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숫단 속의 비는 안 새었다. 그저 어둡고 좁은 게 안 됐다. 앞에 나앉은 소년은 그냥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 소년의 어깨에서 김이 올랐다. 소녀가 속삭이듯이, 이리 들어와 앉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 황순원, <소나기> 중에서.


경기도 양평, 작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 마을’이 있다.

소나기 마을은 지난 6월 개장했다. 한 소년과 소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잔잔한 문체로 풀어낸 황순원의 대표작 <소나기>를 재현한 소나기 마을은 그 위치 역시 소설 속에서 추정된 것이다. 소설 속 소녀가 양평읍으로 이사를 간다는 대목에서  그 배경이 양평군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고, 이에 소나기 마을이 경기도 양평의 한 야산에 들어서게 됐다. 양평군은 소나기 마을 재현을 위해 △국비 50억원 △도비 25억원 △군비 49억원 등 약 12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06년 말 공사를 시작했다.

황순원은 본래 북한 출신으로 고향은 평안남도다. 소설가를 추모하는 문학관은 대부분 작가의 생가가 있는 곳이나 고향에 만들어지지만 분단 상황에서 황순원의 생가에 문학관을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작가 김소월이나 백석의 문학관이 현재 없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다. 황순원은 1946년 월남해 인생의 3분의 2를 남한에서 지냈고 본인이 남한에 문학관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소나기 마을 김기택 사무국장은 “황순원 선생님 작고 이후 황 선생님의 경희대 제자들이 문학관 건립을 추진했다”며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소설 <소나기>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관을 양평군과 협의해 건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소나기 마을은 황순원 문학관을 비롯해 황순원의 소설들을 재현한 황순원 기념 문학 테마파크로 이뤄져 있다. 황순원 문학관엔 작가의 일대기를 기록한 영상물과 생전에 사용하던 유품과 집필 공간 등을 재현해뒀다. 황순원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이자 의무’라며 자신의 원고가 활자화될 때까지 자신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끊임없이 교정했다고 한다. 전시실엔 황순원이 생전 사용하던 △만년필 △시계 △훈장부터 직접 수정한 소설 원고 수정본, 육필 원고들이 있어 이러한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문학관 내 전시실엔 입체적인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소나기 △독 짓는 늙은이 △학 등 주요 작품들을 설명해주는 영상물과 조각품들이 마련돼 있다. 옛 시대의 학교 교실을 재현한 듯한 남폿불 영상실에선 <소나기>를 각색한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아담한 문학 카페에선 황순원의 소설들을 직접 책으로 보거나 오디오 북으로 들을 수 있다. 김기택 사무국장은 “문학은 △영화 △연극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른 여러 인접 장르로 접목해 나타낼 수 있다”며 “황순원 작가의 소설을 다른 분야에 접목시켜 공간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곳이 바로 소나기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황순원 기념 문학 테마파크는 황순원의 다른 작품들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지만 주로 <소나기>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수숫단 △원두막 △징검다리 △시냇물 등이 있는 소나기 광장이 대표적이다. 소나기 광장에선 하루에 3번씩 인공 소나기 체험이 진행된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인공 비에 사람들은 원두막 아래로, 수숫단 아래로, 비가 오지 않는 곳으로 몸을 피하며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황순원 문학관이 원뿔 모양인 것도 소설 속 수숫단 모형을 본 뜬 것이다. 김 사무국장은 “광장의 원뿔형 유리로 만들어진 분수대 앞엔 소년과 소녀 동상이 있다”며 “이 분수대 역시 수숫단 안의 소년과 소녀를 형상하며 분수는 소나기를 의미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나기 광장 주변으로 펼쳐져 있는 소나기 산책로엔 황순원 작가와 부인의 묘비가 나란히 안장돼 있다. 그 곳을 지나면 △수숫단 오솔길 △해와 달의 길 △고백의 길 △고향의 숲 등 문학적인 이름의 길들이 나타난다. 각 테마에 맞춰 만들어진 △들꽃으로 둘러싸인 의자 △산책길 중간에 놓인 소년과 소녀의 동상 △소나기를 피해 소녀를 업고 지나가던 징검다리를 지나며 시골 마을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황순원의 열정이 살아 숨쉬는 곳, 숲과 시냇물로 둘러싸여 맑은 공기와 깨끗한 자연을 갖춘 소나기 마을에서 문학의 낭만과 시골 마을의 포근함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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