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나요, 나의 꿈 속에서, 너는 마법에 빠진 공주란 걸~” 이 노래를 들어봤는가? ‘더클래식(The Classic)’의 명곡 ‘마법의 성’을 작곡하고 부르기도 한 싱어송라이터 김광진 씨는 매일 아침 여의도에 출근하는 금융인이다. 두 개의 인생을 사는 그를 만나러 지난 금요일 저녁 그의 회사를 찾아갔다.

그는 평일엔 펀드를 운용하고 주말엔 작곡과 녹음을 한다.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직업을 그는 이렇게 소개했다. “음악은 창작이니까 어떻게 보면 자영업에 가깝죠. 음악의 매력은 제 감성 하나로 듣는 사람들에게 △위안 △용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에요. 반면 펀드운용은 정확한 성과가 실물로 나온다는 점이 좋아요. 둘 다 기록이 남는다는 게 공통점이고요”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다. 7남매 중 막내였던 그의 형과 누나들이 모두 악기를 다루었던 것. 가족 단위로 트리오를 만들어 종종 연주회를 즐기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도 어려서부터 음악을 꿈꿨다. 고등학생 땐 친구와 통기타 듀엣을 결성해 학예회 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첫 곡도 이 때 썼다. 대학 시절도 통기타를 들고 캠퍼스 여기저기 즉석무대를 만들어 공연하면서 보냈다. 1985년엔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 교내가요제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정식 음악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것. “음악교육을 받은 건 대학 때 ‘음악감상’과 같은 음대 전공과목을 몇 과목 수강한 게 다였죠. 혼자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며 피아노와 통기타를 익혔어요. 좋은 음악과 뮤지션들이 스승이었던 것 같아요”

전문교육을 안 받아도 음악과 작곡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그에게 작곡에 필요한 자질과 능력을 묻자, 그는 ‘작곡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라고 했다. “음악에 대한 이해가 많으면 물론 좋지만,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듣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요샌 디지털 장비가 발달해 전문 음악인이 아니라도 마음만 먹으면 편집을 통해 좋은 음악을 손쉽게 많이 만들 수 있게 됐거든요”

곡 하나를 작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의 대표곡 마법의 성은 가장 빨리 쓴 곡 중 하나로 1시간 만에 태어났다. 반면 또 다른 명곡 ‘편지’는 1년 내내 꾸준히 고치는 작업을 되풀이해 탄생했단다.

그의 작곡 철학은 트렌드를 좇지 않고 고유의 음악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트렌드를 좇지 않기 때문에 최신 대중가요도 잘 듣지 않는다. “우리나라 음악계는 어떤 아이템이 유행을 일으키면 천편일률적으로 그걸 따라가요. 그러면 그런 형태의 음악이 너무 많아지죠” 대한민국 음악계의 ‘유행주의’를 비판하며, 그는 음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트렌드를 따라가지 말고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할 것을 조언했다. “음악은 흰 도화지에 마음에 있는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요. 뭐하러 남들과 똑같이 그리겠어요?”

그는 우리나라 음악시장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줬다. “곡을 많이 쓰면 실력이 늘 것 같지만, 실은 오히려 작곡가의 초기 작품이 히트치는 경우가 많아요. 초기 작품은 몇 년에 걸쳐 오래 준비하는데, 그 이후 2집, 3집을 낼 땐 대중에게 잊힐 것이 두려워 1년에 한 번 꼴로 음반을 준비하기 때문이죠. 외국에선 뮤지션들이 보통 3~4년을 준비해 한 음반을 내지 않습니까?”

(사진 = 한상우 기자)
그는 중장기적인 진로계획을 수립하며 사는 편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은 생각은 막연히 있었지만, 구체적인 직업이나 직장을 갖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경영학과로 진학한 것도 큰 고민 없이 이뤄진 결정이었다. 대학에서도 물론 커리어나 스펙을 계획적으로 쌓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CFA 자격을 취득한 동기도 단지 경영학을 공부한 게 아까워서였다.

그가 가장 바쁘게 살았던 시절은 지난 1991년 입사한 삼성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재직할 때였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펀드운용보다 일이 더 힘들어요. 또 당시엔 주6일 근무여서 주말에 작곡하고 녹음하기에도 무리가 있었어요. 3집 ‘여우야’ 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휴가까지 내기도 했죠. 게다가 이 시기에 CFA 시험 준비까지 시작했습니다. 잠을 줄일 정도로 힘들던 시절이었죠”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때 삼성증권을 나와 2002년 동부자산운용에 입사할 때까지 4년 동안 음악에만 전념했다. 또한 2002년 동부자산운용에 입사하면서는 음악을 5년간 접었다. 한 가지 인생만 살던 시절이었다.

오늘의 그는 유능한 펀드매니저다. 그가 2005년부터 운용해온 ‘더클래식펀드’는 2007년 수익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동부자산운용의 투자전략본부장으로 있으면서 ‘상대가치’라는 운용 철학을 고안하기도 했다. “상대가치란 서로 다른 업종에 걸쳐있는 기업의 가치를 절대적 기준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데서 나온 개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각 애널리스트들이 전문분야에 따라 각각의 업종을 나눠 맡아 운용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렇게 하는 운용사가 많지 않은데, 우리 회사가 최근 업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장기적으론 이러한 방식이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 해요”

그는 펀드운용을 장래 직업으로 꿈꾸는 대학생에게 투자서클이나 모의투자 등을 통해 실전 경험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요즘 신입사원들을 모집해 보면 스펙은 기본이라 다들 화려해요. 그런데 사실 매니저가 되려면 재학 중에 투자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투자 경험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본 사람은 면접을 해 보면 몇 마디만 이야기해 봐도 다른 게 확 느껴지거든요”

그는 음악만 하는 편보다 금융업을 같이 하는 것도 좋다며, 음악만을 전업으로 삼지 않은 솔직한 이유를 들려줬다. “우리나라는 음악시장이 크지 않아 음악을 평생 업으로 하며 여유를 갖긴 힘들어요. 다른 직업이 있었기에 경제적 부담 없이 마음 놓고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 좀 바쁘더라도 여러 가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사진 = 한상우 기자)

하나만 제대로 하기에도 벅찬 두 가지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다만 누구나 알고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시간관리 철학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잠을 줄여 시간의 절대량을 늘리기보다 깨어 있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는 경제인답게 ‘한계(margin)’와 ‘체감’ 개념을 이용해 그의 시간관리론을 소개했다. “미시간주립대(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MBA를 할 때 하루에 200페이지씩 책을 읽어야 했는데, 공부를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잠을 줄여선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또 공부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하게 되면 ‘한계 성취도’가 급속히 체감하더라고요. 15시간을 공부해도 10시간 공부한 것과 별 차이 없어요. 어떤 공부든지 10시간만 집중해서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아침 7시경 출근해 오후 7~8시까지 근무하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셈이라며, 그보다 더 일해도 효과는 거의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야근은 하지 않는단다. 잠을 줄여 가며 일하기보다 주어진 시간 동안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해 효과적인 방법으로 일하는 것이다. 음악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설명한다. “음악은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욕이 있어야 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절로 집중하게 돼 시간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져요”

지난 2008년부터 그는 다시 두 개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앨범을 내고 콘서트도 시작한 것. 회사에서의 책임을 다하면서도 좋은 곡을 쓰고 싶다며 두 마리 토끼를 좇는 그의 야심찬 도전은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마법의 성보다 훨씬 더 좋은 곡을 쓰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해요. 또 쓸 수 있다고 믿고요” 자신의 곡으로 뮤지컬과 음악영화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마지막으로 들려준 그는 양복 자켓 뒷자락을 펄럭이며 쾌활한 걸음으로 사무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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