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이란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방사선 치료 등 방사선이 산업에 많이 이용되면서 그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됐으나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막연히 ‘위험한 것’이라고 여겨지던 방사선 에너지가 최근엔 식품살균에 사용되고 있다.

방사선 조사기술은 식품의 △맛 △외관 △품질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 비가열 살균처리 방법으로 환경공해를 발생시키지 않는 친환경적 기술이다. 식량자원의 25% 이상이 △해충 △오염 △부패 등으로 손실돼 안정적인 식량 수급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암과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훈증제의 사용이 오는 2015년부터 전세계적으로 금지됨에 따라 방사선 조사기술이 실용적인 대체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방사선 조사는 저온에서 살균이 가능해 열처리에 의한 △영양소파괴 △색소파괴 △조직감변화 등의 품질손상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상추나 향신료 등 최종 조리나 열처리 등 다른 살균처리를 하지 않은 채 소비되는 식품엔 방사선 조사기술이 유용하다. 또한, 냉동상태거나 포장이 된 상태에서도 살균·살충이 가능해 국제 식량교역의 검역관리 기술로 이용되기도 한다. 본교 이철호(생명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는 “미국은 수입식품을 살균· 살충하기 위해 검역소 옆에 방사선 조사시설을 설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방사선 조사엔 방사성 동위원소인 코발트60을 이용해 얻은 감마선(γ-ray)이 이용된다. 감마선은 돌연변이를 발생하는 유도방사능을 생성하지 않아 안전하다. 방사선 조사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연구는 50년 이상에 걸쳐 이뤄졌으며, 방사선 에너지를 이용한 조사방법은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저장방법이라는 것이 연구결과를 통해 밝혀졌다. 현재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TO)가 세계의 식량문제 해결과 위생보건 증진차원에서 이 기술의 이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상황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전세계 52개국에서 방사선 조사를 허용하고 있다. 이철호 교수는 “방사선 조사기술은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안전성이 이미 검증됐다”며 “식량을 안전하고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86년부터 일부 식품의 방사선 조사를 허용했으며, 현재는 △감자 △양파 △마늘 등 26개의 식품에 한해 방사선 조사를 허용하고 있다. 방사선 조사는 국가에서 허가를 얻고 면허를 받은 방사선 조사시설에서 이뤄지며, 현재 (주)그린피아기술과 (주)소야 2곳에서 방사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방사선 조사기술이 이미 상용화 된 식품살균 방법이지만 방사선 조사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은 여전하다. 방사선 조사식품에 대한 홍보부족으로 소비자들이 방사능 오염식품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방사선 조사식품은 인체나 식품 등을 오염시켜 물리·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방사능 오염식품과는 다른 것이다. 방사선 조사식품은 유익한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따로 비용을 들여 이온화 에너지를 처리한 반면 방사능 오염식품은 핵 유출사고 또는 핵실험에서 발생된 방사능 물질에 의해 우발적으로 오염된 식품을 말한다.

방사선 조사기술의 안전성이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됐으나 소비자단체들은 알 권리를 주장하며 방사선을 조사한 원료가 포함된 식품에 의무표시제를 도입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이에 국내에서도 다음해 1월 1일부터 의무표시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지금까진 완제품에 방사선을 조사했을 때만 방사선 조사사실을 표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표시기준이 개정되면서 방사선 조사원료가 극소량이라도 포함된 경우엔 방사선 조사사실을 표시해야 한다.

일각에선 방사선 조사식품에 대한 의무표시제가 도입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방사선 조사식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라 소비자들은 방사선 조사표시를 한 제품의 구입을 꺼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방사선 조사업체 (주)그린피아기술의 김광훈 실장은 “과거엔 매년 수천 톤의 식품원료에 방사선을 조사했으나 표시제가 확대 시행됨에 따라 방사선 조사를 더 이상 의뢰하지 않는다”며 “기업들이 방사선 조사기술의 안전성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자사제품에 방사선을 조사한 원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기업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철호 교수는 “세계적으로 방사선 조사원료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라며 “대부분의 가공식품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방사선 조사가 되지 않은 원료만을 수입하게 되면 제품의 가격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전문가들은 방사선 조사식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이주운 박사는 “다년간의 연구 결과를 통해 안전성에 대한 일방적인 교육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정부와 소비자 간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방사선 조사기술의 발전과정과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줘 방사선 조사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막연한 불신을 줄이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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