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집행자>에 출연한 영화배우 조재현이 교차상영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볼 기회조차 차단하는 현실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요지였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조재현의 주장에 공감했고 멀티플렉스 극장들의 교차상영 방침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매체마다 실렸다. 동시에 조재현의 기자회견을 보며 떠오른 또 하나의 생각은 이러한 문제가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그 영화가 극장에서 제대로 상영되지 못하니 관객의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없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인데 이렇듯 유통이 제조를 넘어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건을 만드는 일이 그것을 파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당연히 만든 이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유통업체에 물건을 납품하는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늘 그들의 눈치를 봐야한다. 좋은 매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고 할인행사가 있으면 알아서 저렴한 상품을 공급해야 하고 심지어 영업사원까지 지원해야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 봐야 극장에 상영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좋은 영화를 제작하는 것보다 힘있는 배급사를 만나 극장에 무사히 걸리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제작한지 몇 년이 지나서야 개봉을 하게되는 웃지못할 상황도 벌어진다.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나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발달로 음반시장이 붕괴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MP3로 음악을 다운받다보니 MP3파일을 공급하는 인터넷음원사이트들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백화점, 마트를 운영하는 유통업체들의 힘은 ‘PB(자체브랜드)상품’이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더욱 세지고 있다. 제조업체와 손잡고 만든 제품으로 마케팅비용을 줄여 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PB상품의 취지이다. 그런데 제조업체들에 따르면 PB상품을 만들자는 유통업체들의 강요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독자적인 브랜드를 키우고 싶어하는 제조업체와 제조업체를 하청업체화시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유통업체 간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판로확보를 위해서는 유통업체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제조업체는 유통업체의 요구를 무시하기 힘들기에 PB상품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사먹을 기회는 줄어드는 것이다.

영화 역시 제작과 배급을 같은 회사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럴 경우 더욱 ‘수익성’이 영화제작의 주요동기가 될 수밖에 없다. 소위 흥행이 보장되는 영화만 제작되다 보면 영화의 다양성 역시 해치게 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제품을 쓰고 싶어하고 다양한 음악, 다양한 영화를 즐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소수의 경제권력에 집중돼 가고 있다. 최종적으로 소비를 결정하는 것은 소비자인 만큼 각 영역에 있어 다양성 확보를 위한 ‘소비자 주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때인 것 같다.

<洗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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