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한 빅터 리 감독의 '3년의 약속'
지키지 못한 빅터 리 감독의 '3년의 약속'
  • 김명선 기자
  • 승인 2009.09.22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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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를 이기기 위해 3년의 시간을 달라"던 빅터 리 감독의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9월 11일 목동에서 벌어진 연세대와의 아이스하키 정기전에서 3피리어드에서만 3골을 허용, 2-4로 역전패하며 12년 간 정기전에서 ‘무승’의 역사에 1년을 추가하게 됐다.

1피리어드 시작과 동시에 고려대는 매서운 공격력을 보여줬다. 쉴 새없는 슈팅과 퍽 소유를 통해 경기의 운영권을 장악했다.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감 있게 목동의 빙판을 갈고 있었다. 선취골이 쉽게 나오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서 파상 공세에 초조해지는 쪽은 오히려 고려대였다. 연세대는 차분하게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고, 고려대는 득점이 나지 않는 분위기에 오히려 손쉬운 패스 미스를 범하고 있었다. 2피리어드 연세대 골리인 박성제의 몸을 맞고 나온 퍽을 윤상혁이 침착하게 밀어 넣으며 선취골을 성공시켰으나 고려대는 여기까지였다. 연세대의 폭넓은 링크장 활용과 안정된 수비에 선수들은 점점 지쳐만갔다. 3피리어드에서 연세대의 빠른 공격을 쫓아 가기엔 선수들의 체력 소모가 이미 심한 상태였다. 연세대는 한 두 차례씩 만들어 낸 득점 찬스마다 침착하게 골로 성공시키며 어느새 전광판의 점수판은 연세대의 승리를 알려 주고 있었다.

윤지만의 한 방

U-19 대회에서 베스트 6에 뽑힌 바 있는 연세대의 새내기 윤지만의 결정적인 중거리슛이 경기를 뒤바꿔놓았다. 자칫 경기 흐름 상 고려대의 공세에 쉽게 12년 간 쌓아 올린 선배들의 공적이 무너져 내릴뻔했다. 윤지만은 0-1로 뒤쳐진 지 8분만에 번개 같은 동점 중거리슛을 쏘아 올리며 경기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반전시켰다. 경기 후 이원의 눈물은 그 골을 막지 못한 자책감과 아쉬움에서 나온 것이었다. 중거리슛에 대한 부담감에 고려대는 마음껏 추가골을 향한 공세를 펼치지 못했고 수비수들은 평소보다 한 발 더 나와 움직이며 밀착 수비를 해야만 했다. 중거리슛으로 동점골을 허용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이는 퍽을 길게길게 패스하며 링크장을 넓게 사용한 연세대 선수들에 비해 고려대 선수들의 체력을 급격히 저하시키게 되었다.

무뎠던 공격진

김형준-신형윤-신상우-한호택 등으로 이루어진 빠른 공격진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빠른 스피드와 돌파가 장기인 김형준과 한호택은 평소 경기와 달리 잘 보이지 않았다. 연세대는 패스의 길목을 막기 보단 개개인 선수 대인마크를 해내며 예비 움직임 위주의 디펜스를 해냈다. 신상우의 파워풀한 몸싸움은 연세대 수비진을 어느 정도 흐트러 놓을 수 있었으나 퍽을 받아줄 다른 선수가 보이지 않았다. 신형윤은 정기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평소보다 활발하지 못한 움직임으로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형준과 한호택의 장기인 빠른 돌파는 연세대의 대인 방어에 막혀 패스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고려대의 장점이었던 선수 개개인 자신의 장점을 살린 다양한 공격의 극대화가 필요했던 아쉬운 대목이었다.

박성제, 박성제, 박성제…

고려대 응원단 근처에서 경기를 보았다면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슛!'과 '아~'라는 탄식이었다. 이름이 가장 많이 불린 선수는 고려대 선수가 아닌 바로 연세대 골리 박성제였다. 그만큼 고려대의 공격이 활발했고 그 공격을 안타까운 탄식으로 바꿔낸 선수는 바로 박성제인 셈이었다. 단 한 번도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박성제의 모습은 너무나 높아 보였다. 뛰어 넘어야할 절대무적의 ‘최종 보스’이자 ‘벽’ 그 자체였다. 너무나 침착하게 때론 여유롭게 퍽을 막아내고 있었다. 들어간 두 골도 슛을 막고 혼전 중 튀어 나온 2차 과정에서 나온 터라, 과연 저 선수에게 한 번에 슛으로 골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골대 앞 경합 과정에선 어김 없이 몸을 날려 퍽을 키핑해내는 모습 속에서 노련함이 돋보였다.

한국 아이스하키계의 양대산맥

고려대와 연세대는 틀림없이 한국 아이스하키계를 이끄는 양대 산맥이다. 이번 정기전을 보며 연세대는 한층 더 성장했다는 평가다. 고려대도 일정 수준 이상 성장했지만, 연세대는 다시 한 번 한 단계 더 도망간 상태였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는 양 팀의 끊임 없는 노력 속에서 한국 아이스하키계의 성장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따라가려는 자’와 ‘최강을 수성하려는 자’가 펼치는 양교의 라이벌전. 목동을 가득 채운 붉은 '물결'과 푸른 '파도'의 정기전 축제는 이렇게 끝났지만 올해 한국 아이스하키의 축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시 만날 10월, 양 교는 어떤 새로운 경기 모습을 보여줄 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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