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대구에 도착했을 때, 역 근처에 있는 대구시민회관 때문인지 대구가 성지(聖地) 같았다. 그곳은 대구에 있는 몇 안 되는 공연장 중 하나이지만 지난 2월 중순부터는 죽은 자들과 가족을 잃은 자들의 숙소가 되었다. 두 달 넘게 연극과 음악회가 부재했던 이 공간에 말을 잃은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엘레지가 울리고 있다. 대구에 오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중앙지는 대구지하철 소식을 이제 기사로 삼지도 않지만 이곳에 와보면 그 일이 진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아직 그들을 잊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며칠 뒤, 고등학교 친구 구 씨를 몇 달만에 만났고, 화제는 자연스레 지하철사고로 이어졌다.

내 그때 아르바이트 간다고 아침에 나왔거던. 중앙시네마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되는데 국채보상운동 앞에서부터 차가 아예 안 가는 거라. 그래서 한일극장에서 내려가 중앙시네마 쪽으로 걸어가는데 하늘이 아예 시커멓드라. 지하철 입구에서 연기 다 나오고 방화셔터는 벌써 내려져 있고, 경찰도 없고 차량통제가 안 되가 엉망이었다. 팔로 얼굴 가리고 길을 가고 있는데, 일하러 가야되니까, 그거 잠깐 걸었는데 목이 아프드라, 연기가 매워서. 여기저기 전화해보고 두 시간쯤 뒤에 알았다. 그래 큰 사고났는지. 전화하면서 우는 사람도 있고, 나도 눈물날라 하고. 내 과외하는 아 친구도 그 날 사고 당했단다. 근데 두 시간 지날 때까지 경찰도 안 오고, 차량통제도 안 되고, 뉴스에도 안 나오드라. 지방이라고 그라는가. 그래도 너무 하드라.
얼마 전부터 지하철사고현장을 공개한다고 해서 친구 구 씨와 함께 가봤다. 마침내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미 와 본 적이 있는 구 씨는 고맙게도 힘을 주어 내 팔을 감았다.

“어머, 세상에.”

나는 이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곳을 표현하려면 언어가 더 필요하다. ‘무섭다’ ‘참혹하다’ ‘끔직하다’와 같은 말로는 그것에 접근할 수 없다. 나는 언어의 결핍 때문에 그곳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언어로는 부족하다. 내가 피력할 수 있는 표현은, ‘춥다’는 것. 아래는 추웠다, 지하 1층보다 2층이 더. 일반인은 내려갈 수 없는 지하 3층은 더 추웠을 것이다.

당신은 내 시선을 따라 지하 2층에서 올라가 보자. 바닥을 제외한 모든 벽은 죽음의 옷자락처럼 검다. 아주 시꺼멓다. 채도 높은 검은색이어서 벽에 검지를 대어보기도 했다. 검댕이 묻어 나왔고 그 자리는 원래 벽 색을 회복했다. 따뜻한 상아색이었다. 실종자들의 사진과 신상명세, 그들을 찾는 문장과 그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지하철 입구부터 이곳 아래까지 벽을 메우고 있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사람들. 그러나 설령 그들을 찾을 수 있다 한들, 오른발로 추정되는 덩어리로, 머리카락 한 움큼으로, 지독하게 신체적인 특성으로 증명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영혼은 그것을 담아줄 몸 없이는, 이토록 무력한 것. 많은 사람들이 하얀 국화를 가져왔단다. 꼿꼿하게 마른 하얀 국화들이 양쪽 벽 아래에 쌓여있다. 모두 바싹 말라 보였다. 새로 가져온 꽃은.. 더 이상 없나 보다. 죽은 이에게 새 꽃을 선물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채 식지 않은 시신에게는 새 꽃을 바친다. 꽃은 시신과 함께 말라간다. 우리는 가끔 죽은 자의 기억을 새롭게 하고 싶을 때 싱싱한 꽃을 선물한다. 그러나 새로워지는 것은 죽은 자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일 뿐이다. 죽은 자는 언제나 죽은 채다.

냉한 공기가 스윽 몸을 감싼다. “여기는 춥다” 내 말에 친구는 대답이 없다. 이상한 점이 있다. 구 씨는 점심을 먹으면서 “통풍이 안 돼서 그런지 그 아래는 후끈하다”라고 말했다. 나만 추웠던 것일까? 나가는 곳을 표시하는 직사각형 전등이 달리의 그림 melting clock 처럼 녹아 내려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고드름 같기도 하고. 유독가스 속에서 시계(視界) 제로였던 그 날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녹아 내렸을 그 전등도 그 아래서 추워 보였다.

지하 1층으로 올라가면 지하 2층에 없는 것이 있다.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유가족대책본부를 지키는 몇몇 분이 바로 그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점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고, 사고는 얼버무려지고 있다. 유가족들에게는 일관된 논리 없이 벽처럼 단단하기 만한 정부, 남들의 극성은 도대체 참을 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와의 대결의 시작이고, 죽은 자 없이 살아야 할 삶의 시작이지만, 그들의 여집합인 사람들에게는 ‘사고 2달 후’이고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었으면 싶은 시기이다. 유가족들은 합판으로 낮은 벽이나마 대충 만들고, 매트리스를 몇 장 깔아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삶과 죽음에 양다리를 걸쳐놓고 위태롭게 지내고 있었다.

지상으로 난 계단을 통해 지하 1층으로 삶의 바람이 불어왔다. 뜨뜻하고 미지근한 바람이었다. 목을 큼큼하게 하는 매캐한 연기와 향냄새가 가득한 그곳에서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갔을 때, 햇살이 지상의 구석구석을 만지는 오후였다. 지하철 입구 앞에 있는 극장으로 내 또래의 청년들이 들어갔고,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고개를 젖혀 웃었다. 친구 구 씨를 바래다주러 가는 길 양옆으로 심긴 가로수에서 새싹이 한창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그 위로 부서지는 햇살들,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들, 그건 마치 무슨 형벌 같았다.

약 일주일 뒤 나는 그곳에 돌아갔다. 그동안 며칠씩 비 내리다 하루씩 갑자기 햇볕 쬐는 날씨가 되풀이되었다. 그 토요일도 며칠씩 비 내리다 거짓말처럼 개인 날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제까지 땅 위의 건물을 마구 때려대던 비바람이 도시가 잠든 틈을 타 죽어버린 듯했다. 4월 말인데도 아스팔트는 뜨거운 입김을 내 뿜었고, 몸에 땀이 차 올랐다.

대구를 ‘대통령을 뽑은 무서운 도시, 시인들만 우글거리는 신비한 도시, 그리고 폭염의 도시’라고 묘사했던 사람은 기형도였던가. 나는 이제 그 너머의 수식을 찾았다. 대구는 ‘야만의 도시’이다. 중앙로는 전과 다름없이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이 죽음 후 변한 것은 별로 없다. 거의 모든 대구 사람들은 도시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이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 사람들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 말한다. 그들은 죽은 사람 뿐 아니라 유가족도 잊는다. 말 없이 고개를 숙이거나, 나 살기도 바빠서 그렇지, 라고 말한다. 이렇게 죽음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이번 죽음을 무력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죽음이다. 공상 과학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ial Man>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영화에서, 사람처럼 감성을 가진 특별한 로봇 앤드류Andrew가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피부와 장기기관, 감수성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바로 죽음이었다. 그도 언젠가 죽지 않고서는 인간이 아니었다.   

입학 전 떠난 새터에서 사고로 죽은 동기 하나가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내가 십 수년을 자란 대구에서 일어난 큰 사고가 나의 진로를 섬세한 손길로 수정했다. 어떤 죽음은 힘이 세서 산 자의 삶을 만진다. 그 삶은 결코 전과 같지 않다. 진정하게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밥처럼 먹고 피처럼 흘리고 다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죽음은 시체와 함께 관에 갇힌다. 시간은 무심하게 잘도 흘러간다. 산 사람은 나이를 먹고, 죽은 자의 묘지에는 유통기한 같은 숫자가 배열된다. 어리석은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꽃은 피고 죽은 이는 잊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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