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가수 은지원은 당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인 H.O.T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젝스키스의 리더다. 그 때 그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고, 리더로서의 당당함만 충만했다.

그러나 2010년 그의 별명은 은초딩. 우리 사회에서 초딩이란 말은 떼쓰거나 억지 부리는 이들을 가리키거나 유치한 이를 일컫을 때 쓰인다. 초딩이 한 물 간 언어라면, 새로운 언어로는 `중2병'이 있다. 말을 풀면, 중학교 2학년 같은 병이다. `초딩'을 넘어 중학교에 진학한 뒤 이제는 세상을 다 알아서, 지천명을 한 듯 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이다. 이 말은 일본의 한 개그맨에서 시작됐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자주 쓰이면서 확산됐다고 한다.

어원과 상관없이, 중학교 2학년 시절을 돌아봤다.

중학교 2학년은 초등학교라는 인생의 한 관문을 통과한 뒤, 어리버리 대면서 중학교 1년을 버틴 후다. 인문계와 전문계로 인생을 결정지을 선택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첫사랑이라는 가슴앓이도 했을 수 있을 때다. 얼굴이 복숭아색처럼 발그랗게 되고, 심장이 멎어 버리는 느낌을 안겨주는 `뽀뽀'를 이성친구에게서 받을 수도 있는 나이다.

몸도 어른으로 변해 간다. 남자는 목소리가 두꺼워지고, 아버지와 팔씨름에서도 호락호락 지지는 않는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면, 어쩌면 새치 그득한 아버지는 상대가 안될 지도 모른다. 여자는 남자 아이와 달리 곡선화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모습을 남몰래 전신 거울 앞에 비춰 보는 잔망스러운 행동을 하기도 한다.

중학교 2학년, 세상을 알기에는 남은 세월은 불필요해 보인다. 14년 간의 인생살이로 충분하다. 정신적 성숙도는 어른 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그러면 중2병은 영원할까? 그렇지는 않다.

고등학교 올라가서 더 큰 책상과 더 빡빡해지는 현실을 겪으면 중학생 때 머물렀던 세상은 극히 일부분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내 겸손해진다. 2학년, 3학년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는 하루하루가 바빠 세상과 소통할 시간은 없다. 교과서와 문제집과 씨름할 뿐. 고등학교 3학년 초겨울, 그 날은 꼭 춥다. 대학을 오르기 위한 문 앞에서 벌이는 승부. 함께 자웅을 겨루는 이들은 수십만 명이다. 힘겨울 만하다. 이전 열여덟 해의 인생을 정리하는 동시에, 향후 수십 년을 좌우할 지도 모르는 승부, 생각만 해도 숨 막힌다. 이 싸움을 겪은 후에는 모든 걸 초월한 듯하다.

그리고 중2병은 다시 찾아온다. 대학에 가면 지식인으로서 내가 아닌 사회를 고민한다. 꽤나 거창하게는 국가 그리고 나아가 세계를 걱정한다. 아(我)와 피아(彼我)로 무리를 가르고, 돈 한 푼 안 떨어지지만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기도 하고 때로는 억누르려는 그 힘에 맞서기도 한다. 힘으로는 어림없는 걸 알지만.

이전 캠퍼스에 만연했던 중2병 환자는 극히 드물다. 수능을 마치고 다시 독서실로 가서 토익을 공부하고, 고교시절 내신 관리하듯 학점을 관리한다. 스팩을 갖추려 치밀하게 짜인 삶 속에 자신을 맞춘다. 중2병 환자스럽게 한 마디 한다. "인생은 다 때가 있더라, 빨리 어른이 된다고 훗날 행복하진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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