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는 유독 “덥다, 지친다.”라는 말이 입만 열면 튀어나왔다. 평소 남들보다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체질이었던 터라 더위 앞에서 맥없이 쓰러지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평소 챙기지 않던 보양식을 때마다 잘 챙겨먹었다. 그리고 보양식의 효능도 톡톡히 누리기까지 한 특별한 여름이었다. 

그럼에도 올 여름은 내가 견디기에는 버거운 계절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찌는듯한 무더위와 갈진된 체력으로 야기된 문제는 아니다. 바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희망퇴직권고를 받게 된 것이다. 나뿐 아니라 같은 부서 사람들도 서로 눈치만 보며 좀처럼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부서별로 한두 명은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피고용인의 불안함에 쫓기기 보다는 신세계를 찾아 떠나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무너져내리는 회사를 나왔다. 하지만 막상 직장을 잃고 나니 많은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를 덮쳐왔다.

처음에는 혹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이 위기를 잘 이겨내고 더 좋은 회사로 입성할 것이라는 긍정적이고 해피엔딩적 상상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딱 일주일만에 현실 앞에서 그 상상은 빛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2주차로 접어들면서 대학입시 이후 처음 느껴보는 절박감에 시달리며 최선을 다해 여러 곳에 구직활동을 해보았다. 몇 통의 입사문의 전화와 2번의 면접을 보았지만 합격까지는 가지 못했다. 혹 새로운 소식이 없을까 싶어 메일을 열어보지만 메일함을 채우는 것은 스팸광고들 뿐이었다.

이렇게 불현듯 찾아온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기 못한 내 삶은 서서히 방전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날수록 내 삶을 지탱해 주고 있는 뭔가를 조금씩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하루는 퇴근하면서 책을 하나 선물해주었다. 그 책은 얼마전에 돌아가신 장영희 선생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라는 문학 에세이였다. 아내가 출근한 뒤, 오랜만에 책에 빠져서 시간을 보냈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 한 곳이라도 더 입사지원서류를 넣어도 불안할 판에 내 손에는 키보드와 마우스 대신 책이 들려있었다. 나는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니 책을 놓기 싫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뭔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책의 제목처럼 나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 뭔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문학의 힘’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장영희 선생님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끊임없는 위협 앞에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방법들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었다.

나 역시 예상치 못한 위기 앞에서 뭔가를 잃어가다가 한 권의 책을 통해서 희미해진 길을 다시금 찾은 것 같았다. 바로 그 길은 용기였다. 책을 덮은 지금도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라는 월리엄 포크너의 고백이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도는 것 같다.

 <햇살 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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