌 주 선수는 처음으로 팀의 주장을 맡았다.)

-팀이 어려운 상황인만큼 ‘무섭게’ 팀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코트 안에서는 더 무섭게 대했고요. 그래도 밖에서는 코트 안과는 다름 모습을 보였죠. 주장이 처음이라 쉽지 않았지만 팀원들이 잘 따라와 주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올시즌 주 선수의 활약을 말 그대로 ‘상상초월’이었습니다. 어시스트 1위, 스틸 1위, 국내선수 득점 2위, 국내선수 리바운드 5위. 공수를 넘나들며 활약했다는 증거들인데요. 그 비결 무엇에 있다고 보세요?

-죽기 살기로 뛰었습니다. 프로에 들어 온지도 꽤 됐는데 아직까지는 죽어라 훈련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운이 좋기 때문에 올해 더 좋은 성적을 낸 것 같네요.

MVP인 주희정 선수에게도 라이벌이 있을텐데요. 한때는 신기성 선수가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은 오리온스의 김승현(31, PG) 선수가 주 선수의 라이벌로 언급되기도 했었죠. 주 선수 본인이 생각하는 라이벌은 과연 누구인가요?

-김승현 선수가 라이벌로 거론된 것은 제가 왼손잡이 선수를 잘 막지 못해서인 것 같아요. 또 제가 현란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한테 약해서인지 김승현 선수를 막기가 참 쉽지 않죠. 그러나 제게 라이벌은 단 하나 ‘내 자신’입니다. 다른 어떤 선수도 아닌 제 자신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제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든 싸움이거든요.

KT&G 소속의 선수들을 보면 고대․연대 선수들이 많이 있는데요. (고대 : 주희정, 김일두, 이현호, 신제록 / 연대 : 은희석, 양희종, 전병석, 이상범 감독, 유도훈 前 감독) 혹시 정기전 전에 선수들 간에 내기나 장난기 섞인 신경전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정기전을 앞두고 간식내기 같은 것은 꼭 합니다. 요새는 제가 팀에서 나이가 좀 있으니까 내기에 잘 끼지 않지만 젊은 선수들은 빼놓지 않고 내기를 해요. 최근에는 우리학교 농구부가 너무나 잘해서 저희가 내기에서 진 적이 없는 것 같네요.(웃음)

Part Ⅲ 예측불가

올시즌 90년대 고대 농구를 대표했던 전희철(신방 92) 선수가 수많은 팬들의 아쉬움 속에 은퇴했다. 이는 90년대 ‘마지막승부 세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세대라 할 수 있는 주희정 선수의 미래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그는 현재 최고의 위치에서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있을까?

지금 주 선수는 안양 KT&G에서 4시즌 째 뛰고 계신데 혹시 나중에라도 한번 뛰어보고 싶은 팀이 있나요? 그리고 함께 뛰어보고 싶은 선수들 좀 알려주세요.

-대표팀에 있을 때 같이 뛰었던 서울 SK의 김민수 선수와 한 팀을 이루고 싶습니다. 외국인 선수를 능가하는 체격에 파괴력까지 지닌 선수인데 참 탐나더라고요. 뛰어보고 싶은 팀으로는 지금 말한 김민수 선수와 김진(사회 80) 감독님이 계신 서울 SK와 강을준(경영 85) 감독님이 계신 창원 LG가 있네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혹시 은퇴 후 계획해 놓은 일이 있으신지요. 유소년 클럽 운영이라던가 해외 연수 아니면 전희철 선수처럼 바로 코칭스태프로 합류하는 길 등이요.

-(기자에게 되물으며) 제가 은퇴하고 뭐 할 것 같아요? 배운 게 농구밖에 없으니 프로농구 코치하는 것 밖에 더 있겠습니까. 은퇴 후 바로 코치가 되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겠죠.

주희정 선수가 꼽은 후계자는 누구인가요?

-제 나이에 후계자를 꼽긴 그렇고, LG의 이현민 선수는 앞으로 더 성공할 선수 같아요. 농구선수로서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경기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농구하는 모습 보면 농구센스도 있는 것 같고요.

Part Ⅳ 특별코너! 고대생은 선배 주희정의 이것이 궁금하다!

주희정 선수를 보면 32살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이신데, 동안 얼굴의 비결 좀 알려주세요! (일문 08 우영식)
-운동하고 땀 많이 흘리세요. 그리고 잠도 아주 푹 자야 합니다. 제가 농구를 하기 때문에 피부가 좀 더 좋은 것 같아요. 농구나 배구선수들 보면 하나같이 피부가 하얗잖아요. 아무래도 실내종목이기 때문에 살짝 동안이 된 것 같아요.

주희정 선수의 별명이 참 많은데요. NBA 선수의 이름이 합쳐진 ‘주키드’(주희정+제이슨키드)와 ‘주내쉬’(주희정+스티브내쉬)부터 ‘테크노가드’ 그리고 ‘철인’까지 다양한 별명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중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무엇이에요? (경영 09 이현욱)

-‘주키드’라는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팬들께서 제 농구 스타일을 보고 지어주신 것 아니겠어요? NBA 최고 가드의 이름이 별명이라는 것 자체가 참 기분 좋죠.

주희정 선수는 자신의 농구인생 중에서 어떤 일을 가장 의미있게 생각하시나요? 우리학교에 들어온 일이나 삼성 시절 정규리그 우승, 첫 신인상, 그리고 올해의 4000어시스트와 MVP까지 중에서요. (사회 08 김영현)

-시즌 MVP가 가장 보람있는 커리어라고 생각해요. 플레이오프는 단기간이지만 시즌은 몇 달에 거쳐 게임을 뛰어야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시즌 MVP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의미있게 여겨지네요.

주희정 선수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신기성 선수입니다. 후배 입장에서 두 선배님들의 관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뒷얘기들이 나오는 게 너무 가슴 아픈데요. 이제는 옛감정 같은 거 다 버리신 거죠?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좀 말씀해주세요. (컴공 08 박용구)

-이제 서로 옛감정은 없습니다. 사실 옛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어요. 대학시절에도 서로 관계는 아주 좋았고 제가 기성이형의 플레이를 보고 배우기도 했었거든요. 프로에 와서도 그렇구요. 그래도 지금 기성이형을 게임에서 만나면 ‘꼭 이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주희정 선수의 대학시절이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많은 후배 농구선수들도 주 선수처럼 힘든 과정을 겪고 있을텐데요. 그런 후배들에게 조언의 한마디 부탁드려요! (국제어문 09 김정희)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세요. 남자라면 비겁하게 뒤로 물러서지 말고 힘든 상황이 닥쳐도 이겨내세요. 그러한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합니다.

고대 시절의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기억이 이후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합니다. (산공 06 김남곤)

-안 좋은 기억이 많지만 좋은 것만 기억하려 합니다. 그런 안 좋은 기억을 전화위복삼아 마음에 새기며 뛰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있었던 4월 27일. 주희정 선수는 기자에게 넌지시 ‘트레이드 가능성’을 암시했다. 기자에게 서울 SK 김태술 선수와의 트레이드가 성사될 것이라고 ‘오프더레코드’ 형식으로 밝힌 것이다. 결국 4월 30일 주희정 선수와 김태술․김종학 선수 간의 빅딜이 공식화되었다. 그는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중요한 소식을 한참 어린 후배에게 알려줄만큼 솔직하게 인터뷰에 임했다. 가끔은 기자가 당황할 정도로 거침없는 답변을 쏟아낸 그였다. 이제 그는 둥지를 옮겨 다시 한 번 챔피언 반지를 노리게 되었다. SPORTS KU의 내년 5월호에는 주희정 선수의 생애 2번째 우승 기사가 실리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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