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수록 신종플루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만 누적환자가 1만50000 명을 넘어섰고 희생자도 11명으로 늘었다. 사망자들은 대개 다른 병을 앓던 고령자였지만 평소 건강한 사람이라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뇌염 합병증으로 사망한 경우도 나왔으니 말이다.   
병의 확산속도도 무섭지만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부족한 것이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정부가 비축한 물량은 현재 250만 명 분. 연말까지 선진국 수준인 인구대비 20%(1030만명)분의 항 바이러스제를 보유하게 된다고 하지만 올 가을이 신종플루 확산의 고비로 여겨지는 만큼 복제약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신종플루가 이렇게 확산되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겐 먼 나라 얘기다. 비싼 검진비 때문이다. 한 병원에서 환자에게 청구한 검사비는 무려 15만원, 여기에 5만원의 특진비를 더해 20만원이나 된다. 한 달을 40만원 남짓 수당으로 살아가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인, 노숙자들로선 병원 문턱조차 넘을 여력이 없다.

실제로 신종플루와 관련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득이 많을수록, 지역적으로는 서울 강남3구 등에서 타미플루 등 항바이러스제 처방이 집중되고 있다.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안홍준 의원이 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의 처방율이 하위 20% 처방율에 비해 3.7배 많았다고 한다. 이러니 사회적 약자들의 한숨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들의 어깨를 더욱 처지게 하는 건 또 있다. 치료목적으로 처방하는 데도 빠듯한 이 약을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이 편법 처방을 받아 타낸다는 점이다. 입원환자와 65세 이상 노인, 만성질환자, 임산부 등 고위험군이거나 신종플루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에만 처방을 허용하도록 규정했지만 엄격하게 지켜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얼마 전 강남구 의회 소속 일부 의원들이 해외출장을 빌미로 타미플루를 편법 처방받았던 사건도 그랬다. 이들은 병력도 없고 체온도 정상이었지만 ‘어쨌건’ 의심환자로 분류돼 타미 플루를 타냈다. 강남구보건소 측은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처음엔 처방사실이 없다고 완강히 버티다가 말을 바꾸기까지 했다. “신종플루일 가능성이 0.1%라도 있으면 처방해주는 것이 의료인의 양심”이라며. 하지만 보건소측은 평소와 달리 타미플루 처방 사실을 전산망에 입력하지 않은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런 떳떳치 못한 사정이 있는데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묵묵부답, 고작 한다는 소리가 “처벌하기가 쉽지 않은데요”였다.

타미플루는 모두 정부 비축물로 사실상 국가재산이다. 암시장에선 10만원 가량 된다는 이 약품을 처방전만 있으면 2000원에도 살 수 있는 것은 정부예산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허술한 관리 속에 약이 빼돌려지거나 편법 처방전으로 약이 유출된다 해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면 그 폐해는 막심하다. 국가 재산의 낭비도 문제지만 국민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정부가 책임을 놓아버리는 일이다. 빈부의 격차가 건강권마저 위협하는 현실 속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한숨만 깊어가고 있다.

<검은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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