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십년 뒤 자신에게 편지를 쓰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 구석에 편지를 넣은 타임캡슐을 묻으며 십년 뒤에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작년 여름, 같은 반이던 친구 열 세명이 모였다. 선생님도 그 약속을 잊지 않고 함께 하셨다.

다 커버린 제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선생님께선 온종일 졸업앨범을 들여다봤다고 하셨다. 함께 모인 친구들 중 몇몇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내가 순간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도 그날 밤 우리들은 지난 얘기를 하느라 새벽 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잊고 있던 타임캡슐 얘기를 꺼냈고 우리는 호기심이 발동해 다시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갔다. 기억을 더듬어 타임캡슐이 묻힌 곳을 찾았지만 한 친구는 화단 옆 어느 곳이라 말하고 한 친구는 세종대왕 동상 어디쯤이라 말했다. 그날 밤 우리는 결국 그 타임캡슐을 찾지 못했다. 다들 아쉬워했지만 난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초등학생이던 내가 그리던 십년 후의 모습은 학점에 치이며 온갖 자격증과 시험에 시달리는 이런 모습이 아니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름방학이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친구들 모두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영어학원을 다니고 여러 자격증을 준비하며 방학을 바쁘게 보내고 있다. 이번 방학도 이렇게 보내다가는 십년 전의 나의 꿈은 영영 이뤄지지 못할거란 불안감이 들었다. 그래서 얼마 전 나는 친구들과 함께 독서세미나를 하기로 계획했다. 매주 한 권씩 읽기로 했는데 열흘이 지난 지금 난 아직도 처음 고른 그 책의 앞부분을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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