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아픈 추억이 많은 독일인들은 이번 이라크 전쟁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 이라크전 발발 전인 지난 2월 15일 그리고 미·영 연합군이 아무런 저항 없이 바그다드로 진군하고 있던 3월 31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정착을 요구하는 시위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베를린에서는 지난 2월에 이어 다시 한번 5만 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앞세우며 거리고 나섰다. 두 군데에서 시작된 이번 시위의 최종 집결 장소는 베를린에 있는 전쟁과 관련된 기념물 중에 하나인 승전기념탑으로, 이 기념탑은 과거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를 거두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진 베를린의 상징이다.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 라우는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도 있긴 하지만, 이번 이라크 전쟁은 그 경우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부시가 이번 전쟁에서 자신이 신이 주신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오해’이며 완전히 일방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라크전쟁이 자신이 경험한 2차대전의 끔직한 기억을 상기시킨다면서, TV화면은 사람들의 실제적인 고통까지 전달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TV를 통해보는 것은 전쟁의 실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피셔 독일외무부장관도 ‘이번 전쟁이 시리즈가 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평화적 해결우선과 유엔권한강화를 요구했다. 그는 유엔안보리가 있는데도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미국의 역할을 거부했다. 또한, 지금 영국이나 스페인처럼 미국의 편을 든 나라 정부들은 국민들의 반대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부분적으로 민주주의가 불안해지는 데에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이와 반대로 평소 기본적인 입장을 같이하는 우호적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증표’라고 주장했다.

한편 베를린에서 발행되는 某일간지에서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베를린 시민들의 반응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베를린 시민의 82%가 이번 전쟁을 반대하고 있으며, 이번 전쟁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한 독일 정부의 외교적인 행동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와 함께 현 집권당인 SPD의 지지율이 4%가량 올라갔다. 물론 이러한 베를린 시민들의 경향이 독일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한 일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조사에서는 40%:57%의 결과를 보였는데, 긍정적인 생각은 전쟁전보다 4% 줄었고, 이에 반해 부정적인 생각은 10%가량 늘어났다. 특히, 30대 이하의 연령대에서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경향이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그 비율은 상당수 늘어났다.

베를린 시내를 걷다보면 어렵지 않게 반전·반미 포스터나 유인물을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가정집 베란다에 내 걸려 있는 작은 깃발들이다. 주택가 골목마다 얇은 헝겊천에 아무렇게나 써서 걸어 놓은 ‘Kein Krieg’(전쟁반대)이라는 짧은 문구들을 보면서, 하루속히 전쟁이 종결되기를 바라는 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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