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호 신문을 만드느라 편집실에서 하룻밤을 샌 뒤, 목요일(23일) 새벽 민주광장으로 나와 잠시 숨을 돌렸다. 마침 맑시즘이 시작되는 날이라 민주광장에는 행사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네댓 보였다. 그때 4.18기념관에서 학교 직원이 나왔다. 맑시즘을 못하게 하는구나 싶었는데 그들은 오히려 웃으며 말을 나눴다. 어찌된 일일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다가가 엿들었다.

“어쨌든 학교에서 너희들을 믿고 특별한 제재를 안 하는 거니깐 물의를 일으켜선 안 돼. 과격한 선전물을 걸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안 하도록 조심하고.  그나저나 어느새 맑시즘도 10회째구만. 2006년 말고는 다 고려대에서 열린 걸로 아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천 명 넘게 참여하는 학술행사라 대학교만한 공간이 없어요. 엄청난 비용을 대거나, 행사 규모를 줄이지 않는 이상 저희를 받아주는 대학이 없습니다. 고려대에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다른 대학에 비해 고려대는 노선이 달라도 다양한 학문적 논의를 포용하는 편입니다.”

“학교에서 처음부터 맑시즘을 막은 건 아니네. 2004년인가 자네들은 학교 전체를 피켓으로 장식하다시피하고, 학교 상징인 인촌동상을 현수막으로 가렸지. 빌려줬던 인촌기념관 시설이 망가지기도 했고. 지난해 자네들은 고려대가 진보적 성격의 행사를 무조건 막는다고 주장했는데 사실과 다르지.”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설 공간이 점점 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사회문제를 조금만 제기하면 철 지난 운동권이나 이상주의자로 취급하죠. 대학생들도 현실이 워낙 팍팍해 이런 데 관심을 쓸 겨를이 없고요.”

“나는 자네들과 가치관이 다르네만 그 열정만큼은 높이 사네. 요즘 같은 때에 현실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학교 규정도 있고 해서 쉽진 않겠지만 언젠가는 더 나은 여건에서 맑시즘을 진행하는 것도 보고 싶네.”

“동감입니다. 저희 생각이 진리라곤 주장하지 않아요. 왼쪽도 좋고 오른쪽도 좋으니 열어 놓고 같이 고민하자는 거죠. 고려대가 이런 다양한 학문적 논의 전당이 됐으면 해요.”

대충 눈치 챘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맑시즘에 대한 어느 쪽 입장도 제대로 듣지 못해 상상해서 쓴 글이다.

이번 맑시즘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런데 학교는 더 넓어 보였고, 더 여유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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