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전주, 가을에는 부산. 마치, 하나의 그럴싸한 코드가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라는 목적 하에 계절이 바뀔 때면 전주와 부산으로 향한다. 전공이 ‘영화’라는 이유로 나 역시 반 절의 의무감과 그 나머지는 상쾌한 현실 도피 감으로 바다 도시를 마음에 품는다. 멋지잖아, 모두들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현실에 맞설 때, 난 여유와 낭만과 그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그것도 서울에서 가장 먼- 달리 말하면 현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부산에서.

이제야 제법 ‘피프폐인’과 ‘피프날라리’를 애매하게 걸치고 있는 대학4학년의 PIFF에서 즐기는 나름의 즐거운 방법을 담고 싶다.

1.영화보다 잠자고, 아무렇지도 않은 양 일어나 ‘뜨거운’ 박수 보내기

아무래도 영화제에 가면 많은 영화를 보게 되고, 오랜 기간 머물게 되면 피로가 축적된다. 게다가 미리 표를 예매해두지 않았다면, 해야 할 무게들은 배가 된다. 최근엔 부산을 배낭여행처럼 오는 젊은 여행자가 늘어감에 따라 그들의 열정은 무겁게 어깨를 누르기도 한다. 가끔씩 선택한 영화는 때론 의도하지 않게 무성영화이거나, 플래시백과 점프 컷만 가득한 알 수 없는 영화일 경우가 있기에.. 정 그럴 땐, 난 한 숨 눈을 부친다. 재작년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를 예매하지 못해 새벽4시부터 줄을 서서 극적으로 표를 예매했는데, 결국 그 기다림 때문에 정작 열망하던 그 영화를 보며 쌕쌕 잠들었던 씁쓸한 기억도 있다. 하지만 어떤가! 이 곳은 그 순간 함께 몰입하고 숨쉬었던 극장 안이며, 잠깐 잠이 들어도 꿈 속에서 ‘또 다른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잠이 들고 깨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엔딩크레딧을 보며 박수를 치고, 또 다른 영화를 꿈꾸는 것. 잠깐의 시퀀스였어도 내 눈 안에 담으면 된다. 영화제에서만 할 수 있는 묘한 경험.

2. 야외 상영작 보기! 담요와 따뜻한 커피를 들고 좋아하는 사람과! 

부산영화제의 특징 중의 하나가 요트경기장에서 매일 밤 오픈콘서트와 함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영화는 대부분 야외에서 보기에 즐겁고 따뜻한, 혹은 뜨거운 감동이 느껴지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부담 없이 따뜻한 커피와 더 따뜻한 담요를 3장쯤은 챙겨서 야외상영장을 찾자. 대도시 부산의 밤이 그 순간만큼은 고요하고 빛난다. 비록, 추워서 나가는 사람도 있고 조금은 어수선한 맛이 있지만 ( 올해 부산에서 영화 ‘존 라베’ 상영 도중 일어난 장윤정의 트위스트 사건을 아시는지..) 조금은 쌀쌀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만난 그 영화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섬세해진다.

3. 깨끗한 영화제 숙소 이용해보기
조금만 부지런하면 영화제 동안 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영화제 숙소 ‘아르피나’를 이용할 수 있다. 영화제기간이 오히려 여름보다 부산에선 더 성수기이기도 하다. 치솟는 물가!

영화제 숙소 아르피나는 해운대에서 지하철로 2정거장 정도의 가까운 곳이고, 롯데시네마,센텀CGV엔 뚜벅뚜벅 여유롭게 갈 수 있다. 또 한,간단하게 취사를 할 공간도 마련되어있다. 깨끗하게씻고 뽀얀 2층 침대에서 조용히 그날 본 영화를 정리하는 맛! 혼자 온 관객이라면 같은 방 안 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마치, 유럽 여행 중 갔던 어느 조용한 게스트 하우스같은 느낌. 그런 인연을 누구나 한번 쯤은 꿈꾸지 않을까?.
 
4.부산에서만 할 수 있는 놀이, 영화제 플러스 + 알파 

올 여름, 우연히 나는 전국에 친구가 생겼다(제주도 올레 길을 젊은 청춘들과 함께 걸었다). 그리고 25년간 ‘서울 촌년’이었던 내가 사투리가 일품인 부산 아가씨를 친구로 알게 되었고, 이번 부산영화제의 70퍼센트는 부산아가씨 윤정과 함께 한 식도락 여행이기도 했다. ‘부산에만 있는’ 줄서서 기다리는 유명한 베이커리, 달달한 커피가 일품인 ‘부산에만 있는’ 커피 전문점, 기찻길 옆 바나나롱갤러리, 이젠 뭐 부산영화제의 낙이 되어버린 냉채 족발과 밀면 역시 ‘부산에만 있는’ 쏘주- C1,좋은데이. 그리고 ‘부산에만 있는’ 술집까지! “언니야! 부산에서도 다 프랜차이즈 가고 뭐 똑같다~” 라고 말을 하지만 끝까지 ‘부산에만 있는 무엇’ 을 주장했던 나의 여행은 그래서 더 유별났다. 결국, 영화 편 수보다 먹은 갯 수가 더 많아지긴 했지만. 어쨌든 윤정아,고맙데이~

5. 어깨 으쓱 내 마음 한번 더 토닥여주기 

영화제 최고의 이벤트는 하루 정도는 온전히 혼자서 영화만 보는 것이다. 꼼꼼하게 조금만 유난을 떨면 하루4편정도의 영화를 무리 없이 볼 수 있다. 하루 만에 일본의 시골마을과 루마니아의 소도시의 작은 도서관 그리고 빠리와 베를린을 만날 수 있다. 영화야말로 진정한 여행. 그리고 열망 가득.

영화에 대한 감정을 다룰 때, 자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조심조심 두근두근 눈치 보면서 쓰는 키보드 위 손끝의 저림조차 부산에서는 소중하게 다가온다.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서, 그래도 남들보다 조금은 좋아하게 되어서, 또 한 이렇게 멋진 학문이자 예술을 ‘전공’으로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내 어깨를 으쓱하게 해준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여느 청춘처럼 내가 비록 흔들려서 다른 꿈을 꾸게 되더라도 ‘영화’라는 반경 안에서 꿈꿔야지 하고 토닥거린다. 영화제 그리고 여행을 가야 느껴지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고 역동적인 아이구나 하고 한번 더 깨달음. 그리고 각인. 

매번 이렇게 부산은 나에게 희망의 감정을 주고, 내게 여전히 작은 감정의 세포들이 살아있고 꿈뜰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억지로라도 친구들을 끌고 와서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가을과 겨울 사이. 영화제는 끝났고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와 감정에서도 흐른지 제법 몇주가 지났지만 그 때 느꼈던 영화와 사람과 부산의 냄새 덕분에 내년에도 나는 결국 바다 도시, 영화 도시, 희망의 도시 부산으로 갈 것이다.

‘10월까지 씩씩하게 너 참 잘 살았어- 남은 계절도 힘내자!’ 라고 말해주려고.

최유리(동국대 영화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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