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30도를 넘나드는 남극은 일조시간이 짧다. 4월 하순 겨울이 시작되면 오전 9시에 해가 떠 오후 2시에 진다. 햇볕을 쬐는 시간이 짧아지면 항 우울 호르몬이 적게 분비돼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1년간 혹독한 추위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하는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대원은 건강을 어떻게 관리할까.

정신적 스트레스가 큰 문제
기지 대원이 주로 겪고 있는 문제는 치과나 근·골격계 질환이다. 영하의 추위에 계속 노출되면 한국에선 사소한 치과질환이라도 심각하게 나빠질 수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온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도 나타난다. 과거엔 영양 부족으로 인한 대사 장애 질환도 문제였지만 지금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1년에 한 번 정기보급으로 충분한 식량이 공급되며 과채류 중간보급도 이뤄진다. 의약품이 필요할 경우 수시로 보급된다.

대원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립감과 불안이다. 떨어져 있는 가족 걱정과 열악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신이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기지에서 느린 속도지만 인터넷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고립감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됐다. 지금은 TV위성 안테나도 달아 한국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고립감과 불안으로 인한 공격성향 증가도 문제다. 24시간 동안 같은 사람과 함께 있기 때문에 대원 간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지난 9월엔 남극기지에서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미국과 일부 국가는 심리전문상담가를 파견하기도 한다. 본교 극지의학연구회 소속 김한겸(의과대 의학과) 교수는 “TV나 인터넷이 외부와의 단절을 막아 고립감을 어느 정도 해소했으나 아직도 한계가 있다”며 “정신적 문제에 대한 실제 데이터를 마련해 의학적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1명 파견되지만 경험이 부족
월동대원은 남극 기지로 파견되기 전 종합검진을 받는다. 현지 적응력과 활동능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과 훈련을 거친다.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 같은 기본적인 의료교육도 받는다.
월동대엔 공중보건의가 1명 포함된다. 남극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의료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공중보건의는 의과대학 졸업 후 병역의무 대신 3년 동안 보건의료 취약지구에서 공중보건 업무에 종사하는 의사다.
공중보건의는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 전문의와 달리 의과대학 졸업 후 바로 파견돼 경험과 기술이 부족하다. 외과의사를 포함한 전문의를 파견하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본교 극지의학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강윤규(의과대 의학과) 교수는 “봉급문제로 전문의를 파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극지의학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원격 진료 위한 인터넷 속도 개선 시급
본교는 국내 유일의 ‘극지과학연구기지 파견의사 전문 양성기관’이다. 기지에 파견될 공중보건의는 안암병원에서 9주 동안 △가정의학과 △응급의학과 △치과를 거치며 각 과목별 실무교육을 받는다. 강윤규 교수는 “전문의를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공중보건의가 더 나은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본교가 남극기지에 도입한 U-헬스 원격 의료시스템은 느린 인터넷 속도로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원격 의료시스템은 대원의 △혈압 △맥박 △혈당 △심전도 같은 생체신호를 수시로 측정해 그 데이터를 한국으로 전송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현지 파견 의사가 화상통신을 통해 의료 조언을 얻는데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대 384Kbps밖에 나오지 않는 전송속도는 간단한 텍스트 정보만 전송할 수 있어 원격진료를 위한 화상데이터나 심전도데이터 전송이 불가능한 상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T는 다음달 파견되는 23차 월동대를 통해 세종기지에 글로벌 위성통신 전용선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전까지 남극기지는 칠레의 위성공중인터넷망을 사용했으나 해외 케이블이나 공중망의 혼합접속으로 속도가 느렸다. 전용선이 설치되면 통신망 속도가 최대 2Mbps까지 높아진다. 극지연구소 기지지원팀 장성호 선임행정원은 “전용망 설치로 체감속도는 기존의 4배가 될 것”이라며 “원격의료시스템 운용이 제대로 이뤄지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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