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눈물이 핑 돌며 온 몸에 힘이 풀렸다. 2006년에도, 2008년에도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그때의 눈물이 허탈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아니었다. 이제서야 해냈다는 느낌, 드디어 부활했다는 기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직 죽지 않은 고려대 축구가 5년 만에 정기전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다.

SPORTS KU의 예감 70% 적중!

공격라인의 적중도는 비교적 정확한 편이었다. 박정훈(체교 07)과 박진수(체교 06) 박상현(체교 06) 서영덕(체교 06) 모두 선발로 출전하였고, 거기에 유준수(체교 07)가 더해졌다. 유준수는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빛을 발했다. 허리에는 당초 수비형 미드필더가 두 명 출전할 것이라 예상됐으나, 이재권(체교 06)만이 중원을 지켰다. 수비라인에서는 김동철(체교 08)과 견희재(체교 08)가 처음으로 정기전에 출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졸업을 앞둔 오주현(체교 06)과 작년에 이어 벌써 두 번째로 잠실 무대를 밟는 양준아(사체 08)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우리학교 수비의 핵이라 여겨지는 이용(체교 07)과 이경렬(체교 06)은 나란히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골키퍼 김기용(체교 09)은 1학년 선수로는 유일하게 선발 출장했다. <SPORTS KU> 예상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11명 중 8명이 정기전 당일 선발 출전하며 70%의 적중도를 보였다.

준비는 철저하게
축구부는 정기전을 한 달 앞두고 강릉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이곳에서 강원도를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팀 강원 FC와 연습 경기를 자주 가지며 실전 훈련을 했다. 일주일 남짓 남았을 무렵 서울로 돌아와 서울교육문화회관을 숙소로 잡고 잠실 보조구장에서 훈련하며 정기전을 준비했다. 경기 하루 전날에는 30~40분 정도로 가볍게 훈련을 소화했다. 식사는 입맛에 맞는 한식으로 준비되었고, 혹시나 경기에 영향을 줄까 우려해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은 절대적으로 피했다고 한다.

종합 무승부를 노린다, 5년 무승의 고리를 끊는다
2009년 9월 12일 오후 1시, 잠실 주경기장. 축구부의 어깨는 무거웠다. 앞서 치러진 네 종목의 경기들 가운데 오직 야구에서만 승전고가 울렸기 때문이다. 정기전 마지막 경기인 축구에서 1승을 올려야만 전체 2승 1무 2패로 종합 무승부라도 거둘 수 있었다. 더구나 축구부는 박주영이 뛰었던 2004년 정기전 이래로 지난 5년간 정기전에서 승리를 맛보지 못하던 터.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정기전을 앞두고 기자는 우리 선수 측과 연세대 선수 측, 그리고 제3자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볼 기회를 가졌다. 두말할 것 없이, 우리학교 선수들은 5년 만의 첫 승리를 향해 강한 집념을 불태우고 있었다. 특히 이번 정기전이 마지막이 될 4학년 선수들의 의지가 대단했다.
반면 지난 5년간 무패 행진을 이어온 연세대 선수들은 조금 더 여유로웠다. 연세대 주장 이현웅(07학번, MF)은 “이런 것이 쌓여 전통이 되는 것 같다”라는 말로 선수단 내부의 자신감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지난 8월 10일 녹지운동장에서 벌어진 우리학교와 한양대 간의 U리그 경기가 우리학교의 1대 0 승리로 끝난 뒤, 한양대 신현호 감독에게 정기전 예상 결과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구체적인 스코어를 이야기해주길 바랐던 기자의 마음과는 달리, 신 감독은 “워낙 색깔이 다른 두 팀이라 어느 한 쪽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라며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 “날씨도 큰 변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신 감독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12일은 아침부터 계속 거센 비가 쏟아졌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악천후와 함께 찾아왔다. 그러나 거짓말 같게도, 퍼붓는 빗속에서도 우리학교 선수들은 경기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침착하면서도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했고, 결국 정기전 축구경기의 승리는 5년 만에 우리학교의 차지로 돌아왔다.

옥에도 티는 존재하는 법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완벽한 우리학교의 승리였다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았다. 바로 후반 10분, 연세대에 추격의 발판을 마련해 준 페널티 허용. 이날 오른쪽 수비수로 출격한 오주현이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연세대 남준재(07학번, FW)를 잡아당기며 무리한 파울을 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2대 1. 여전히 우리학교가 앞서고 있는 상황이기는 했으나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심경이 같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번 기운 승운은 좀처럼 뒤집히지 않았다. 연세대의 공세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모든 슈팅이 위로 뜨거나 골문을 살짝 비껴나는 데에 그쳤으며, 후반 40분에는 남준재가 옐로카드를 받음과 동시에 이에 반발한 연세대 신재흠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를 하다가 퇴장을 당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화려한 승리, 그러나 뒤풀이는 간소하게
결국 정기전의 피날레를 장식한 축구부의 승리. “수고한 선수들이여 마음껏 놀아라!”일 줄 알았는데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거창한 뒤풀이는 없었다고 한다. 경기와 응원전이 끝나고 안암으로 돌아와 같은 학년 선수들끼리 술 한 잔씩 하고 끝냈다는데……. 이후 축구부 선수들은 1주일의 꿀맛 같은 휴가를 받았다. 선수들 모두 집으로 돌아가 그 동안 만나지 못 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과 함께 편한 휴식을 즐겼다고.


<비하인드 스토리>
05학번들의 귀여운 질투(?)
3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뛰고 부대끼고 지냈을 05학번 졸업생들과 06학번 4학년 선수들. 1년 터울의 선•후배 지간으로 정도 많이 들었을 텐데, 이 1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두 학번의 운명이 이토록 달라지게 될 것이라는 걸 누가 알았겠는가. 05학번은 '4년 내내 정기전에서 승리하지 못한 학번'으로 남은 반면, 06학번은 '5년만의 정기전 승리를 이뤄낸 학번'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올해 후배들의 승리를 혹 예감이라도 하고 질투한 것일까. 정기전을 위해 맹훈련 중인 재학생 선수들에게 연락하며 05학번 형들은 '너희는 이번에도 질 거다', '너희는 안 된다'라고 장난스런 저주(?)를 퍼부었단다. 그래도 사실은 마음 속으로 그 누구보다도 더 후배들을 응원하고 있었을 그들이라는 걸 우리가 왜 모를까.

가을비는 추웠다
선수들도 사람이었던 것에는 틀림이 없다. 전반 20분 무렵부터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강풍까지 동반하여 일반 학우들은 물론 비교적 뒤편에 위치한 프레스석에 앉은 기자들까지 추위에 덜덜 떨게 만들었던 초가을 비는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니는 선수들이 느끼기에도 추웠다고. 비가 많이 오면 잔디가 미끄러워져서 부상의 위험이 있네,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이 더 커지네 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 그날의 비를 떠올리던 한 선수는 “정말, 너무 추웠어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재민과 박희성의 공통점
첫째, 두 선수 모두 다 공격수이다.
둘째, 두 선수 모두 다 이번 정기전에 후반 교체로 출전했다.
셋째, 두 선수 모두 다 한 엉덩이 하시는 분들이다.
그러나 두 선수가 뛰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보던 4학년 골키퍼 한일구의 설명에 의하면 “박희성은 저게 다 근육인데 이재민은 살”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박희성(체교 09, FW)은 본래 오는 25일부터 이집트에서 열릴 U-20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정기전 출전이 불가능할 전망이었는데, 이날 잠실벌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의아함을 자아내기도.

이경렬 주장의 멋진 상체누드 FM, 그 뒤에는……
힘든 경기를 통쾌한 승리로 마무리한 뒤 응원단상으로 달려온 선수들. 경기에 대한 소감을 말하고 있는 주장 이경렬(체교 06, DF)에게 학우들의 열화와 같은 FM 요청이 쏟아졌는데. 이에 이경렬은 터프하게 웃통까지 벗으며 “안녕하십니까~ 민족고대~”를 외쳤고, 드러난 탄탄한 몸매에 여학생들이 쓰러지던 그때 다른 이유로 정신을 잃을 뻔한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SPORTS KU>의 박모 사진기자. 벗어 던진 유니폼을 운 좋게 받은 것에 ‘와우’를 외치기도 잠시, ‘올레’는 찾을 틈도 없이 코를 마비시키는 땀냄새에 실신하는 줄 알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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