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26일 양일간 서울 대학로 동덕여대 예술센터에서는 한대수 씨의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3년 만에 열린 콘서트는 이틀 간 9백여명의 관객이 몰려 소극장 안은 열정으로 가득찼다. 감정적인 소재의 가사에서 히피적인 사회 미학적인 풍자 가사로의 전환을 최초로 시도한 한대수 씨가 전세계 뮤지션이 함께 만든 〈DROP THE DEBT(빚은 내던져라)〉에 한국뮤지션으로 참여하며 30여년 만에 대중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30여년 전 통기타를 튕기며 “장막을 걷고 창문을 열어 행복의 나라로 떠나라”라고 외쳤던 금지곡 가수는 이번 공연‘눈물’에서 〈멸망의 아침〉, 〈호치민〉등 반전 메시지가 담긴 노래와 평화를 주제로 한 곡을 선보였다. 또한 이 자리에서 1970년대 독재체제 하에서 자유를 향한 갈망을 노래했다고 금지 당했던 〈물 좀 주소〉등의 히트곡들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에 위치한 록시 라이브 카페에서는 매일 밤 10시에 송창식 씨의 무대가 펼쳐진다. 이제는 중년이 된 70년대 청년들은 지난 시절 청년음악에 대한 향수를 따라 이곳을 찾는다. 본교 응원곡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고래사냥〉은 ‘75년 가요 대학살’의 대표적인 금지곡이었다. 송창식 씨는 “금지곡은 독재를 고차원적으로 드러내는 효과적 수단이 됐다”며 금지곡 자체를 핍박했기보다는 그 금지곡으로 사회저항운동을 한 사람들이 핍박을 받았다고 전한다. 또한 〈왜 불러〉같은 경우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 장발을 단속하는 경찰에게 주인공이 반항할 때 쓰였다는 이유로 금지됐다며 어이없는 금지곡도 있었음을 덧붙였다.  

한편 지난 2월 말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의 식전 행사에서는 금지곡이 전국에 방송되기도 했다. 가수 양희은 씨의 〈상록수〉가 울려 퍼진 이날의 행사는 파격의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상록수〉는 1970년대 후반 김민기 씨가 독재정권의 탄압을 이기고 꿋꿋하게 나가자는 의미를 담아 작사, 작곡해 금지곡이 됐던 노래다. 기존의 금지곡 들이 공식적인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래로 지정돼 다시 태어난 것이다.

금지곡은 대중가요가 처음으로 등장한 1920년대부터 함께 존재했다. 일제시대 때 민족감정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봉선화〉, 〈아리랑〉은 금지곡 1호가 됐다. 해방 후 민족정권이 들어섰지만 남북간 분단에 따른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금지곡의 양상은 변화하게 된다. 특히  월북작가들의 곡은 무조건적으로, 정치와 사회를 조금이라도 비판적으로 풍자한 곡도 금지곡 철퇴를 당했다. 
유신시대에는 특히 금지곡 망령이 거셌다.‘패배ㆍ자학적ㆍ퇴폐적인 가사ㆍ국가안보ㆍ국민총화에 악영향을 주는 곡’으로 무려 222곡이 금지를 당했다. 2집 앨범 〈고무신〉이 당시 정권에 의해 금지곡으로 낙인 찍히면서 뉴욕으로 망명한 한대수 씨는 물론 양병집 씨 등은 한국을 떠났고 아침이슬의 김민기 씨의 곡들은 무조건 자동 금지곡이 되는 등의 탄압을 받았다.


1996년 국내 음반의 사전심의제가 폐지된 후 금지곡은 방송불가판정 곡으로 변모했다. 박지윤 씨의 6집 수록곡〈할 줄 알어〉는 “할 줄 알아? 할 수 있어? 내가 소리를 아 지르게 만들 수 있어?” 와 같은 가사의 선정성 문제로 지난 달 3월, 각 공중파 방송으로부터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시민단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측은 “〈할 줄 알어〉는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가사로 청소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할 줄 알어〉뿐만 아니라 앨범 수록곡 전부에 방송불가 판정을 내려야한다”고 방송사보다 혹독한 금지를 주장했다.

이렇게 현재의 대중음악의 방송불가곡은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튕기며 사회현실에 대한 발언, 자기 성찰을 담은 70년대 청년문화의 금지곡의 성격과는 사뭇 다르게 변했다. ‘헤일 수 없이 수 많은 밤을’로 시작하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김민기의 〈아침 이슬〉은 ‘태양은 묘지위로 붉게 타오르고’ 부분이 염세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면 이에 비해 박지윤의 〈할 줄 알아〉, DJ DOC의 〈포조리〉, 치킨헤드의 〈누가 O양에게 돌을 던지랴〉등은 선정적인 가사와 저속한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다. 서태지의 〈탱크〉는 비속어가 많다는 이유로 방송불가판정을 받아 컴백쇼에서 욕설부분은 비음으로 처리된 바 있다. 

금지곡의 성격이 변화한 것에 대해 김현미(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중문화의 특성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이 관찰되는 헤게모니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대중음악이라는 것. 자연히 시대에 따라 헤게모니도 변화하고 그에 따라 대중문화가 표현하는 저항 내용이 달라지기에 금지곡 역시 변화한다는 것이다. “70년대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속에서 금지곡이 탄생했다면 9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우리사회에 자리잡은 유교적 성문화에 대한 저항이다”라고 김교수는 덧붙인다.

또한 대중음악 소비층의 변화도 한 요인이다. 70년대 소비자가 청년층이었다면 현재는 10대가 중심이다. 자연히 그들의 욕구에 따라 음악도 변하게 된 것이다. 앞서 말한 카페의 주고객이 70년대 청년문화를 만들던 사람이었음은 이를 방증한다.

미사리 카페에서 노래 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 길은정씨는 금지곡도 하나의 유행이라고 설명한다. 대중들은 문화가 거창한 것이라며 오해하고 산다며 금지곡 속에 숨겨진 의미를 구구절절 따질 필요는 없다는 것. “금지곡으로 선정되면 당연히 주목을 받지만 주목받지 않고 조용히 음악을 하며 저항의식을 나타냈던 가수들도 많고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며 “현대의 금지곡은 표현이 너무 지나쳐 어느 정도의 제약이 필요하다”는 설명으로 금지곡에 대한새로운 인식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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