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한총련을 언제까지 반국가집단으로 간주해 수배할 것인지 참 답답하다”라는 언급을 계기로 한총련 문제가 사회적 공론화 되고 있다. 도대체 한총련 문제가 무엇인가. 친북 ‘색깔’로 대한민국의 혼란을 가중시킨 주사파 운동권 대학생들의 문제인가. 아니다. 오히려 해마다 젊은 대학생들이 무더기 수배, 구속, 처벌이 되어 왔음에도 이를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정당하고 적법하게 선출된 학생대표들에 대해, 선출되기만 하여도 곧바로 ‘이적단체가입’으로 처벌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는가. 그 선거에 참여한 전국의 대학생 전체를 범죄자 취급하는 데도 말이다.

그 무관심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대표를 뽑는 선거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이적단체가입의 방조범으로 낙인되는 상황을 잘 몰라서 지성인임을 포기하고 그토록 지독히 무관심하였을까. 아닐 것이다. 수배자들이 학교 내에서 갇혀 수형생활과 진배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그토록 지독히 모를 수는 없을 게다. 하기야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한총련 문제 해결의지를 내보인 것만도 대단한 용기다. 그도 친북좌파로 찍힐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한총련의 문제가 분명해진다. 한총련의 주의, 주장을 용서치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무관심을 낳은 것이다. 대통령이 토론회에서 자주국방을 이야기하면 반미주의자로 몰릴까 두려워 말조심한다. 그리고 한미관계에 대하여 내놓은 친미자주는 상식이 의심스럽다. 그런 광경을 한총련 변론을 하다보면 많이 접한다. 어떤 대학생은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인가라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아차 싶었는지 이어진 남한 정부는 친미예속정권인가라는 검사의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 학생도 상식이 의심스럽다. 식민지 국가라고 해놓고 그 정부는 예속정권이 아니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일관성이 없다. 우습지만 우습지 않고 심각해지는 상황의 연출에 가슴이 아플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북한의 주의, 주장과의 동일성, 유사성 유무를 가지고 판단할 문제가 왜 그리도 많은가. 한총련의 미군철수, 연방제 통일 주장을 금기시한다면 과연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결사의 자유는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젊은 대학인들의 자치활동과 정치활동을 불온시하는 데 민족의 미래가 어떻게 열릴 수 있는지 걱정이다. 그들을 극히 예외적 일부라고 치부하고 무시하기에는 수배, 구속하는 현실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제 한총련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닻을 올렸다. ‘색깔’ 시비로 허송세월 하는 것은 더 이상 해법이 아니다. 한총련 문제는 한총련은 반국가단체에 해당하는 북한의 주장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주장, 대표적으로 미군철수,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기 때문에 이적단체라고 하고 있다. 북한은 반국가단체인가. 이 문제가 한총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풀어야 할 관문이다.

대법원은 남북관계가 더욱 진전되어 남북 사이에 화해와 평화적 공존의 구도가 정착되면 반국가단체성이 소멸된다고 하나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였고 남북 사이의 화해,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하였다. 또한 6·15남북공동선언에 합의서명 하였다면 더 이상 북한을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동반자 내지 하나의 주권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이고 타도되어야 할 적으로 규정하며 적대시하느니 우리 민족이 서로 마주 앉아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6. 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인적 교류, 경제교류가 한창이고 한반도의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됨으로써 일본과 중국, 러시아, 유럽을 잇는 동북아경제권이 새로운 세계경제의 무대로 태동하고 그 물류의 중심으로 남과 북이 부상하고,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남과 북의 협력이 필수적일진대, 국가보안법의 체제대결논리를 계속 고수하여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총련의 합법화는 우리 사회가 비상식적, 비정상적 상태에서 상식적, 정상적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한총련의 합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한총련 문제에 무관심한 사이에 우리 사회는 그들이 주장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엄연한 현실이다. 작년 노도와 같이 일었던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에서 그것을 느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편협한 냉전적 시각에 사로잡힌 정치세력이 집권한다면 언제든지 이적단체는 다시 양산될 수 있다. 젊은 대학인들이 한총련에게 씌워진 이적의 족쇄를 하루라도 빨리 풀고 국가보안법이 없는 세상이 현실이 되도록 민족의 미래를 앞장서 개척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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