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노동운동은 일제하의 민족적 차별철폐 투쟁에서 시작해 한동안 침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현재는 대중적 조직이 만들어져 비정규직 철폐와 남녀 차별 철폐를 부르짖고 있다.

한국 여성노동자운동은 일제하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노동자운동의 시작은 1920년대 경성고무공장의 여공들이 임금인하 반대와 무리한 행동을 한 감독의 파면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 것이 시초이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단순 미숙련 노동력으로 대거 고용되는 분위기였는데 그 때문에 △노동법 부재 △저임금제도 △성적·인격적 차별 등으로 고통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모순 속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민족적 차별 철폐, 노조의 자유보장, 경찰간섭 폐지, 해고 반대, 단체교섭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였다.

해방이후, 일본의 노동운동 탄압으로 지하에 잠복했던 노동운동 주체들이 사회의 핵심세력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노동운동은 생산영역이나 특정 사업체·산업 내에서의 노동조건 향상 같은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경제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운동의 성격을 띠게 됐다. 이와 함께 여성 노동자운동도 애국적 투쟁으로 질적인 전환을 이뤘다.

1945년에는 148개 여성단체 80만의 맹원이 결집된 ‘조선부녀총동맹’이 결성되어 미군정을 상대로 쌀 배급요구투쟁 등을 활발히 전개 했다. 그러나 ‘조선부녀총동맹’의 활동도 해방이후 결성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와 마찬가지로 미군정에 의해 물리적 탄압을 받아 운동이 잠시 단절됐다.

이후, 단절됐던 여성노동운동은 1960년 4·19혁명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보였으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은 계속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0년대에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인 섬유, 봉제, 가발산업 등의 노동집약적 산업에 여성노동력이 급증하면서 여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생존권 보장과 노동법 준수, 작업환경 개선 등을 요구했다.

1980년대 초·중반에는 생산직 여성노동운동이 침체를 겪은 것과 반대로 사무직 여성노동운동이 형성돼 활발히 진행됐다. 전체적인 여성노동자들은 △구속노동자 석방 △노동 3권 보장 △결혼퇴직 같은 차별 반대·철폐 등을 주장했다. 또한 광주민주항쟁 이후 학생운동 출신들이 대거 노동현장으로 투입되면서 지식인과 노동자의 결합이 이뤄졌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독자적 여성노동운동의 구축을 위한 대 정부투쟁이 전개 됐고 그간의 축적된 조직역량으로 노동자 대중조직이 만들어지게 됐다. 이 때 한국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 등이 조직됐으며 1992년에는 전국적인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고용안정, 직업병, 모성보호, 차별철폐 투쟁, 탁아법 등의 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전개해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가족법, 보육법, 여성발전기본법제정, 남녀고용평등법 등 여성관련 법제들의 개정을 이끌어냈다.

1990년대 말부터는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전국 여성노동조합 등의 여성의 권익을 위한 노동조직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비정규직철폐, 임금 및 근무조건의 남녀 차별 철폐 등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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