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8 17:14 (화)
[2009 정기전호] 선배라는 이름으로, 이임생
[2009 정기전호] 선배라는 이름으로, 이임생
  • 이혜진 기자
  • 승인 2009.09.10 0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부하는 지도자 이임생 <사진 김명선>

이임생(체교 89)은 멋진 ‘선배’였다. 보통 인터뷰를 할 때는 후배가 선배를 찾아가기 마련인데, 지난번 자기를 찾아왔던 후배 기자들이 너무 고생을 했다는 이유로 수원에서 안암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와 함께 했던 두 시간 내내 그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고려대’ 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유명한 축구선수’라기 보다는 편한 선배로 느껴졌던 이임생에게서 정기전과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을 들어보았다.

‘꿈의 학교’ 고려대
그는 어떤 계기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을까. “사실 축구를 그만둘 뻔 했어요. 초등학교 때 축구를 잠깐 했는데 생각보다 잘 안돼서 그만뒀죠. 그 후 중학교를 배정받아서 갔는데 공교롭게도 축구부가 있던 학교였어요. 원래 다시 할 마음은 없었는데,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 당시 여느 선수들 못지않게 이임생에게도 우리학교는 꿈의 학교였다. 지금이야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프로에 스카우트 되어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교에 진학 하는 것이 관례였다. 우리학교와 연세대 모두 진학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임생은 ‘연세대를 갈 바에야 고려대를 가겠다.’ 라는 생각으로 우리학교에 진학했다고 한다.

정기전의 추억
이임생이 입학하던 당시, 우리학교 축구부는 홍명보(체교 87), 서정원(경영 88), 노정윤(경영 89)과 같이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뛰며 고대 축구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실 제가 입학하기 전에는 계속 정기전에서 졌는데, 제가 입학한 후에 치른 모든 정기전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의 명성을 다 떠나서 선배님들보다 더 내세울 게 있다면 바로 그 사실이에요.” 4번의 정기전에서 모두 이겼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정기전은 바로 93년도 정기전이라고 한다. 이임생은 그 당시 미국 월드컵 예선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빠져나와 정기전을 뛰었다. 당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이 사건으로 인해 이임생은 징계를 받게 되었고, 졸업 후 예정되어 있던 일본 진출도 불발되고야 말았다. “국내 드래프트에 참가하면 징계를 풀어준다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축구를 할 수 없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이임생의 Campus Life
학창 시절, 축구 이외의 추억이 있냐는 질문에 이임생은 “고생했던 기억밖에 없다,” 라고 답했다. 축구를 시작하고부터 대학시절까지 언제나 합숙의 연속이었고, 축구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캠퍼스 생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각급 대표팀에 불려 다니느라 대학 생활을 즐기기는커녕 일반 학우들과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90년도 아시아 청소년 대표, 91년도 세계 청소년 대표, 92년도 바르셀로나 올림픽, 93년도 월드컵 예선,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에 참석하며 수업에 거의 들어갈 수가 없었죠. 하다못해 수강신청도 친구들이 다 해줬을 정도이니까요.”
그 시절 이임생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은 바로 지금의 아내 ‘이선희’씨다. “정기전을 이기고 단상에 올라가 뱃노래를 불렀는데, 그 때 바로 옆에서 어깨동무를 했던 사람이 지금의 아내이다. 정신없이 캠퍼스를 지나가다 마주친 기억도 있고, 그 당시 파티에 참석해야 되는데 파트너가 필요해 부탁을 하기도 했었다. 그 당시 응원단과 선수들 사이에 교류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기전 준비를 하다 힘이 들 때면 아내가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우리학교 응원단 출신이기도 한 그의 아내는 지금 싱가포르에서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이영표 사건’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투지의 사나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임생을 98년 월드컵 벨기에전 ‘붕대 투혼’의 주역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그의 투혼은 지금도 회자되며 선수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그때를 회상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멕시코전과 네덜란드 전에서 모두 대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벨기에 전마저 지면 돌아가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한 마음으로 열심히 경기에 임하다 보니 부상이 오게 된 겁니다. 선수들에게는 팔, 다리가 부러지는 것이 가장 큰 부상인데, 그런 부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요.”라고 답했다. 자신의 부상보다 팀의 승리가 그에게는 더 중요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책임감과 의지  
그는 후배들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요즘 선수들은 과거에 비해 개성도 강하고 자유분방합니다.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는데, 책임감도 좀 더 따라줬으면 좋겠어요. 영국에 가서 느꼈지만, 영국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은 자유분방한데 그들의 책임감은 우리보다 더 낫습니다. 어떤 감독은 축구팀을 ‘악단’ 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연주를 하고, 그것으로 멋진 오케스트라 연주가 완성되면 큰 갈채를 받게 되죠. 마찬가지로 축구에서도 자기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을 다 하는 ‘책임감’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선수 스스로의 ‘의지’ 또한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지가 중요하죠.” 그는 히딩크 감독의 이 말을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임생은 최근 몇 년 간 정기전에서 승리를 하고 있지 못한 우리학교 후배들에게도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후배들이 ‘고대’ 라는 열정으로, 그리고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승리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대 선수가 되었다는 것은 바로 선택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최고’라는 자신의 가치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고대 교우들이 승리의 함성을 지를 수 있도록 경기에 열심히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이임생은 앞으로 해외에 나가 지도자 연수를 받고 싶다고 밝혔다. 무엇보다도 ‘언어 능력’이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축구 실력에 언어 능력이 겸비된다면 그만한 메리트는 없죠. 그동안은 그 중요성을 몰랐는데 이제부터라도 차근히 준비해 보고 싶네요.” 나중에는 축구 교실도 설립하고 싶다고 한다. 젊은 지도자로서 여러 가지 부분을 쇄신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영표 사건’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말을 꺼내기가 미안했다. 서로 간의 오해로 불거진 사건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선수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였다. 처음에는 곤란해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좀 많이 힘들었죠. 표면상으로는 제 잘못인 게 확실했으니까요. 저도 영표에게 사과를 했고, 영표도 사과를 했습니다. 그 전에 있던 일들은 다 묻어버리고 그런 행동 자체를 했던 것은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욕을 많이 먹었는데……. 앞으로 후배들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네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