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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감독 인생 10년, ‘코트의 신사’ 김진 前 SK 감독
어느덧 감독 인생 10년, ‘코트의 신사’ 김진 前 SK 감독
  • 고봉준 기자
  • 승인 2009.12.13 0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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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 SK를 레알 SK로!


7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2년 연속 정규리그 감독상 수상. 얼핏보면 60대 명장(名將)의 커리어로 여겨지는 기록들. 하지만 이 굵직굵직한 경력은 40대 젊은 감독이 단 10년 만에 써내려간 것이다. 화려한 경력의 주인공은 2010년을 기해 감독인생 10년을 맞는 서울 SK 나이츠 김진(사회 80) 감독. 경력답게 유창한 말솜씨를 뽐낸 김진 감독은 자신만의 감독 철학을 풀어놓으면서도, 우리학교 농구부 얘기를 제일 먼저 꺼내며 유별난 모교 사랑을 보여줬다.

사진 김명선


모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감독 인생을 듣기에 앞서 김진 감독의 선수시절 이야기를 부탁했다. 그러자 김 감독은 35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 김진으로 돌아간다. “춘천중학교 다닐 땐데, 서울에 갈 일이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장충체육관에서 고연전을 하더라. 대학생들이 장충체육관 유리창 깨고 들어가길래 쥐구멍으로 따라 들어갔었다. 거기서 고대에 완전이 매료된거지.”

중학생 김진과 고려대의 첫만남이었다. 김 감독은 당시 고연전을 보고 우리학교를 목표로 삼게 된다. 빨간색 유니폼이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일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박한 감독에게 스카우트되어 고3 9월말부터 우리학교에서 훈련을 하던 김 감독은 결정의 순간에 서게 된다. 당시 대학에 가기 위해선 운동선수들도 본고사를 치러야 했는데 김 감독은 본고사 전날까지 연대쪽에 붙잡혀 있었다고 한다. 신일고 동기들의 진로 문제가 그 이유였다. 그는 고대와 연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우리학교를 선택했다.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 대학 진학을 결정지은 것이다.

코트의 신사로 자리매김한 삼성전자 시절

삼성과 현대의 라이벌 관계가 대단했던 80년대 실업농구. 김진 감독에게 실업시절 이야기를 묻자 그는 선배들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그때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정말 많았다. 신동찬, 박인규, 임정명 선배 등 우리학교와 연세대 출신의 선배들이 다수였다. 선수로서 많이 배웠던 시기이기도 했다.”

김 감독은 삼성전자 시절 깨끗한 슛자세를 가진 슈터로 명성을 얻기도 했고, 농구인생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을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바로 ‘코트의 신사’. 농구는 게임 중에 성질을 내는게 당연할 정도로 급박하고 격렬한 운동이지만, 김진 감독은 현역시절 화 안내고 어필 잘 안하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별명 얘기를 꺼내자마자 김 감독은 얼굴에 웃음부터 띄운다.

“그 별명만 생각하면 참.(웃음) 신사라는 별명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 좋게 생각하고 있다. 스포츠는 선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중이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비춰지는 행동을 항상 조심했다. 경기 중에 판정을 납득할 수 없어도 가벼운 어필까지만 스스로 허용했다. 그게 마인드 컨트롤이다.”

지도자 인생의 시작

코트의 신사도 은퇴는 피해갈 수 없었다. 김진 감독의 은퇴년도는 1995년. 하지만 김 감독은 그보다 더 먼저인 93년에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93년에 은퇴를 하고 지도자 수업을 받기 위해 유학 준비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이인표(경영 62) 감독님이 은퇴를 만류해서 1년을 더했는데, 1년 지나고 나서 1년을 또 붙잡힌 것이다. 그렇게 선수생활을 2년 더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본고장 미국에 가서 학교 다니며 보충할 부분을 채우려 그랬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은퇴 후 95년에라도 왜 유학을 떠나지 않았을까. “상무에서 연락이 왔다. 코치로 와달라고. 안하겠다고 한 달은 거절한 것 같다. 김홍배 부장님이 몇 달에 걸쳐 부탁을 하시기에 인정상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도 새 선수들로 판을 짜보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나중에 알고봤더니 내 자리가 5급 공무원 위치더라.(웃음) 그 당시론 파격적 대우였다.”

코치로 맞이한 프로원년

상무에서 1년을 보낸 김진 감독은 박광호 당시 동양농구단 감독의 부름을 받고 동양 코치직을 맡게 됐다. 그리고 1997년 프로농구가 개막하자 김 감독도 코치로 프로원년을 경험하게 된다. 김 감독은 동양에 있었던 초창기를 배우는 시기라고 일컬었다. 유학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다시금 생겼던 시기이기도 했다고. 선수들의 카운슬러를 자처하며 팀을 이끌던 김 감독. 시련은 20세기말에 닥쳤다.

“98~99시즌은 암담 그 자체였다. 한번은 KBS에서 다큐 프로그램 찍는다고 해서 매일 따라다니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동양의 역사적인(?) 32연패 순간을 회상하는 한마디다. 당시 김병철(체육 92)과 전희철(신방 92) 등이 군입대로 전력을 이탈하게 되면서 동양은 최약체로 시즌을 맞게 된다. 게다가 외국인 선수까지 문제가 생기면서 팀은 32연패라는 한국프로스포츠 최다연패 기록을 세우게 됐고, 김 감독도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꼴찌에서 일등으로, 꿈은 이루어졌다!

김병철, 전희철 두 쌍두마차가 돌아온 2001년에도 팀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당시 사령탑이던 최명룡 감독이 1년도 안 돼 지휘봉을 놓자 김진 감독은 그 뒤를 이어 감독대행 자리에 올랐다.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맡게 돼 힘들었을 김 감독. 하지만 그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일념 하나로 팀을 바로세웠다. “2002 월드컵 때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유행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 말은 월드컵 전에 우리팀한테서 먼저 나왔다.”

다음시즌 정식감독이 된 그는 팀을 추슬러 정규리그 우승을 이루는 기염을 토했다. 프로농구에서 바로 전 시즌 꼴찌가 다음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거둔 것은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돌풍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리온스는 챔피언결정전마저 진출해 통합우승을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현 소속인 서울 SK였다.

당시 김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정상을 지키는 게 힘들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김 감독에게 우승 당시를 물었다.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특히 병철이, 희철이랑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던 생각이 들어서 더욱 감격적이었다.”

새로운 도전, SK행

원년부터 오리온스를 지키며 팀을 6시즌 동안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김진 감독은 2007년 결단을 내렸다. 이적을 결심한 것이다. 김 감독은 ‘물이 고여 있으면 썩는다’는 매너리즘을 염두에 두었다고 말했다. 변화는 좋았지만, 당시 이적팀 SK는 5년 넘게 6강 플레이오프에 들지 못하던 팀이었다. 새로운 팀에서 그는 무엇을 가장 먼저 실행했을까.

“SK는 구심점이 약해 선수들의 소속감이 떨어지는 팀이었다. 감독으로서 서로가 믿음을 가지며 플레이할 수 있도록 지시했고, 소통도 강조했다. 훈련 프로그램도 자율적, 창의적으로 구성했다.”

김진 감독 이적 첫해, SK는 시즌 5위로 꿈에 그리던 6강 티켓을 따냈지만, 플레이오프의 벽은 높았다. KT&G와 맞붙은 6강 싸움에서 2연패로 좌절한 김진 감독. 다음시즌인 08~09시즌은 8위로 3계단이나 떨어진 채 마감한 김 감독과 SK.

7년만의 좌절을 겪은 김진 감독은 2009년, 마지막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주희정 영입, 우승 노린다!

‘원래부터 데려오고 싶었던 선수’, ‘자율성의 모범’, ‘동료들의 장점을 끌어내는 이타적 마인드의 소유자’

김진 감독이 주희정(체육 95)을 설명하며 사용한 수식어들이다. 김 감독은 “내가 과연 저렇게 훈련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희정의 노력은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그런 주희정이 올시즌 김진 감독과 한배를 탔다. 그것도 SK가 프랜차이즈로 키우려던 주전가드 김태술(연세대 03)을 내주면서까지. 트레이드는 성사됐지만 김 감독은 주희정-김태술 트레이드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김태술의 능력이 아쉽기는 하지만 팀에는 파괴력을 지닌 선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주희정은 팀에 ‘파괴력’을 선사하며 상위권 행진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주희정은 10월까지 어시스트 단독 1위에 올라있는 상태. 김 감독이 기대했던 파괴력과 이타적 플레이를 모두 보여주고 있다.

(계약 마지막해라는 점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부담은 그리 많지 않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김진 감독. 그는 “3~4라운드는 되어야 순위싸움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섣부른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과연 승부사 김진이 ‘모래알 SK’를 ‘레알 SK’로 탈바꿈시키며 대망의 패권을 되찾을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SK의 정규리그 우승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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