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정기전호] 아이스하키 통곡의 벽, 황병욱
[2009 정기전호] 아이스하키 통곡의 벽, 황병욱
  • 최유리 기자
  • 승인 2009.09.10 0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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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공격수는 황병욱의 플레이를 두려워한다  <사진 김명선>

이름: 황병욱
생년월일: 1982년 2월 26일
신체조건: 177㎝ 80㎏
소속팀: 하이원(강원랜드) 
대곡초-경희중-경기고-고려대

 

우리나라 아이스하키 실업팀의 양대 산맥인 하이원과 안양한라. 그 두 팀이 경기를 할 때면 안양한라 팬들이 가장 크게 부르는 하이원 선수의 이름이 있다. 타팀을 응원하는 것일까. 그럴리 없다. 결코 응원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다소 격하기도 한 그 함성이 향하는 곳은 바로 하이원 대표 수비수인 황병욱. 프로축구 K리그에 ‘통곡의 벽’인 마토가 있다면 아이스하키에는 국가대표 수비수 황병욱(체교 01)이 있다.
미국 리그 진출 경험이 있는 쟁쟁한 선배들을 뒤로하고, 우리학교 아이스하키 최태호 코치가 추천한 선수는 황병욱이었다. 그는 우리학교에 입학할 당시 큰 기대를 받지 못해, 명단에 거의 마지막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실제 기량보다 저평가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 선수였다.
1997년 이후, 아이스하키 정기전 전적에서 ‘승’이라는 글자는 찾아볼 수 없다. 그가 입학했던 2001년부터 4년 동안 우리학교는 연세대에 2무 2패로 열세였다. 한번도 이기지 못한 정기전. 그래도 선수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이다. 7월 17일, 고려대 아이스링크에서 소속팀인 하이원의 오전 훈련을 마치고 나오는 황병욱과 인터뷰했다. 인터뷰에는 그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하이원 공격수 이용준(연세대 03) 선수가 함께했다.

아픔을 참아가며 뛰었던 정기전
황병욱은 2학년 때 정기전을 대비한 훈련 도중에 무릎을 다쳐서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소 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던 황병욱은 무릎에 주사를 맞아가면서까지 아픔을 참고 뛰었다. 최태호 코치는 “미국 진출과 같은 개인 사정으로 정기전에 참가하지 않는 선수도 간혹 있었다. 그에 비해 황병욱은 아픈 것을 참아가면서까지 정기전 무대에서 뛰길 원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비록 그 때 정기전은 3-3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더욱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마저도 황병욱 선수가 제 몫을 해 주지 않았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정기전에서 이기지 못하는 해가 하나 둘 씩 늘어가면서 혹시 선수들 사이에 패배의식이 생겨나지는 않았을까. 그는 밖에서는 그런 말을 많이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또 지면 어쩌지’하는 조바심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게임에 임할 때는 걱정은 버리고 항상 이길 수 있다는 생각만을 했고 다른 선수들도 역시 그러했다고 덧붙였다.
양교를 졸업한 선수들에게 정기전은 자부심 그 자체이다. 황병욱은 고연전만큼 관중이 많은 경기는 그 이후로 없었다며, 자신이 실업팀에 입단한 뒤 대학 때보다 훨씬 많은 수의 경기를 소화했지만 그 어떤 게임보다 정기전에 임할 때 꼭 이겨야겠다는 열의가 가장 강했다고 했다.
황병욱이 뛸 당시의 우리학교 정기전 전적은 2무 2패인데 비해, 이용준이 입학한 2003년 이후 4년 동안의 정기전에서 연대는 무려 4승을 기록했다. 사실 이 둘은 중학교 선후배 사이다. 이용준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황병욱은 3학년이었다. “대학에 오면 선수들의 실력은 다들 비슷해요. 하지만 중, 고등학교 때는 기량차가 상당하죠. 어린 제 눈에도 병욱이 형은 대단했어요. 퍽을 한 번 잡은 이상 잘 뺏기지 않았죠. 디펜스지만 골도 잘 넣었고요.” 이용준은 황병욱을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배로 기억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둘 다 정기전에서 골을 넣은 적은 없네요(웃음).”
황병욱은 4년 내내 R.D(right defense)로 뛰었다. 이용준 역시 1, 2학년 때는 디펜스로 뛰었지만 3학년 때부터 포워드로 포지션을 바꾸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용준 선수는 자신이 디펜스라서 골을 못 넣은 게 아니라 정기전 때 골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며 웃으며 말했다. 두 선수가 함께 뛰었던 2003, 2004년에는 포지션이 같아서 경기할 때 퍽을 다투지는 못했지만, 한 팀에 있는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용준 선수가 포워드로 뛰게 되어 함께 상대팀 선수를 막지는 못한다.
당시 연세대에는 김은준(연세대 03)이 골리로 활약했다. 4년 동안 매 정기전 때마다 한 골씩 넣은 선수다. 반면 고대의 골리였던 최정식(체교 02)은 웃지 못할 징크스를 가진 선수였다. 정기전, 비정기전 가릴 것 없이 최정식이 경기 첫 골을 넣으면 어김없이 연세대가 이겼던 것이다. 이 징크스는 양교 선수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한 번도 가고 싶었던 학교로 진학하지 못했다는 이용준  <사진 김명선>
이용준 선수는 자신이 가고 싶었던 학교나 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며, 이제야 밝히지만 사실 고려대에 오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경기고에 가고 싶었으나 경복고에 입학하게 되었고, 졸업 후 이번에는 가고 싶었던 고려대에 가나 싶었는데 연세대에 가게 되었다. 당시 우리학교가 운동할 여건이나 환경이 더 좋았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라 가고 싶었지만 정작 입학 제의가 온 것은 연대였다. 실업팀 역시, 가고 싶었던 안양 한라가 아닌 하이원에서 뛰게 되었지만 지금은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정기전에서 주목할 만한 후배로 이돈구(연세대 06)을 꼽았다. 그는 이동구가 파워와 기술을 함께 갖춘 디펜스이며,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다름아닌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서 더욱 열심히 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려대를 대표하는 선수에서 국가대표로
우리학교를 졸업한 후 신생팀인 하이원에 입단한 황병욱은 입단하자마자 팀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하게 된다. 그는 특유의 승부욕과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를 통해 팀의 분위기를 더욱 향상시켰다. 우리나라의 하이원, 안양한라, 중국의 1개팀, 일본의 4개팀으로 구성된 아시아리그에서도 공․수를 가리지 않는 활약으로 아이스하키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하이원에서 황병욱과 함께 활약하게 된 이용준은 타고난 공격수다. 퍽을 섬세하게 다룰 줄 알며 골에 대한 감각도 탁월하다고 평가받는다. 둘은 2007년 장춘 동계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한데 이어 이번 2009년 세계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에도 한 팀을 이뤄 출전했다. 지난 해 DIV 1에서 5전 전패를 기록하여 DIV 2에 강등되었던 한국이었다. 대회 참가 전, 황병욱을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은 전승을 거두고 다시 DIV 1의 무대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결과는 5승 전승으로 DIV 1로 승격. 득점상과 베스트포워드(각국 대표들이 투표로 뽑는다)에는 권태안(하이원)이 뽑혔다.

라이벌에서 가장 절친한 동료로
각각 고려대, 연세대에서 뛰며 라이벌이었던 두 선수였지만 지금은 한 팀을 이루는 동료가 되었다. 이처럼 양교의 정기전도 승부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친선을 다지는 축제의 의미가 크다고 본다. 지금도 재학 당시 입었던 고려대, 연세대의 엠블렘이 붙여진 옷을 입고 체력훈련을 하러 가는 하이원 선수들을 보며 졸업 후에도 학교는, 그리고 정기전은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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