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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정해성 코치의 40년 축구 인생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정해성 코치의 40년 축구 인생
  • 정해정 기자
  • 승인 2009.10.23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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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수석코치 정해성

아무것도 몰랐던 코흘리개 초등학교 시절 핸드볼을 시작한 소년이 있었다. 핸드볼로 성공했더라면 지금쯤 한창 지도자 생활을 했을 것이고, ‘우생순’ 속의 감독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년은 핸드볼보다 축구가 더 좋았다. 이왕 할거면 축구보다 야구를 하라는 부모님의 권유가 있었지만 축구를 하고 싶은 열망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 그는 한국 축구 4강 신화의 주역이 되었다.

정해성(체교 78)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는 젊은 시절 단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하지만 은퇴 후 40대가 되어서야 국가대표 팀의 지도자로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1996년 트레이너로 시작된 대표팀과의 인연은 2009년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선수로서 못다 핀 꽃이 지도자로서 활짝 피게 된 40여 년 간의 축구 인생에 대해 들어보았던 2시간 반 동안의 인터뷰는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흥미진진함의 연속이었다.

‘78학번’ 정해성
초등학교 졸업 후 핸드볼보다 축구가 더 좋았어. 부모님께 축구를 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위험하다며 말리셨어. 하지만 축구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어. 2년 간의 설득을 통해 중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아버지의 허락을 받았지. 중학교 2학년 때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 공을 차기 시작했어. 남들보다 많이 늦은 시작을 만회하려고 중학교를 2년 간 더 다니기로 마음먹었어. 남들은 3년이면 끝날 중학교 생활이 5년 만에야 끝났지. 그 당시에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았어. 허정무 감독님은 중학교를 한 번 더 다녀서 6년 만에야 졸업했는걸.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2년이나 늦게 입학하는 바람에 중학교 후배가 대학교에 와서는 선배가 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지. 그런 거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 다들 그렇게 하는데 나라고 억울한 게 있나. 운동부라는 곳은 선후배 간의 기강을 무시 못하거든. 내가 그걸 안 지키면 팀 내 체계가 무너지는 거잖아.

축구를 그만둘 뻔한 인생 최대의 위기
혈기왕성하던 대학시절, 큰 부상을 당해 1년 간 운동을 쉬게 됐는데. 1980년 폭력사태에 연루 됐지 뭐야. 다음 해 학교로 다시 돌아왔을 때 폭력사태에 연루된 학생을 고운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병원에서는 공을 다시 차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뛰어보니 해볼 만 해서 당시 체육위원장 이셨던 故 김상겸 위원장 앞에서 무릎 꿇고 애원했어. 다시 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웃음) 다시 팀에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고서야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였어. 이 사건을 계기로 애교심이 강해졌던 것 같어. 학교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더 열심히 운동에만 매진했어. 이게 바로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닌가봐.

고재욱 감독과의 인연
그러고 졸업 후에 제일은행 축구 팀에 입단했는데 80년대 초만 해도 프로 리그가 없었잖아. 은행팀과 같이 실업팀만이 있었는데, 은행팀에서 은퇴를 하면 은행원으로 바로 채용되는 구조였어. 그야말로 평생 직장이었지. 1983년에 박종환 감독이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4강까지 이끌었잖아. 그것 때문에 축구 열풍이 2002년을 뺨칠 정도로 놀라웠어. 전두환 대통령이 나서서 프로축구리그를 만든 것만 봐도 그렇지. 그 때 마침 럭키금성의 트레이너로 일을 막 시작한 고재욱(체육 70, 현 관동대 감독)선배와 수유리 제일은행 숙소 근처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어. 선배님이 갑자기 그러시는 거야. “너 임마 사회에 나오면 나 한번 찾아 온댔잖아. 왜 안 와. …… 실업팀 그거 해서 뭐해. 나랑 같이 럭키금성이나 들어가자”고 했지. 진짜 정말 고마웠어. 후배가 한 말을 진짜 그때까지 기억하고 찾아 와 올 줄이야.

은퇴 후까지 보장된 실업팀을 뒤로하고 조금은 모험적인 프로리그로의 진출, 축구인생에서의 중요한 출발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 된 선수로서의 인연은 6년 만에 끝이 났다.

지도자 생활의 시작
1989년에 은퇴를 했어. 사실 나는 1년 정도 더 하고 싶었는데 럭키금성 감독이 되신 고 선배님이 내년에 2군에 생긴다고 거기서 코치생활을 시작 하라는 거야. 그래서 바로 은퇴하고 시작했지. 그런데 2년을 해보니 내가 선수 때의 경험만으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무리가 있더라고. 때 마침 단장님이 보너스를 주신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얘기했지. “보너스 안 주셔도 되니까 저 공부 좀 시켜주세요”라고.
공부한다는 데 말릴 사람이 있나. 보너스도 두둑히 주시고 독일로 유학도 보내주셨어. 2년 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럭키금성 2군 지휘봉을 맡기는 거야. 당시 아디다스컵을 포기한 1군을 대신해 2군 팀을 이끌고 출전 허락을 받았지. 유공과의 경기였는데 그 당시 잘나가는 선수들이 많이 있었어. 동대문 운동장에서 경기였는데 선제골을 내주고 4골을 내리 넣어 이긴 거야. 공은 둥글다고들 얘기 하잖아. 축구가 재밌는 이유를 보여준 경기였지. 다음 해 1군 코치로 승격되고 팀 성적도 그럭저럭 괜찮았어. 1993년 시즌이 끝나고 주어진 휴가 때 갑자기 구단에서 전화가 왔어. “얼른 사무실로 와보라”고. 탁자 위에는 다음 날 발간 될 가판 신문이 놓여있었는데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고재욱 감독 경질’이라는 제목을 단 뉴스가 제일 앞면을 차지한 거야. 휴가 가신 고 감독님께 그러는 건 정말 아니잖아. 축구인이 아닌 사람이 구단주여서 그런지 우리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휴가 다녀오시면 얼굴 보고 팀 상황이 이래저래 하니 그만둬주십사 하고 얘기할 수도 있는 거잖아. 정말 황당했지. 감독 대행을 해달라는 구단의 요청도 확 뿌리치고 그냥 감독님 곁을 지켜야겠다고 얘기하고 나왔어.

서른 여섯, 코치 정해성을 있게 한 스승 같은 분의 어이 없는 경질을 지켜볼 수만 없어 그렇게 무작정 팀을 떠났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건 인복(人福)’
20년이 넘는 지도자 생활에서 일이 없어 쉬어본 건 6개월뿐이었어. 조금 쉴만하면 바로바로 나를부르더라구. 평소에 나를 믿고 도와 준 주변 선배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 고재욱 감독님, 박성화 선배, 허정무 감독까지. 물질적인 것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일해왔다면 그 분들과 소중한 인연도 맺지 못했겠지. 나를 좋게 봐주셨던 거 아니겠어. 그 경험들이 코치로서 일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부천 유공에서 처음 시작한 감독 생활, 그 당시 부천의 팀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정 코치가 감독에 부임한 이후에도 팀 분위기를 잡는 데만 1년이 걸렸다. 만년 꼴찌로 패배의식이 만연했던 선수들을 이끌어 가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감독 부임 2년 차에,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부천유공은 4강에 진출하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비록 첫 경기에서 져 결승 진출은 하지 못했지만. 처음으로 맡은 감독직에서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감독에 대한 욕심이 없냐는 질문에 호탕하게 웃는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국가대표 수석코치로서의 역할이야. 내년 남아공월드컵에서 1승을 하고 또 16강에 진출하는 게 더 중요한 목표지. 현재의 위치에서 최대한 잘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어. 월드컵이 끝나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겠지? 그 때 가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독을 한 번 해보고 싶어. 안 해보고 싶다면 그건 바보지.”

정해성 코치의 자서전을 대필하라고 하면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시간 반 동안의 긴 인터뷰는 정해성 코치의 지난 날을 회고하는 시간이었다. 감독이라는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어떻게 보면 잘 알아주지 않는 2인자의 자리에서 대부분의 지도자 생활을 보냈지만 그것에 대해 크게 불만스러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내일의 비상을 위해 오늘 잠시 날개를 접어 두었다는 지난 날의 농담이 새삼스레 진심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여태까지 고대라는 울타리, 선배들에게 받았던 도움을 언젠가는 나도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고마우신 선배, 국가대표 ‘수석’코치라는 화려한 명함 뒤에 숨겨진 소소한 선배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국가대표팀의 수장으로 계신 선배님을 다시 한 번 찾아 뵙고 싶다.


고파스 Q&A
*일선에서 무서운 지도자로 유명하신데요, 지도 철학이 있다면?(고파스, 개토)
히딩크 감독님에게 배운 것 중 가장 중요 한 것이 ‘감독은 훈련시간에 운동장을 절대 비워선 안된다’였어. 훈련시간에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관찰하고 또 가르치는 건 우리들이 해야 할 의무이거든. 그리고 선수들에게는 늘 준비하는 자세를 가질 것을 주문하지. 두 시간의 운동 전에 티비 보고 컴퓨터하고 그러다가 그냥 나오는 건 운동 할 마음가짐을 제대로 하지 않고 나오는거야. 운동 전부터 오늘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겠다 미리 생각하고 나오는 게 바람직한 자세지. 그래서 일지를 쓰는 것도 선수들에겐 중요한 일인 거 같아.

*감독과 코치를 두루 경험하신 지도자십니다. 제주에서 감독을 할 때와 국가대표에서 코치를 할 때를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부담가시나요?(고파스, 개토)
당연히 감독이지. 감독은 모든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거든. 그에 비해 코치는 총책임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있어. 그래서 부담이 덜 한 것 같아.

*오늘 날의 허정무 감독님 아래서의 국가대표팀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점은?(고파스, Dr.pepper)
선수들과의 대화를 굉장히 중요시하셔. 독단적인 결정보다는 선수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결정을 하시지. 또 팀 내의 상하관계가 무너졌다는 점이 특이해. 상하관계가 무너졌다고 해서 기강까지 무너진 건 아니고. 박지성이 주장이 되고 나서 특유의 강압적인 분위기는 없어지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생겨났어. 고참은 고참 노릇 잘하고 중간층은 고참이랑 신참들 중재도 잘하고, 또 어린 신참들은 거기에 잘 따르고. 분위기가 엄청 좋아. 나태함을 경계해야 될 정도야. 고비가 한 번 찾아와서 나태함이 오지 않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해외파까지 다 동원해 경기에 임하셨나요.(고파스, Dr.pepper)
홈에서의 경기이고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랬지. 베스트 멤버로 경기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거든. 기를 쓰고 이기려는 분위기도 아니였어. 선수들에게 지지만 말자고 주문했지. 최선을 다해서 뛰자고 얘기했어. 근데 해외파까지 와서 이겼으면 이겼다고 뭐라 그러는데 만약에 해외파 안 와서 졌으면 뭐라고 했을지 참 궁금하네. 하하.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겨먹는 보양식을 알고 싶습니다.(고파스, 눈)
예전에는 개소주, 녹용, 뱀, 장어 같이 그냥 보양식을 먹었어. 남자들에게 그냥 좋은 음식들로. 그런데 지금은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약을 구입해서 먹더라고. 예를 들자면 젖산을 빨리 사라지게 해주는 약, 근육을 빨리 생기게 하는 약 같은 것들은 사서 물에 타먹고 그냥 먹고 부지런히들 챙겨먹어.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이 팀만은 피해갔으면 한다.(고파스, 눈)
이런 거 얘기 하면 꼭 그 팀이랑 같은 조가 되더라구. 유럽 팀이 주로 경계 대상인데. 이런 건 그냥 상상에 맡기겠어.

*어떤 선수가 장난끼 많거나 분위기를 잘 띄우고 혹은 어떤 선수는 4차원이라던지.(고파스, 저스티스)
분위기를 잘 띄우는 건 (김)동진이야. 성격도 밝고 엉뚱한 말도 잘하고 그래. 엉뚱한 행동도 잘하고. 사차원이라면 이운재. 다른 선수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의사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어린 선수들끼리 통하는 유행어라던가 연예인얘기라던가 이런 게 잘 안되니깐 4차원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

*왜 우리나라는 국내에서만 평가전을 치르는지? 그리고 실력이 고만고만한 팀들하고만 친선경기를 하는지.(고파스, Fernando J. Torres S)
마음 같아서야 유럽 팀들과 경기를 많이 하고 싶어. 유럽 팀들과의 경기가 잘 풀리면 자신감도 얻고 잘 안 풀린다 하더라도 배우는 게 많거든. 근데 아직 유럽쪽 월드컵 예선이 안 끝났어. 11월쯤 다 끝나고 순위가 확정되면 경기를 가질 것 같아. 11월 중순 정도에. 실력이 고만고만한 팀들과 친선경기를 했다니 보다는 그냥 예선 상대와 비슷한 수준의 팀들과 경기를 한 거라고 봐줬으면 좋겠구.

*국내에서 뛰고 있는 실력 있는 용병들 같은 경우는 귀화시켜서 국가대표에 포함시킬 의사가 있는지(고파스, 메쿠토타코..)
한창 스트라이커가 없어서 고민할 때 라돈치치(현 성남일화)를 귀화시키려고 생각도 했었어. 그런데 규정이 국내에 5년 연속으로 거주했어야 하는데 라돈치치가 중간에 일본팀에 임대되어 갔다 온 거야. 다시 5년을 채우느니 그냥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는 게 낫다 싶어서 관뒀어. 실력 있는 선수만 있다면 귀화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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