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를 상대로 흥행을 노리고 제작한 블록버스터급 영화<공자(孔子)>가 아무래도 실패하리라는 예상은 연초에 중국에서 개봉될 때부터 있었다. 홍콩의 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공자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여러 면에서 이번의 <공자>가 과거 중화민국이 대륙에 있을 때 만든 작품에 비해 나을 것 없다는 논평을 싣기도 하였다. 그러나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인 <논어>를 오랫동안 공부하였고 이번 학기에도 전공과목 강의가 있는 나는 영화가 빨리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상영관에 들어서자 비록 평일 오후인 것을 감안해도 넓은 객석에 관객이 오십 명도 채 안 되는 썰렁한 모습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이 글을 쓰는 현재도 우울하다. 나의 심정을 솔직히 옮긴다면 괄호안과 같다. (빌어먹을... 공자님을 이따구로 만들어 놓다니... 차라리 나에게 대본을 쓰라고 하지...) 이렇게 어설프게 만들 바에야 애초에 공자의 삶을 있었던 그대로 충실하게 그리는 게 나을 뻔 했다. 영화 <공자>는 그러지도 못했다. 극영화인 이상, 허구(虛構)를 끼워 넣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불가결의 장치가 되어야 할 것인데 <공자>는 그렇지도 못했다. 영화 속에서 위나라 군주 영공(靈公)의 젊은 부인 남자(南子)가 공자에게 연정을 느껴 유혹하려 했고 곧이어 아들 괴외(蒯聵)가 보낸 자객의 화살을 맞고 죽는다거나, 제자 안연(顔淵)이 철환천하 끝에 노나라로 돌아오던 중에 얼음장이 깨지면서 유실 위기의 책(冊)을 구하려다 익사하는 것은 허구이며, 극적 효과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중국이 350억원의 거금을 들여 이 영화를 만든 진짜 이유가 현재 중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빈부의 격차’를 줄이자는 메시지를 공자의 입을 빌어 전하자는 것인데 이마저 적절하게 전달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중국 속담대로 제소개비(啼笑皆非), 즉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게 하는 사소한 오류들이 적지 않았다. 현재 중국에는 우수한 공자 연구가들이 적지 않은데 영화 제작자들이 왜 그 분들에게 자문(諮問)을 하지 않았는지 무척 궁금하다. 엄청난 제작비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될 자문료가 아까워서도 아닐 텐 데 말이다.

 이 일과 관련하여 늘 쓸데없는 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중국이 공자를 영화로 만들었으니 우리나라도 퇴계 이황(李滉) 같은 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퇴계의 경우, 우리나라 영화계에선 어떤 이념을 작위적으로 주입하기 위해 만드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도 높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정비석 최인호 같은 출중한 소설가들이 너무나 ‘소설’을 잘 쓴 바람에 근간에 상당히 널리 유포된 허구가 영화의 주류를 이루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퇴계는 ‘밤퇴계’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호색(好色)이었다, 퇴계는 청상과부가 된 둘째 며느리를 개가시켰다, 단양군수로 있을 때 기생 두향(杜香)과 애틋한 사랑을 했다, 풍기군수로 있을 때 공부를 좋아하는 대장장이 배순(裵純)을 제자로 삼았다... 이런 것들은 한마디로 순 엉터리란 걸 밝혀둔다. 영화와 드라마가 문화의 주요 텍스트가 되었지만 이상한 허구들이 기본 사실마저 갉고 비트는 오늘, 새삼 사실을 토대로 하고 그 의의를 높이면서 극적 효과에 기여하는 허구를 가미한 사극을 보고 싶다.

김언종 문과대 교수 한문학과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