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결혼이주자와 취업노동자를 포함해 100만 명이 넘는다. 그 중 안산시 원곡동은 전국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은 곳이다. 반월·시화 국가공업단지에서 근무하던 공단 근로자가 빠져나간 자리를 외국인 근로자가 채우며 원곡동엔 자연스레 외국인 이주민 수가 늘었다. 현재 안산시에 거주하는 등록외국인은 11월 말 기준 50여개국 3만 4151명이며 중국인이 가장 많다.

 

(사진 = 한상우 기자)

 

본지는 지난 2일(수) 오후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된 원곡동을 찾았다.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 내려 지하도를 건너면 원곡동이 시작된다. 평일 낮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걷고 싶은 거리를 따라 원곡동으로 들어서자 온통 영어와 중국어, 이슬람어로 쓰인 간판이 가득했다. 특히 외국인이 많은 동네답게 국제전화카드를 파는 상점이 많았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외국인 한 명이 상점에 들어가 “모바일 투 모바일”이라 외치자 가게 주인은 전화카드를 내밀었다. 가게주인은 원곡동에선 전화카드가 가장 잘 나가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원곡동의 외국인은 학교 주변이나 이태원에서 만난 외국인과는 달리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말을 걸면 매우 불쾌해했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안산 외국인주민센터 김행련 계장은 원곡동에 미등록 외국인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산시에 등록된 외국인만 3만 명 정도인데 미등록 외국인까지 포함하면 7만 명 정도가 돼요. 이 때문에 원곡동에선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됐거든요. 지난 7월엔 조선족 한 분이 속옷차림으로 단속반원에게 끌려가기도 했어요. 단속에 시달리다 보니 낯선 사람이 말을 걸거나 사진을 찍으면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진 = 한상우 기자)
원곡동엔 외국인이 많은 만큼 그들을 위한 시설도 많다. 지난해 3월엔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가 문을 열었다. 159개국 국기로 이루어진 사람형상 구조물이 붙어있는 외국인주민센터는 365일 쉬는 날 없이 운영된다. 외국인 대부분이 일을 하느라 평일 낮엔 이곳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국인주민센터엔 △무료진료센터(원곡보건지소) △외환송금센터 △이주민통역지원센터 △다문화작은도서관 등 외국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한국어, 컴퓨터, 태권도 등 다양한 강좌도 개설돼 있다.

 

이주민통역지원센터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이곳에선 △중국 △인도네시아 △몽골 △미얀마 △러시아 등 12개 언어의 통역을 지원한다. 각 나라 출신의 통역사들은 저마다 책상 위에 자국의 국기를 올려놓았다. 국제결혼으로 지난 94년 한국에 온 뽀뽀 씨는 미얀마어 통역 업무를 맡고 있었다. 뽀뽀 씨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주민을 대상으로 임금체불이나 사업자변경, 출입국, 의료관련 사항의 통역을 도와준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사업주와 의사소통이 안돼서 서로 오해가 쌓이는 일이 많아요. 특히 원곡동엔 미얀마 사람이 많이 없어 사업장변경 정보를 얻기 어려운 편이라 제가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외국인주민센터 1층에 위치한 외환송금센터는 지난해 5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기존엔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녁 늦게까지 일하다 보니 임금을 받아도 고향으로 돈을 송금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외환송금센터는 평일 오후 4시 반까지만 영업하는 보통의 은행과 달리 저녁 8시까지 은행업무를 진행한다. 토요일과 휴일에도 오후 4시까지 외화송금이 가능하다. 김행련 계장은 주말엔 송금을 하기 위해 다른 동네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도 많다고 했다. “외국인 노동자는 평일 낮에 은행에 갈 시간이 없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주민센터에선 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대신 주말과 야간에도 업무를 할 수 있는 은행을 공모했어요. 그렇게 생겨난 게 외환송금센터예요”

 

(사진 = 한상우 기자)

 

외국인주민센터 1층에 있는 무료진료센터(원곡보건지소)도 외국인이 많이 찾는 장소다. 의료보험이 있는 내국인은 2~3천원이면 가능한 간단한 진료도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은 최소 2~3만원을 내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선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반, 치과, 한방 치료를 무료로 제공한다. 진료센터는 월~금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수요일엔 일이 늦게 끝나는 외국인을 배려해 7시부터 두 시간 동안 야간진료도 진행한다. 일요일에도 오후 시간동안 진료가 이뤄진다.

원곡동을 찾은 날이 마침 수요일이라 야간진료 모습을 볼 수 있었다. 7시가 되기도 전 진료센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중국 길림성에서 2년 전 한국으로 왔다는 40대 아저씨는 허리통증 때문에 매주 수요일 마다 침을 맞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아파트 청소 일을 하는데 하루에 4만원 정도 벌어요. 그 돈으로는 생활하는 것도 빠듯해 병원가서 침 맞을 엄두도 못 내죠. 평소엔 일이 늦게 끝나 못 오지만 수요일엔 꼭 와서 침을 맞아요”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100만 명을 넘으면서 다문화가정도 함께 늘었다. 원곡동엔 세계 곳곳에서 온 아이들과 교포 2세가 많다. 현재 안산시엔 두 개의 다문화아동지원센터가 있으며 모두 원곡동에 자리하고 있다. 그 중 한 곳인 우리함께다문화아동센터(이하 아동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저마다 모여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곳엔 현재 22명의 아이들이 등록돼 있으며 국적은 △한국 6명 △중국 12명 △러시아 2명 △네팔 1명 △필리핀 1명으로 다양했다. 아동센터 시설장 김경미 씨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이 한국에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센터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원곡동엔 다문화가정 아이가 많은 편인데 그들 대부분은 방치돼 있어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나중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도 많아요. 커가면서 자신의 부모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아이도 있고요. 센터에선 엄마·아빠 나라 알아가기 교육이나 음악·미술 치료로 아이들이 바람직한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