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초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3개 분야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한국인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지만 올해도 내년을 기약해야만 했다. 왜 한국은 아직일까.

역사 짧은 기초과학연구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본은 이미 13명이 과학 분야 노벨상을 수상했을 만큼 독보적이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도 모두 일본인이 받았다. 일본이 이렇게 다수의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140년 이상 기초과학의 토대를 쌓아온 덕분이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전부터 서양의 과학문물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메이지 유신 때는 외국의 유명한 과학자들을 초청해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과학 분야에 공을 들인 기간이 짧다. 식민지 시기엔 일본이 이공계 교육을 실시하지 않아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과학 분야 공부를 위해 학생들이 해외로 유학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한국 최초의 이공계 종합연구기관인 과학기술연구소(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는 1966년에 설립됐다. 이에 1970년대에 들어서야 국내에서 과학 분야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내 논문이 국제저널에 실리고 연구비 규모가 커진 것은 1990년대 중후반이 지나면서부터다. 본교 이긍원(과기대 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과) 교수는 “천재라 불리는 아인슈타인도 20여년의 연구 끝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며 “한국은 과학 분야 연구가 제대로 시작된지 10년밖에 안 돼 노벨과학상을 받으려면 더 분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스템적 문제 개선해야

연구 역사가 짧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연구 시스템 개선부터 이뤄져야 한다. 현재 한국의 과학기술정책 최종 결정권은 과학자가 아닌 관료에게 있다. 또한 과학기술 관련 예산이 과학전문기관이 아닌 행정관청이 배분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받는다.

미국은 과학기술 관련 예산이 행정부서가 아닌 국가과학위원회(National Science Board, 이하  NSB)가 배분한다. NSB는 20여명의 과학자로 이뤄져있으며, 대통령이 국회에서 예산을 받아 직접 이곳에 전달한다. NSB는 심의를 거쳐 예산을 미국 국립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과 같은 과학 분야 연구기관에 배분한다.

한국에도 NSB와 비슷한 형태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있다. 이 위원회는 지난 1999년 과학기술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 형태로 발족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운영위원회의 민간위원인 본교 전승준(이과대 화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형태로 과학기술정책 결정엔 참여하지만 각 부처 간 과학기술정책 업무를 조정하는 최고 기구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연구조직형태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대학 내 연구조직의 대부분은 한 교수 아래 석·박사과정의 대학원생 1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반면 일본의 연구조직은 대표 교수 아래에 △부교수 1명 △조교수 3명 △각 조교수 아래 박사 3명 △각 박사 아래 조수 1명 △그 아래 석사과정 학생 10여명 등 한 팀이 30여명으로 이뤄져 있다. 유럽도 일본과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조직형태는 최고위 교수가 없어도 아래의 교수가 채우는 방식으로 3~40년간의 장기 연구를 가능하게 해준다. 고재중(과기대 신소재화학과) 교수는 “한국의 연구조직은 최고위 교수가 타계하거나 정년퇴임하면 대부분 연구를 지속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편”이라며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재정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연구지원 현황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을 대상으로 지난해 말부터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 이하 WCU)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WCU사업은 해외학자 유치·활용을 통해 첨단·학제 간 연구분야를 키우겠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5년간 8250억원의 재원이 투입될 예정인 초대형 국책 교육사업이다. 지난해 12월, 해외교수와 국내교수가 함께 학부·대학원 과정에 새로운 융·복합 전공 및 학과를 개설·운영하는 WCU유형1에 13개 대학의 26개 사업이 선정됐다.

그러나 WCU사업은 현재 난항을 겪고 있다. 신설된 학과 및 전공의 신입생 유치에 대부분 실패한 것이다. 서울대는 2010학년도 대학원생을 모집하면서 신설 학과 및 전공 7개의 박사과정 지원자 경쟁률은 평균 1:1로 간신히 모집정원 수준을 유지했다. 석사 과정 지원자 경쟁률은 0.5:1에 그쳤다. 서울대 대학원 입학관리본부 관계자는 “신설학과인데다 홍보도 부족했고 교과부의 평가 결과에 따라 폐지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학생의 지원이 저조하다”며 “내년에도 정원에 미달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WCU사업이 급속도로 추진된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WCU와 유사한 사업을 시행한 독일은 최종 사업을 선정하는 심사 기간만 1년이 소요됐다. 한국의 경우 사업 신청부터 최종사업 선정까지 3개월이 걸렸다. 단기간에 추진됐기 때문에 해외학자를 모집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이긍원 교수는 “사업을 준비한 기간도 너무 짧았고 세계 석학들을 경쟁시스템을 통해 선발해 교수 모집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과학연구 지원이 응용개발연구의 실용적 연구에 치중해 있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 전승준 교수는 “현 정부가 정부 연구비의 70% 정도를 기업을 돕는 응용개발연구 지원에 투자해 기초과학연구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교과부와 한국연구재단은 고위험 연구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성실실패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불확실성이 높은 창의적 연구사업을 지원하면서 연구가 실패로 귀결하더라도 연구개발에 성실했으면 그 과정을 살펴 벌칙(1~3년간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제한 등)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연구자가 도전적으로 연구에 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다.

또한 교과부 측은 앞으로 기초과학연구에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교과부 예산담당 관계자는 “현재 정부 R&D예산 중 기초·원천연구 투자 비중을 2012년까지 50%로 확대할 것”이라며 “이외에도 기초연구사업을 체계화해 기초연구 지원 정책을 펼쳐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 과학상이 과학연구의 목표는 될 수 없지만, 일정한 척도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짧은 과학연구의 역사와 부족한 연구지원시스템을 극복하며 발전해나가는 한국 과학연구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