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과 달리 시간이 멈춘 듯 작고 조용한 마을이 있다. 달팽이를 닮은 마을.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에 위치한 삼지천마을이다.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마을답게 슬로시티의 마크인 달팽이가 그려진 깃발이 전봇대마다 휘날리고 있었다.

삼지천마을을 찾은 지난 12일(토)엔 아침부터 가을비가 내렸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더욱 조용한 모습일거란 기대와 달리 마을 초입엔 어린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노인들만 가득하리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허수아비 경연대회 모습
“오늘이 휴일이라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에요.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후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늘었거든요. 일회성 이벤트보단 주민과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참여 가능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하는 편인데 이번엔 추수철을 맞아 허수아비 경연대회를 기획했어요” 창평면사무소 앞마당에서 ‘허수아비 경연대회’를 진행하던 창평면사무소의 김철중 사무관이 말했다. 허수아비 경연장 근처에선 △느림보 자전거 경주 △전통떡 만들기 체험 △전통음료 무료시식 등의 행사도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허수아비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던 신정호(남·11세) 군은 창평에 아버지 농장이 있어 주말마다 이곳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번 주엔 허수아비 만드는 행사를 한다길래 이렇게 허수아비를 만들고 있어요. 처음 만드는 건데 생각보다 엄청 힘들어요. 그래도 예쁘죠?”
달팽이시장의 모습

매달 둘째 주 토요일은 삼지천마을의 축제날이다. 주민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과 전통음료를 판매하는 ‘달 팽이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날도 달팽이시장이 열리는 날이라 한적한 마을이 오랜만에 들썩였다. 오 전에 내린 비로 조금은 쌀쌀했지만 4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면사무소 주변에 나와 장을 벌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장과 비슷하게 할머니들이 가져온 물건을 바닥에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사실 많이 팔리진 않아. 그래도 이렇게 나와있는 게 좋은거지.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토요일엔 관광버스 3대 정도가 우리 마을에 오거든? 조용했던 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줘서 기분이 좋아” 직접 재배한 땅콩을 팔던 할머니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전통한옥의 모습
달팽이시장을 지나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자 전통가옥과 돌담길이 자아내는 예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창평면사무소에선 마을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무상으로 자전거를 대여해 준다. 걸어서 마을을 둘러보는 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벼가 익어가는 논을 끼고 자전거를 타는 일도 슬로시티 정신에 부합하는 작은 행복인 듯 보였다. 마을 곳곳에선 전라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한옥과 실제로 한옥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이 보였다. 서울에서 온 김희진(여·28세) 씨는 마을 풍경에 흡족스러워 하는 듯 보였다. “사실 이 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마을인지 모르고 여행을 왔어요. 마을 주민들 인심도 좋고 돌담길과 어우러진 한옥도 정말 예쁘네요.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이 있다는 게 신기해요. 다음엔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오려고요”

삼지천마을엔 돌담길과 전통가옥 뿐만 아니라 전통 생산방식으로 지역 특산품을 보호하는 3명의 전통식품 명인이 있다. 지난 1994년부터 농림수산식품부는 전통식품의 계승·발전을 위해 전통식품 명인을 지정해 왔다. 전국에 35명뿐인 식품명인 중 삼지천마을에만 3명이 있다. (주)담양식품 명진한과의 대표 박순애 씨도 그 중 하나로 전통방법을 고스란히 지키며 담양한과를 규격화하고 있다. 명진한과 직원 백정훈 씨는 한과는 대표적인 슬로푸드라고 설명한다. "한과를 만들려면 1주일 동안 삭힌 찹쌀을 건조·숙성한 뒤 튀겨내야하는데 짧게는 보름에서 한 달 가량이 걸려요. 한과를 만드는 데 드는 재료도 대부분 담양 지역에서 재배한 재료를 사용한답니다”

삼지천마을은 슬로시티로 인증된 만큼 계속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철중 사무관은 올 하반기엔 △돌담길복원 △삼지천복원사업 △마을길 재포장 사업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슬로시티로 지정되기 전부터 돌담길과 전통가옥이 있었지만 관리가 소홀해 흉물스러운 곳도 있었어요. 그래서 요샌 마을 외관을 개선하는데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도로를 내느라 아스팔트로 덮혀 있지만 예전엔 마을을 가로지르는 실개천도 있었어요. 삼지천이 복원되고 물길을 따라 산책로가 만들어지면 예전의 마을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과거와 현재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삼지천마을, 이곳에서 주민들은 오늘도 전통과 지역성을 간직한 채 힘을 모아 슬로시티 안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