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정 락 vs 나 성 범

천안북일고, 고려대. 투수, 신.정.락.

정기전에서도 그의 환한 미소를 기대해본다. <사진 김민규>

신정락(체교 06)이다. 2009년 올해부터 시행된 전면드래프트에서 신정락이 전체 1순위로 LG 트윈스에 뽑혔다. 1라운드에는 각 학교의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뽑혔다. 특히, 고졸 자원의 해외 유출로 인해 상대적으로 대졸 선수가 상위 라운드에 많이 뽑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나성범(연세대 08)이 4학년이었다면 신정락의 1순위 자리를 차지했을까. 그래도 신정락이 1순위 자리를 지켰을 것이라고 본다. 대학 4년 동안, 그는 많이 성장하여 대학 최고의 투수 자리에 섰다.

고려대, 연세대의 에이스인 신정락과 나성범은 경기를 치르면서, 아니, 마운드에서 매 이닝마다 성장하는 투수들이다. 천안북일고 시절 신정락은 동기 유원상(한화, 22)에 가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투수였고 나성범은 광주진흥고에서 주로 타자로 뛰었다. 하지만 두 선수는 팀의 에이스로서 각 학교를 대표하는 선수다. 그리고 지난해에 이어 정기전의 문을 여는 야구경기의, 그것도 선발투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에이스는 작년 정기전에서 맞대결을 펼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작년으로 기억을 되돌려보면

2008년 9월 5일, 하늘을 날아갈 듯한 최고의 날을 보낸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락으로나락으로 떨어지는 쓴 맛을 본 사람도 있었다. 일년 전의 기억을 되살려본다면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학무대 최고의 사이드암으로 최고구속 149㎞/h를 자랑하는 신정락과, 역시 148㎞/h의 묵직한 직구로 정면승부에 임하는 좌완 파이어볼러 나성범. 두 선수는 올해 정기전 야구의 선발투수로 정기전의 시작을 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정락 사진> 작년, 신정락은 대학무대에서 8승 2패, 평균자책점 0.93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그는 작년에 고려대가 치른 19경기 중 6경기에 선발로 출전했고, 11경기에 구원 등판했다. 작년에 고려대가 12승을 거두었으니 2/3를 신정락이 책임진 셈이다. 작년에 신정락 급의 성적을 올린 선수를 찾는다면 단국대의 신재영(8승 1무, 2.25) 정도가 되겠다. 그 외에 경성대의 이상백(SK 6R 지명)은 6승 1무 4패(1.98), 동의대 윤지웅은 5승 2무 3패(2.39), 건국대 추세웅은 5승 2패(3.00)의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신재영조차 0점 후반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신정락에 비길 바가 못 된다. 작년, 하계리그전에서 무려 29.2이닝 동안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며 우리학교의 마운드를 든든히 지켰던 그다. 무자책점으로 따진다면 36이닝에 육박할만큼, 상대 타자들에게는 공략하기 어려운 투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 모든 명성이 자신에게는 부담으로 돌아온 것일까. 2008년, 정기전 마운드에 선 투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신정락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3회초, 연세대 두 타자를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킨 데 이어 전준수(연세대 07)마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시켜 무사 만루 상황을 허용했다. 나성범의 1타점 적시타에 이어 사구 밀어내기 1점, 나성용의 2타점 적시타로 4-0이 된 뒤, 김종찬(연세대 06)의 주자 일소 2루타로 3점을 더 주고 7-0으로 벌어졌다. 평소 침착하게 한 타자, 한 타자를 요리하던 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초구를 던지고 나서 불안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많은 실점을 하고 말았다”며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를 져서 힘들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그 이후로 신정락에게는 새가슴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 큰 대회, 중요한 경기에서 어이없이 실점한 데서 연유한 것이었다.

새내기답지 않게 화려하게 정기전에 데뷔한 나성범(연세대 08) <사진 김민규>

잠시 방향을 돌려 나성범을 보자. 나성범은 2008년, 대학야구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광주진흥고 시절, 나성범은 투수가 아닌 타자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각종 고교대회에서 포지션이 투수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마운드에 오래 서 있어본 기억은 없다. 큰 부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에 대해 나성범은 실력 부족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중학교 때, 볼넷을 주면 바로 교체시키더라구요. 고등학교 때도 다른 투수들은 볼넷을 주거나 안타를 맞아도 계속 믿고 맡기는데 같은 상황에서 저는 교체됐어요. 연습 때는 잘 되는데 실전에서는 불안했던게 문제였죠.” 이렇게 고교 때 많이 던지지 않은 것이 되려 지금 훌륭한 기량을 가진 투수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타자로 활약했던 경험을 살려 팀의 붙박이 톱타자로서 투타에서 연세대에 없어서는 안 될 주축 선수로 자리잡았다.

작년 정기전에서 신정락이 3회를 채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온 데 비해 새내기였던 나성범은 9이닝 2실점 완투승을 따냈다. 그의 공은 새내기의 공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위력적이었다. 우리학교 타자들은 그의 빠르고 묵직한 직구와 간간이 섞어 던지는 슬라이더, 서클 체인지업을 공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미 춘계, 하계리그전에서 만난 바 있는 고려대였다. 두 번 던지면서 상대 타자들을 파악해 갔고,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영리한 투수였다. 야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거쳐 왔던 모든 경기의 관중을 다 합쳐도 더 많을 것 같은 관중들과, 극도의 긴장감이 온 몸을 감싸는 경기. 그게 바로 정기전이다.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긴장한 것은 나성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큰 무대에서 자신있게 피칭한 경험은 그를 더욱 무서운 투수로 만들었다.

그리고 2009년

2009년 현재, 신정락은 대학 최고의 투수로 분류되었고 전면드래프트 전체 1순위를 거머쥐었다. 나성범은 작년에 비해 성향이 파악된 탓에 작년만큼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여전히 투타에서 활약하고 있다. 신정락은 “나성범은 타격, 투수력 모두 굉장한 선수다. 그가 야구하는 것을 보며 괴물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작년보다는 성적이 좋지 않지만 역시 가장 조심해야 할 선수임에는 틀림없다”고 평가했다. 신정락은 올해 처음 시행된 전면드래프트에서 예상대로 LG 트윈스에 1순위로 지명되었다.

나성범은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등 메이저리그의 여러 구단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투수다. 아직 확실히 결정된 것은 없지만 정기전이 끝나면 구체화될 예정이다. 입학 당시 4년 동안 정기전 선발투수로 나서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성범이지만 남은 2년을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2008년은 지났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결코 선수 자신의 발전에 이롭지 않다. 그것이 기억하기 싫은 과거든, 화려했던 과거든 말이다. 올해, 전반기 4개 대회에서 신정락은 5승 2패, 평균자책점 1.41의 성적을, 나성범은 5승 2패, 평균자책점 2.67의, 어찌보면 두 선수의 이름값에 비해 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성적을 거뒀다. 연세대 전체 이닝 중 43.1%를 책임진 나성범은 하계리그전에서 15이닝 1승 1패, 평균자책점 6.00으로 부진했다. 고려대 전체 이닝의 29.6%를 던진 신정락은 임치영(사체 08), 윤명준(체교 08)이라는 든든한 후배들과 적절히 번갈아가며 등판하여 아마추어 야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에이스의 혹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대통령기에서는 3승을 거두며(임치영 2승) 팀을 3년만에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3승 중 2승은 준결승전과 결승전이었다.

동료로서의 한 달, 그리고 이제 9월

최근, 일본 삿포로에서 열렸던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 대표팀에 고려대에서는 신정락이, 연세대에서는 나성범이 유일하게 뽑혀 둘은 한 팀이 되었다. 신정락은 중국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6.2이닝 1실점(2피안타, 7탈삼진)으로 승리투수가 되었고, 나성범은 2경기에 계투로 마운드에 올라 2이닝 3실점(3피안타, 1탈삼진)을 기록했다. 둘은 당연히 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알게 된 것은 대표팀 생활을 통해서다. 둘은 한 달 간 한솥밥을 먹으며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다. 1순위 지명을 축하하는 문자도 왔단다. “성범이랑 많이 친해졌어요. 정기전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피했지만(웃음). 나름대로 성범이 분석도 좀 했구요. 성범이한텐 비밀이에요.” 나성범 역시 “정말 좋은 선배입니다. 야구 실력은 진짜 타고난 선수랄까요. 하지만 전 어떤 투수든 괜찮습니다(웃음).”하며 둘의 친분과 동시에 정기전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2009년 정기전 야구 경기는 그야말로 ‘재미있는’ 경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물론 두 선발투수가 경기를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투수전 양상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완봉승, 완투승도 좋지만 그래도 야구의 매력은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에 있지 않은가. 감히 예측하건대, 마지막 장면은 신정락이 1순위로 지명된 이후 내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던 환한 미소로 장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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