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라인업은 맞았지만...

농구 예상라인업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우리학교는 100%, 연세대는 한명이 틀린 80%. 정창영-신정섭-유성호-하재필-방경수. 9월 11일 전광판에 불이 들어온 순간, 라인업은 ‘역시나’였다. 9월호에 나온 라인업 그대로 전광판에 5명의 이름이 뜬 것이다. 정기전 전날에도 이충희 감독에게 확답을 받은 라인업이니 틀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예상라인업이 맞냐 틀리냐가 아니었다.

2009 정기전은 할 말 없는 참패였다. 역대 최다점수차 패배라는 쓰라린 기록도 세워졌다. 고대농구를 처음 본 학우라면, 아니 몇 년 간 정기전만 봐온 학우라면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올만한 경기였다. 기자가 경기장에서 들은 몇몇 관중들의 목소리는 이랬다.
“우리학교 왜 이렇게 못하냐” “감독 바꿔봐야 소용없네” “그냥 감독 바꾸지 말고 가지”
하지만 이번 정기전은 단순히 선수들의 잘못도, 감독의 잘못도 아니었다. 물론 정기전 패배의 표면적인 이유는 선수들의 훈련 부족이었다. 경기장을 찾은 농구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고대 선수들이 운동 안한 게 티가 난다” “훈련 못한 걸 속일 수는 없었다”
훈련 부족은 정신적인 측면까지 이어졌다. 경기 내내 우리학교 선수들은 조급한 플레이를 일삼았다. 볼은 손에서 떠나갔고, 실책은 계속됐다. 하지만 선수들을 욕할 수 만은 없다. 이번 패배는 지난 3개월간의 일들의 집합체였기 때문이다.

6월, 비극의 시작

6월은 농구부 비극의 시작이었다. 5월 28일, 1학년 임준수가 ‘말할 수 없는’ 사정으로 성균관대 이적을 결정하면서 농구부 내부의 문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학교 체육위원회는 농구부를 일시 해산시키기로 하며 수습에 나섰다. 그리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임정명 감독에게 ‘견책’이라는 징계를 내리게 된다. 그 후 언론매체들이 다룬 표현은 이렇다.
‘임정명 감독이 선수 폭행에 연루돼 고대 체육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 7월15일자 노컷뉴스 中
‘이번 사태는 고려대 측에서 고압적인 지도 방법을 문제삼은 학부모들의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지난 6월 임정명 감독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이충희 감독대행을 내정하면서’ - 8월5일자 점프볼 中
지난해 4월 비전선포식에서 구타와 가혹행위를 근절한다는 선서를 했던 임 감독이었기에 아쉬움과 배신감은 더 컸다. 어찌됐든 임 감독은 징계를 받았기에 농구부를 이끌 새 얼굴이 필요했다.

학교가 선택한 승부수, 이충희

일이 급하게 돌아가자 학교 측은 부랴부랴 새로운 감독을 찾았다. 총장이 직접 선택한 인물은 고대농구의 얼굴, ‘이충희’였다. 이충희 감독이 오자 농구부는 잠시 안정을 되찾는가 싶었다. 이 감독도 ‘새출발’을 강조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하지만 농구부 내 파벌은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제주도에서 열린 7월 전국종별선수권대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한 선수의 학부모가 이충희 감독을 폭행죄로 고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이를 본격적인 감독 흔들기로 치부하고 대회 준비에 열을 올렸다. 어수선한 상태에서 농구부는 제주도로 내려갔고, 뜻밖의(?) 우승을 거두게 된다. 이에 이기수 총장은 3일 후인 7월 27일 농구부 선수들을 불러 격려까지 베풀었다. 야구부가 6월 13년 만의 대통령배 우승을 차지하고도 아무런 행사가 없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당장의 성적이 필요했던 학교로서는 의미있는 수확이었던 것이다.

훈련은 시작됐지만...

농구부가 종별선수권에서 우승을 하고 돌아오자,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일단 우승 프리미엄으로 팀을 이끌어나갈 구실을 마련하게 됐고, 이충희 감독과 강병수 코치의 임명장도 발급된 것이다. 하지만 임명장의 발급은 ‘한지붕 두감독’ 체제를 공식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임정명 감독은 결국 총장과 체육위원장, 이충희 감독을 상대로 “나 이외에는 농구부를 지도할 수 없다”면서 고소장을 냈다. 임 감독으로서도 나름 일리있는 선택이었다. 몇 개월 징계를 받았다고 해서 새 감독을 마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보다 행정 실수가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단순 징계와 해임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임에도, 학교는 농구부에 ‘징계 받은 감독’과 ‘감독대행’을 동시에 두는 우를 범한 것이다.

희망의 빛이 보였던 8월

하지만 8월 중순경, 임정명 감독은 고소 취하를 결정했다. 정기전까지 손을 떼는 대신 10학번 스카우트와 정기전 후의 선수 관리를 임 감독의 의견에 따라 학교 측과 협의를 본 것이다. 임 감독이 고소를 취하하자 , 주위에서는 ‘고대가 드디어 정기전 준비를 할 수 있겠구나’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농구부로서도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정기전 준비에 마음놓고 몰두할 수 있었다. 비록 연대처럼 전지훈련을 떠나지는 못했지만, 고교 및 프로팀과의 연습경기를 통해 실전감각을 쌓는데 주력했다. 물론 과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한 프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는 126-63이라는 더블스코어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그래도 전반은 이긴 경기도 있었다”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혹시나’ ‘역시나’

드디어 정기전이 찾아왔다. 우리학교는 지난해까지 정기전 4연승 중이었다. 선수들은 하나같이 5연승의 주역이 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잠실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연대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고 초반부터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다. 우리학교는 초반 외곽포를 헌납하며 20점차 리드를 내줬다. 경기 내내 15점차 승부였다. 3쿼터 김태주가 교체 투입되면서, 점수차를 좁히나 싶었지만 연대는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선수들은 쓸쓸히 경기장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3개월간의 일들은 짧은 글 하나로 모두 나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각각의 이해관계를 모두 적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3개월간의 비극 안에서 명쾌한 답은 단 하나다. 애꿎은 선수들만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누구누구가 어느 파벌로 갈라져 있든 농구부 선수들은 운동선수로서의 기본적인 훈련도 하지 못한 채 금쪽같은 3개월의 시간을 날려버려야만 했다. 아니 그 이상을 날려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과연 ‘어른들’의 싸움에 상처를 입은 선수들이 무엇으로 보상받아야할지 ‘어른들’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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