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창밖을 보라 했다. “저 나뭇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금 당장 쓸 순 없지만 세상이 주는 무형태의 에너지와 작가와 문장이 호환되면 문학이란 에너지가 생겨나죠” 지난 10일(화) 은행잎이 흩날리는 홍대 앞 까페에서 소설가 성석제 씨를 만났다.

(사진=이수지 기자)

1984년 8월의 어느 날, 성석제는 깜짝 놀랐다. 학교 신문사 편집국장이던 친구를 만나러  편집실에 갔던 그는 친구는 못 만나고 대신 상금을 받았다. 지난 학기 처음으로 시를 써 교내문학상을 받았는데 상금이 있었던 걸 그제야 안 것이다. 그때 받은 상금으로 산 컨템프러리 문학전집과 수동타자기는 그의 문학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대부분의 문학전집은 일본 것을 베껴 그 작가에 그 내용으로 다 똑같았는데 그때 산 전집은 그동안 읽어보지 못한 동시대 현역 작가의 작품이 실려 있었죠. 그걸 읽고 나니까 개안이 된다할까. 내가 알고 있는 세상과 매우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됐어요”

2년 뒤 자판의 글자가 사라지도록 두드리다 결국 타자기가 파열됐을 때 그는 시인이 됐다. 그는 ‘시 귀신이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자나 깨나 늘 시에 붙잡혀 있었다. “시인일 땐 머릿속에 시 호르몬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늘 시에 붙들려있고 시 밖에 없었으니까요”

소설가란 이름으로 10년째 불리고 있는 지금, 다시 시를 쓸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그는 자격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시는 자신이 쓰고 싶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가 자신에게 찾아와야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의 글 <호랑이 발자국>에서 ‘소설은 불순하다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내가 쓰는 소설은 불순하다’고 했다. “시는 수많은 생각의 덩어리를 하나하나 깎아내며 최후에 남은 이미지나 언어로 순수를 얻어가는 과정이었어요. 반면 소설은 짧은 핵심에 빛깔, 소리, 냄새로 생각을 연결시키며 덧붙이는, 불순을 얻어가는 과정이었죠. 시를 정리하다가 제게 불순해지려는 충동이 있단 것을 알게 됐고 얼떨결에 소설을 쓰게 됐어요”   

얼떨결이라 했지만 작가 성석제에겐 타고난 소설가의 힘이 내재돼 있었다. 그는 1994년 첫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로 데뷔 후 무수한 소설을 쏟아내며 △동서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휩쓸었다.

<조동관 약전>, <오렌지맛 오렌지> 같이 교과서에 실린 작가의 소설로 현대 소설을 배웠다하자 그는 교과서에 있는지도 몰랐다며 웃었다. “뭔가 장난스럽고 재밌자고 해 본 글이 실려 있는데 그것은 제 본 모습이 담긴 소설은 아니에요. 제 본 모습과 가까운 소설은 시대를 몇십년, 몇백년 뒤로 돌려 그 시대를 해석하고 생각하면서 충분한 고민을 담은 소설이죠”

수많은 이야기로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에게 풍부한 소재의 비밀을 묻자 그는 ‘친구’라고 털어놨다. 옛 고향 친구, 학창시절 친구, 그 사람들만 가지고도 한 시대를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란다. 그는 그들이 살아온 방식, 시각, 태도에서 그 사람만의 특성을 찾아 소설에 반영한다. “친구라는 자산을 갖고 있다는 게 작가로선 참 다행스럽죠. 게다가 친구들은 작가가 무슨 돈이 있냐며 술값도 대신 내줘요”

성석제는 그의 삶에 찾아온 ‘빠져듦’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무언가에 잘 도취되곤 해요. 문학, 술, 책, 음악, 돈 따먹기, 그리고 사람.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 알고 싶었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었어요. 내 삶에 중독성 있는 것들이 문학을 할 수 있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게 도와준 게 아닌가 싶네요”

그의 20대를 문학에 빠져들게 한 친구 故 기형도 시인에 대해 묻자 그는 맥주나 한잔 하자며 자리를 옮겼다. 그는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기형도 시인과 함께 교내 문학회에 들어갔단다. “당시 학교에 청록파 박두진 선생이 교수로 계셨는데 형도가 시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해 같이 찾아갔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앉아 계신 선생께 형도가 쭈뼛거리며 가더니 길쭉한 가방에서 정선한 원고뭉치를 꺼내서 보여드리더라고요. 그런 자세로 시에 임한 친구였는데 올해가 벌써 그가 떠난 지 20주기네요. 그때 스물아홉이었는데… 죽은 사람의 명을 산 사람이 나눠 갖는 게 아닐까 싶은 때가 있어요. …있을 때 잘해야죠”

잠시 침묵이 생기자 그는 대학시절 술자리에서 한시를 외우곤 했다며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 중 ‘차시무성승유성(此時無聲勝有聲)’이란 구절을 들려줬다. “소리 없음이 소리 있음보다 애절함이 있단 뜻이에요. 그 구절을 읽고 친구들이 함께 가만히 있었죠. 전부 감동해서 술도 안마시고 있었어요. 문학이 마음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는 것, 그런 힘 느껴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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