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뉴욕 한인사회에 비상이 걸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흉흉한 현실이 맨하탄을 강타하면서, 부동산 브로커와 무역업자 비중이 유독 높은 뉴욕·뉴저지의 한인사회는 모국으로부터 뭔가 시원한 해법, 그러니까 단타성 주택투기 붐을 일으키기에 더없이 좋은 건수가 몇 개 터질 것으로 기대했다.

‘Buy Korea’를 모토로 한 공식 IR이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시작되자, 일부 교민들은 ‘검은 머리 외국인(한인)’들과 정부 관계자들로만 가득한 연회장을 조롱하며 자리를 떴고, 일부는 그나마 몇 되지도 않는 백인들과 ‘싸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실속도 꽤나 챙겼다. KOSPI 100대 기업의 주식과 채권, 강남 아파트와 상가, 심지어 IT벤처기업이나 독립 브랜드 라이선스에 이르기까지 지금이 최상의 매수 타이밍이라는 ‘노랑머리 Wall Street 알바들’의 전망을 필두로 인천경제자유구역, 제주국제자유도시, 여수세계박람회 리더들이 단상에 올라 현란한 홍보자료로 교포들의 절박한 심장을 녹여주었다. Buy Korea행사가 100년 만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메시아의 ‘투자 복음’을 한인사회에 전파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커튼 콜 바람은 절로 일어났다.

뉴욕 주류사회가 동북아, 그 중에서도 가장 덜 위협적인 한국의 가치에 눈을 뜨고 있다거나, 결국 아시아의 자본은 친미성향이므로 조만간 미국으로 쏠리게 돼있다는 등의 자신감이 교민사회를 휩쓸었다. 그러나, 굵직한 자본간의 혼인을 성사시킬 만한 위인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고, ‘한국말 잘 못하는 미국인’ 시늉을 하며 거대 배후자본을 끼고 방한한 ‘재미교포 2~3세 놀이’도 점차 끝발이 약해져 갔다.

‘차가운 도시남자’이자 한 박자 느린 나는 서울로 돌아와, 뉴욕으로 국내 투기자본을 옮기려는 몇몇 헤지펀드 회사나 전략컨설팅회사의 면접자리에서 이제 국제적인 ‘돈세탁’이 합법적화된 셈이라는 ‘복음’을 떠들고 다녔다. 뉴요커 생활의 호사를 버리고 서울을 택한 건실한 젊은이 연기를 하던 나는 그러나, 이내 벽에 부딪혔다. Wall Street에, Fifth Avenue에, 심지어 거대한 세계정치 중심지 워싱턴 DC에, 끈끈한 연줄이 있기는 한가? 오바마 행정부와 직접적인 네트워크가 없어 고전한다는 청와대나, 믿을만한 현지 협력사를 찾지 못해 낭패만 봤다는 한국 기업들의 궁색한 사연들을 떠올리며 일순간 자위는 했지만, 나는 도무지 나 자신이 몇 년간 미국을 단순체험한 낭인인지, 난제를 풀 만한 ‘줄 좋은’ 친미파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일전에 문과대의 모 교수님 가라사대, “외국을 한 달 여행하면 에세이를 쓰고, 석 달을 여행하면 가이드북을 쓴다. 하지만 그 사회라는 정글과 뒤엉켜 몇 년 살다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부탁 하나 드려보자. 당신이 미국 여행, 출장, 어학연수, 유학을 준비 중이시라면 ‘간 보기’만 하고 돌아오지 마시라.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정계, 학계, 재계 줄만 하나 제대로 연결해줘도 당신은 유능한 ‘전략적 친미파’이며 애국자다.

<國際迷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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