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관님, 더 이상 전쟁터에 못 나가겠습니다. 비행(飛行)을 그만두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군의관에게 정신이상 판정을 신청해 허가 받으면 출격에서 빠질 수 있지” “그럼 당장 신청할게요. 전 미친놈입니다. 더 이상 비행을 못해요” “허허, 미친 사람은 자기가 미친 걸 몰라. 스스로 미쳤다고 보고할 정도면 미친 게 아니지” “그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조셉 헬러(Joseph Heller)의 소설 <Catch-22>에서 美공군대위와 군의관이 나누는 대화다. 규정 명칭인 'Catch-22'는 오늘날 ‘모순’을 뜻하는 영어단어로 쓰인다.

동서고금의 성인들은 행복하려면 돈을 멀리하라고 말한다. 돈을 좇으면 몸과 마음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이 돈을 멀리하면서 행복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하게 살려면 으리으리하진 않더라도 아담한 집 정도는 필요하다. 부모님 노후도 뒷바라지해야 되고, 자녀들 대학 등록금도 대야 한다.

적당히 벌고 욕심을 덜 부리면 되지 않을까. 옛날에는 욕심 안 부리고 월급만 차곡차곡 모아도 집을 사고 가족을 부양했다. 지금은 평생 월급을 모아도 집 한 채 장만하기 힘들다. 대학 등록금은 1000만원에 육박했고, 집안에 아픈 사람이라도 생기면 가계 전체가 흔들린다. 행복하려면 돈을 멀리해야 되지만 행복의 요건을 갖추려면 돈이 필요한 현실. Catch-22다.

소설은 허무하게 끝났다. 美공군대위는 대낮에 고무보트를 타고 부대를 탈영한다. 누구도 그의 탈영을 막지 않았다. 무슨 특별임무를 수행한다고 여겼으리라. 이 결말은 말도 안 되는 현실 때문에 고통 받지 말고 하루빨리 그 곳을 뜨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슬프게도 우리에겐 ‘탈영’ 가능성마저 없다. 부모형제와 아들딸을 두고 어딜 가겠나. 다 데리고 떠난다 해도 돈 없이 행복할 수 있는 곳도 없다.

세속적 가치를 다 내려놓고 산에 들어가면 돈 없이도 살 수는 있다. 대신 몸이 힘든 걸 감수해야 되고, 사회적・물질적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 이 정도 되면 성인이다.

어떤가. 생각은 쉬운데 현실은 가깝다. 또 Catch2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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