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中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류시화 시인의 표현처럼 마무리에 담겨온 시작은 종종 마무리를 그립게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계획에 치여 올해의 정리를 잊어버리고, 새로 함께 할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기존의 사람들에게 소홀해졌다. 끝엔 항상 시작이 담겨 있는데 시작에 끝이 담겨 있는 건 어렵기만하다. 반성할 것도 많고 올해의 추억을 씹을 것도 많은데 정작 그렇지 못한 날이 많아진다.

2009년의 끝자락엔 2009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친구들과의 화제도 올해의 이야기에서 ‘다음 방학에 무엇을 할 것인가’로 변해갔고 2학기 성적을 확인하기도 전에 2010년 수강과목을 신청했다. 학교 안에선 과반학생회부터 총학생회까지 2010년을 함께할 새로운 선본이 선출됐다.

이번 총학생회 선거과정에도 지난 학기 선거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되풀이됐다. 투표함 관리 소홀로 여러 선거함이 무효처리로 ‘폭파’됐고 상대 선본에 대한 갖은 이의제기가 따라왔다. 모든 되풀이 되는 것 속엔 지난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지난 4일(금)까지 계속된 철도노조의 파업도 마찬가지였다. 사측도 노조 측도 매년 똑같은 이유로 갈등을 일으켰고 승객들만 피해를 입는 일은 계속됐다. 늘 시작만 있었기에 되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시작 안엔 설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짐 속엔 목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무리 지을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마무리 없는 겨울 속엔 이뤄지지 못한 채 맴돌기만 하는 다짐과 갈등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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