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없는 집이라 인물도 못나온다는 못난 소리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지적으로 척박했던 시절에 연구환경으로 치면 천국같던 미국 땅을 박차고 한국에 돌아오신 선배들은 이 땅에 후학을 키우며 반도체, 제철, 중화학공업을 일궈냈다. 박정희 정권의 이공계 육성으로 수많은 70~80학번 졸업생들이 값싼 임금으로 산업에 투입되었다. 그 덕에 따라잡기 손쉬운 산업분야의 지식과 SCI 논문으로 대변되는 양적인 성장은 놀랍게 발전되었다.

문제는 질적인 성장이다. 이제부터가 문제이다. 최고수준의 과학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사람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엘리트 체육인을 양성시켜 국제대회 입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가경제의 뒷받침, 발전된 연관학문의 지원, 장비, 우수한 연구집단, 첨단연구시설, 안정적 연구환경, 누적된 지식 등이 갖춰져야 최고의 과학자와 기술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과학기술의 질적인 성장은 종합예술인 것이다.
다행이 노벨상 후보를 추천할 때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공부한 몇몇 분들이 거론된다. 거친 밭에서 억세게 자라난 몇몇 벼 잎에 해당하겠다. 우울한 것은 그 분들이 노벨상에 근접하게 된 업적이 국내의 연구시설과 지원으로 얻은 것보다 해외를 기반으로 한 연구결과물이 더 많다는 것이다. 국내 장비와 시설로 연구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 경우 품만 팔아주는 용병이 되기에 딱 십상이다. 우리가 노벨상을 갖기를 염원한다면, 제발 총은 주고 전쟁터에 나가라고 하면 좋겠다. 몇 십 년 된 구식 칼을 들고 총탄이 오가는 현대전에 나가 노벨상을 쟁취해 오라는 것은 너무 무리 아닌가?

최근의 노벨상 수상자의 업적도 따지고 보면 80년대부터 당시에는 최고수준의 연구장비와 연구시설을 이용한 결실이다. 가끔 들리는 말에 우리나라도 이제 연구장비는 어느 정도 갖추지 않았냐고 묻는 이가 있어 가슴이 아프다. 학부실습용 장비를 갖추었으니 노벨상 따러가자는 격이다. 50년전 수준의 노벨상이라면 가능한 얘기이다. 현재의 노벨상을 받게 하려면 최고 수준의 연구장비를 지원해 주어야한다. 그것도 대형장비 하나 만들어주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쓰라는 식은 안 된다. 트레일러로 옮겨야 할 짐이 따로 있고, 작은 트럭으로 수시로 옮겨야 할 짐이 있듯 장비도 여러 가지가 다양하게 지원되어야 한다.

노벨상이란 명품 포도주를 이웃나라와 구미 각국은 잘도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제 막 포도나무를 심었다. 기다려야 한다. 이 땅에서 연구되고, 이 땅에서 주인이 되어 노벨상이라는 명품이 만들어 질 때까지 오랜 시간 참고 인내해야 한다. 너무 빠른 기대는 설익은 결과물, 시어빠지고 덜 익은 포도주만 내어놓을 뿐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이공계 기피현상, 연구결과에 대한 지나친 양적 실적주의, 관료의 과학계 간섭 등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다.

일본은 90년대 10년의 불황기에 더 많은 연구비를 기초과학에 투자하며 고급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았고, 기초과학을 전공해도 존경받고 생활비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놓았다. 일본학자들은 2000년대에 들어 연속적인 노벨상 수상으로 화답하였다.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한다. 기초과학의 수준은 그 나라의 격이다. 노벨상은 분명 올림픽 메달보다 더 가슴 벅차고 천만명 관객 동원한 영화보다 더 두고두고 자손에게 자랑할 거리이다. 긴 호흡으로 어려운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에게 존경과 사랑과 지원을 충분히 공급할 때, 과학자들은 분명 노벨상으로 화답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장담하느냐고? 과학자들이 그나마 제일 정직하고 순진한 사람들이니까.

이긍원 (과학기술대학 교수·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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