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는 지난달 8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비정규직 보호법)’을 이유로 이미 학생들의 수강신청이 끝난 강사 75명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번 강사 해고는 본교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외대에서 124명, 대진대 95명 등 112개 대학에서 1200여 명 이상이 해고됐고, 서울대에서도 강사 해고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본교 구성원들은 곧바로 학교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다. 김영곤(본교강사·경영학)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위원장=윤정원, 이하 한교총) 고려대분회장은 지난달 12일(수) ‘강사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안암총학생회(회장=정태호·정경대 행정05) △세종총학생회(회장=임현묵·인문대 중국02) △민주동우회(회장=도천수·철학과 73학번) 등 학생 단체도 지난달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고 반대 움직임에 동참했다.

비정규직법 적용 가능한가

본교에선 해고의 이유 중 하나로 ‘비정규직 보호법’을 들고 있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주당 1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데 비정규교수의 강의시간이 주당 15시간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본교는 ‘강사의 근로시간은 강의·지도·연구시간을 인정해 강의시간의 3배로 인정해야 한다’는 지난 2003년 고등법원 판례를 근거로 주당 5시간 이상 강의한 강사를 해고했다. 본교 박지순(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등법원의 판례라도 다른 사건에서 같은 사안이 다뤄지면 법원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릴 수 있어 학교 입장에선 그런 경우를 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하지만 그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시간강사의 생계와 연구·교육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에도 비정규교수들과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타협안을 찾은 대학들도 있다. 제주대는 2003년 고등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고 강사 190여 명의 고용을 유지했다. 제주대 양유호 교원인사계장은 “△변호사 자문 △교육부 지침 △노동부 자료 등을 통해 ‘강사의 근로시간은 연구·지도·강의로 인정해 강의시간의 3배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례가 시간강사에겐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산대와 영남대는 비박사 시간강사를 각각 70명, 80명 해고하려 했으나 비정규교수노조와 협의를 거쳐 주당 5시간 이내로 강의시간을 제한하기로 하며 대량해고를 막았다.

한편, 본교는 이번 해고의 또 다른 이유로 비박사 강사의 전문성 부족을 들었다. 교무지원부 직원 정 씨는 “원래 본교 규정 상 강사임용 자격을 원칙적으로 박사학위 소지자로 규정하고 있어 그간 비박사 강사 임용은 예외였다”며 “비정규직법을 계기로 ‘예외’가 많았던 관행을 없애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고 강사 측은 박사학위 유무로 전문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영곤 분회장은 “비박사 강사들 중엔 저술 활동 등 다른 방식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도 있다”고 반박했다.

해고 강사들의 미래

본교는 계약이 해지된 강사들이 다른 대학에서 강의를 맡을 수 있도록 각 과 교수에게 안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고 강사들이 새로운 강의를 맡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정원 한교총 위원장은 “많은 대학이 강사 충원보다 다른 강사의 수업시수를 늘리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 말했다.

본교는 영남대나 제주대와 같이 비박사 강사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교무지원부 직원 정 씨는 “강의를 잘 할수 있는 강사 중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을 뽑을 것”이라며 “비박사 강사에 대한 고용보장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대안은 없나

한교총 측은 이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교수에게 교원지위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정규교수는 원래 교원이었지만 1977년 고등교육법 개정 이후 교원에서 제외됐다. 현행 고등교육법 제14조(교직원의 구분)에선 학교에 두는 교원을 총장 및 학장 외에 교수·부교수·조교수 및 전임강사로 해 전체 교수 중 60%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교수를 ‘교원’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시간강사 △외래교수 △겸임교수 △객원교수 등 전체 교수에서 비정규교수 비율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본교에선 전체 강사 중 약 38% 정도가 비정규교수이다. 본교 비정규교수 협의회 관계자는 “교원 지위를 얻게 되면 1년 단위로 계약을 한다”며 “4대보험도 적용받을 수 있고 방학에도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어 생활이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비정규교수 문제에 대한 국회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지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시간강사에 대한 신분적, 물질적 차별을 시정할 것을 권고했다. 제17대 국회에서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인정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있었지만 폐기됐다. 제18대 국회에서도 같은 법안을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이 발의했지만 처리되지 않고 있다.

오는 2010년 1학기에도 5학기째를 맞는 비정규교수가 있어 이번과 같은 일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한교총 윤 위원장은 “다음 학기가 되면 다시 4학기째를 맞는 강사들이 또 해고되며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라며 “비정규교수도 교원으로 인정해 신분적·물질적 차별을 없애야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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