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위에서 바라본 섬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마주한 섬의 본모습은 그야말로 참혹 그 차체였다. 섬 전체에 가득한 기름 냄새와 바닷가 곳곳에 눈에 띄는 기름 덩어리. 그리고 방제복 차림으로 생업을 포기한 채 기름 제거에 나선 주민들. 서산 대산항 기름유출 사고 발생 40여일만에 찾아간 당진의 섬마을은 2년 전 태안이 떠오르는 모습으로 가득했다. 

지난달 30일 충남 비경도 바닷가의 모습. 사고 발생 40여일이 지났지만 바위를 조금만 들추면 이렇게 기름범벅이 된 돌과 모래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서해엔 또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해 12월 22일. 당진군의 조용한 섬 난지도에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이틀 전인 20일 성호해운 소속 유조선 신양호(4026t급)에서 유출된 벙커C유가 앞바다로 밀려든 것. 유출된 기름의 양은 5.9㎘. 2년 전의 태안 기름유출 사고(1만 2547㎘)와 비교하면 2000분의 1 규모에 불과한 양이었다. 우연히 사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유출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소식에 안심했다. 하지만 그 적은(?) 유출량은 오히려 주민들을 절망으로 밀어 넣기엔 알맞았다.

수십 만 개의 타르 조각으로 부서진 기름은 손을 써볼 겨를도 없이 대난지도와 소난지도, 비경도, 대조도 등 인근 당진군 석문면의 섬 8곳 깊숙이 파고들었고, 이 지역 주민들의 1년 수입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굴 따기도 무기한 중단됐다. 하지만 적은 양이라는 말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그런 사이에 피해 규모는 점점 늘어났다.

“초기 대응만 잘 했어도….”
첫 유출 사고는 지난해 12월 20일 밤 10시 40분에 발생했다. 유조선인 신양호의 담당자가 기름 탱크의 밸브를 잠그지 않는 바람에 배에 싣던 벙커C유가 갑판과 바다로 넘친 것. 기름 유출 사고의 경우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하지만 관리·감독을 책임지는 현대오일뱅크는 사고 발생 약 11시간 후인 21일 오전 9시 15분에야 태안해양경찰서에 사고 소식을 알렸다. 주민들과 언론은 현대오일뱅크 측이 사고를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기름은 이미 퍼질 대로 퍼진 후였다.

몇 시간 뒤면 피해 당사자가 될 당진 섬마을에도 사고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다. 신고가 들어온 직후부터 해경과 해양환경관리공단, 현대오일뱅크에 의한 방제작업이 이뤄졌지만 주민들은 이틀 뒤에야 바닷물에 뜬 타르 덩어리를 보고 사고 사실을 알았다. 굴과 바위 곳곳에 묻은 기름을 보고 주민들은 “왜 주민들이 아무 대비도 할 수 없도록 내버려 둔 것이냐”, “소형 어선을 동원해서라도 기름이 퍼지는 것을 초기에 막았다면 섬까지 피해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사고 사실을 확인하고 마을에서도 뒤늦게 방제 작업이 시작됐다. 이미 올해 수확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생계 수단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바다는 주민들의 ‘삶 그 자체’였다.

또 한 번의 유출 사고
그리고 지난달 15일(금) 또 다시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충남 서산시 대산읍 삼길포항 일대 묘박지에서 해상급유를 받던 유조선 D호가 벙커C유를 유출한 것. 유출량은 0.3~0.5㎘ 정도로 비교적 적었지만 이미 지쳐있던 주민들에게 사고 재발 소식은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사고가 잇따르자 현대오일뱅크는 대산항과 당진항, 태안항 등 3개항에서 해상급유를 통한 기름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 단체들은 “지난해 12월 20일 사고 이후에도 급유를 계속해오다가 이제 와서 유류 급유 사업을 중단한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의 생계가 막막한 상황 … "언제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지도엔 어패류 수확을 업으로 하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11월부터 3, 4월까지가 주요 수확 시기인 굴은 이곳 주민들의 연 수입 7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소득원. 살이 통통하게 오른 굴을 수확하느라 매일매일이 바쁘고 행복한 나날이었던 난지도의 주민들은 이제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특히 맨손으로 어패류를 수확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미 생활비가 모두 바닥나 작은 방에 기름보일러조차 돌리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난지도엔 어패류 수확을 업으로 하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11월부터 3, 4월까지가 주요 수확 시기인 굴은 이곳 주민들의 연 수입 70%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높은 소득원. 살이 통통하게 오른 굴을 수확하느라 매일매일이 바쁘고 행복한 나날이었던 난지도의 주민들은 이제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특히 맨손으로 어패류를 수확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미 생활비가 모두 바닥나 작은 방에 기름보일러조차 돌리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상황이 이렇지만 당진군과 사고 책임자에 의한 긴급 생계 지원은 거의 전무하다. 지원이라곤 당진군에서 지역주민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제공하는 점심 도시락과 방제 장비가 전부다. 몇 차례 진행된 협상 테이블에서도 피해 규모를 확인한 뒤 보상 협의를 진행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돌아왔다. 난지도유류피해대책위원회 오형운 총무는 “보상 문제에 대한 논의도 시급하지만 당장 쌀과 기름이 떨어져가는 주민들에게 생계지원비를 지원하는 것이 우선 아니냐”며 “군의회와 행정 담당 부서, 현대오일뱅크 모두 일단 기다리라거나 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는 법적, 행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말만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다”며 분개했다.

이런 어려움이 얼마나 계속될지 모른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에 유출된 벙커C유는 태안 사태 당시의 원유에 비해 점성이 높고 질이 낮아 방제 작업에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날이 풀리면 돌과 모래 곳곳에 감춰진 기름이 바다 위로 떠 2차 피해를 입힐 가능성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

피해 당사자인 소난지도의 한 주민은 “굴은 기름이 한 방울만 묻어도 냄새 때문에 주변에 있는 것까지 모두 상품가치를 잃어버린다”며 “방제작업이 이 상태로 진행된다면 수입이 없는 상태가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오형운 총무는 “현대오일뱅크와 사고 선박 보험사 등에 정확한 피해 상황과 2차 피해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공신력 있는 기관에 조사를 의뢰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무조건 2차 피해는 없다’며 조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관심과 지원
봉사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 같이 지친 모습이었다. '닦아도 닦아도 기름이 줄지 않아 희망이 안 보인다'고도 '2년 전 태안과 달리 봉사의 발길이나 지원의 손길이 턱없이 부족해 주민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니 너무 벅찬 상황'이라고도 했다. 특히 주민들은 "사고 초기, 기름 유출 소식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거나 축소·왜곡돼 알려진 바람에 보상금 협의나 지원 요구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당진 기름피해 지역의 자원봉사를 기획한 '대재항 기름유출 봉사자 모집 카페'(http://cafe.daum.net/oil-slicked)의 김현익 씨는 "이번 기름 피해 사고의 경우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해 자원봉사자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고 소식이 알려지고, 봉사 지원과 물품 지원이 많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봉사활동 지원자 모집처 : 대재앙 기름유출 봉사자 모집 카페(http://cafe.daum.net/oil-slicked)
피해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모금 페이지 : Daum 희망모금(http://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87579)

이준형(문과대 철학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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