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사람을 만나다

고대산악회 장민석 기자l승인200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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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많이 먹은 누군가 ‘산은 그대로 있었다’고 했다. 세월을 살며 사람은 변했지만, 모습이 조금 바뀌었을 뿐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있었단 말이다. 70년이 넘는 시간을 본교에 머문 고대산악회(주장=오종훈·정경대 경제05, 이하 산악회)는 이런 산의 모습을 닮았다.

점점 개인화되는 사회분위기에도 산악회는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았다. 산행 횟수와 인원은 조금 줄었지만 산을 좋아하고 산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전통은 그대로다. 올해엔 예년보다 부쩍 는 9명의 신입회원이 들어와 한 학기를 잘 버티고, 9박 10일 코스 동계산행을 기다리고 있다.

산악회는 들어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 산악회에 들어오려면 언제든 홍보관 1층에 있는 등산부실을 찾아가 ‘산에 가고 싶습니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된다. 군대를 다녀와 다시 활동해도 되고, 졸업 후에도 부원과 함께 산에 갈 수 있다. 다만 올해엔 여학생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해가 넘어가기 전까진 잡일을 할 남학생만 받는다.

떠날 때도 마음대로 떠나면 된다. 일주일이 넘는 △춘계 △하계 △동계 산행과 격주로 가는 1박 2일의 정기산행에 꼭 참여할 필요도 없고, 몇 학기를 필수로 해야 한다는 규칙도 없다. 지난 학기 주장 박영채(문과대 한국사04) 씨는 “한 순간이라도 산에서 함께 할 수 있으면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을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횟수와 시간은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일단 산에 오르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긴 산행의 경우 출발 전 적어도 2주 동안 산행에 쓰일 식량, 일정, 장비를 철저하게 점검한다. 한 겨울 홍보관 앞에서 바닥을 더듬는 사람이 있다면, 텐트를 깔아 놓고 구멍이 있나 확인하는 산악회 부원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꾸려진 가방의 무게는 20kg에 달하기 때문에 체력관리도 꾸준히 병행해야 한다. 산악부원들은 화정체육관 인공 암벽에서 암벽 등반 훈련을 하기도 한다.

산악회는 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능선 종주는 기본이고 암벽도 등반한다. 북한산 인수봉과 설악산 울산바위는 산악회가 애용하는 장소다. 긴 산행 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두 가지를 모두 하기도 한다. 한 겨울엔 약간의 술로 추위를 떨치고 야영을 하며, 꽁꽁 언 빙벽도 탄다. 눈을 녹여 탄 커피와 발아래 수십 km가 짙은 안개로 덮인 경치는 덤이다.

산에 오르는 것이 취업에 한 움큼의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력서에 한 줄을 보태기 위해 들어온 사람은 곧 산악회를 떠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산악회에 남는 이유가 산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종훈 주장은 “지금이야 산이 정말 좋지만, 처음 산악회 활동을 할 땐 산보다는 같이 오르는 사람이 좋아서 산을 올랐다”고 말했다.

산악회에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억의 농도가 매우 짙다. 몇 가락의 자일로 서로의 생명을 맡기고, 도저히 나아갈 수 없을 땐 동료에게 의지하기 때문일까. 산에서 밥을 같이 먹거나, 손을 한 번 잡아 일으켜 주는 사소한 일이 기억에 짙게 남는다. 박영채 씨는 “하루 산행을 마치고 텐트에 모여 앉아 저녁을 먹으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오종훈 주장은 “요즘 같은 시대에 자기 할 일이 많은데도 산악회를 떠나지 않는 부원들과 자신이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며 “아마도 산이 좋고 사람이 좋아 다시 산에 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민석 기자  moon@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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