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행정수도를 만든다고 하니까 믿고 살던 집까지 내 준거 아니야. 약속은 지켜야지. 이제와서 있던 공장 다 밀어내고 다시 공장을 유치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난 10일(화)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행정수도 원안 사수 결의대회’에 참석한 할아버지 한 분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날 행사엔 충청남도 연기군 주민 200여 명과 △심대평(무소속) △박상돈(자유선진당) △양승조(민주당) 의원이 참석해 ‘정부는 세종시 건립을 원안대로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세종시, 어떻게 진행됐나

지난 2002년 9월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토의 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화에 의한 교통혼잡비용, 대기오염개선비용, 환경개선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행정수도 건립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청와대와 국회를 포함한 모든 행정기관을 충청권으로 이전하겠다는 신행정수도 이전 사업은, 당선 이후 본격화됐다. 참여정부는 출범 5개월 만에 신행정수도건설 특별조치법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 법안은 2003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어 2004년 7월엔 충청남도 공주·연기군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그러나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자 참여정부는 청와대와 국회를 제외한 정부기관 12부 4처 2청을 옮기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안에 대해 여·야는 타협을 이루고 지난 2005년 3월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세종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2007년 7월엔 행정중심복합도시 착공식을 진행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선거 당시 세종시 원안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선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기존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세종시 수정론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지난 6월 ‘세종특별자치시 특별법’ 제정이 무산되면서 공주·연기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행정기관 이전, 정말 비효율적인가

지난 5일(목) 정운찬 국무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세종시 논란에 대해 행정적 비효율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정 총리는 행정기관보다 기업 위주로 이전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해 세종시 수정론 논란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무총리실은 지난 6일(금)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중앙행정기관 분리에 따른 비효율 △인구유입 대책 미비 △도시 기능의 효율성 저하를 세종시 원안의 3대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 민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본교 남영우(사범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행정업무가 세종로, 과천, 대전으로 분리돼 있어 업무보고를 하거나 국회의 답변을 듣기 위해 서울에 사무실을 하나 더 마련하기도 한다”며 “행정기관이 세종시로 이전되면 이런 비효율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 말했다.

이에 권용우(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는 세종시 계획엔 행정기관 이전에 따른 비효율성을 극복할 방안도 이미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세종시 근처에 오송역과 동공주역이 세워질 예정이라 KTX를 통하면 세종시에서 서울역까지 30분, 청와대까진 40분이 걸린다”며 “현재 과천청사에서 청와대까지 길이 밀릴 때 2시간 가까이 걸리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더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원안대로 진행하라

충남 공주시와 연기군 주민은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14일부터 매일 저녁 7시 조치원역에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하며 삭발과 단식투쟁을 이어가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행정도시 사수 연기군대책위 김성구 집행위원장은 “이제껏 500회가 넘는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세종시 계획에 대한 검증을 거쳤음에도 정부가 이제와 재론하는 것은 행정기관 이전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집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주민들은 행정기관이 이전된다고 해서 살던 집과 조상 묘까지 정부에 내놓았다”며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세종시 추진계획을 원안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부터 세종시 일대의 원주민들과 보상 협의가 시작됐고 지난 7월 말까지 총 계약자의 99.4%(1만 1227명)에게 보상을 완료했다. 해당지역의 △가옥 △공장 △축사 △분묘 대부분이 철거됐으며 현재는 지반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사업이 지연됨에 따라 세종시가 완공되면 원주민들이 우선적으로 입주할 수 있는 입주권의 시세도 많이 떨어졌다. 연기군 금남면 용포3리 이장 김동빈 씨는 “세종시 이전사업이 불투명해지면서 한때 1억 3천만 원이던 입주권의 가격이 지금은 2천만 원도 안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본교의 세종시 캠퍼스는

본교는 지난 2007년 행정도시건설청과 세종시 내 대학캠퍼스를 유치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MOU엔 5개 단과대학과 2개의 전문대학원, 4개의 특별대학원을 세종시에 개설하겠다는 내용만 담겨있을 뿐 구체적인 일정이나 강제조항은 없다. 아직 세종시에 캠퍼스 부지는 매입하지 않았고 세종시 내 캠퍼스 인원에 대한 문제도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본교 측은 △캠퍼스 개설시기 △캠퍼스 규모 △캠퍼스 부지면적과 같은 구체적인 사항은 정부의 세종시 계획 수정안 내용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기획조정팀 직원 조제홍 씨는 “정부의 세종시 건립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라 본교는 신중하게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며 “예정대로 세종시에 캠퍼스가 들어서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난 9일(월) 행정도시주민보상대책위원회는 국가를 상대로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하고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김성구 집행위원장은 “사업이 불투명해지면서 분양권 가격이 떨어지는 등 원주민들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행정중심도시가 아닌 대기업과 이공계 대학캠퍼스를 위주로 하는 교육·과학·기업 중심도시를 유력한 모델로 언급하며 구체적인 세종시 수정안은 다음해 1월까지 내놓겠다고 밝혔다. 권용우 교수는 “세종시 계획은 지난 8년간 수백 명의 논의를 거쳐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더 크기 때문에 결정된 사항”이라며 “이를 뒤집는 것은 정도가 아니며 정책을 뒤엎기 위해선 다시 국민 합의를 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 11일(수)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회의를 열어 세종시 대안 마련을 연내에 마무리한다는 입장을 서둘러 전했다. 고위당정회의에서 정 총리는 “내년 1월 말까지 최종 대안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길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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