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철거민연합에 가입하려고 해도 돈이 없어서 가입할 수 없다. 지는 싸움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 싸움을 할 돈도 없다” 신광연립 주민협의회 정용진(30·남) 씨는 살아오던 집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억울함을 토로했다.

법과대 후문(종암동)에 위치한 신광연립 주민들이 집을 빼앗기게 생겼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건물이라며 철거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을 사들인 것이 본교 법과대고, 잔금을 치르는 조건이 ‘철거 완료’라고 신광연립 주민들은 주장한다.

대법원 “원래 없는 건물”

사연의 시작은 건물이 지어진 1979년이다. 주민들은 건물을 정상적으로 분양받았지만, 토지 등기는 하지 못했다. 건물을 지은 설 모 씨가 토지에 대한 잔금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를 알지 못했고 취득세, 재산세 등 세금을 내 오면서 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1998년에 땅이 새 주인(이 모 씨)에게 넘어가며 문제가 생겼다. 이 모 씨는 가난하거나 건강이 나빠 소송에 대응할 수 없는 집부터 소송을 시작했다. 이렇게 한집씩 소송을 통해 결국 2003년 12월 24일 “건물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건물을 철거해도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기에 이른다. 결국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건물은 존재하지 않는 건물이 됐고, 주민들은 남의 땅에 불법으로 사는 신세가 됐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주민들은 이전과 같이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 강제집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어떤 법적 대응도 할 수 없었다. 법률 자문을 받아도 “법적으론 방법이 없다. 조금만 버텨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본교 법과대 “직접 관련 없다”

신광연립 주민협의회는 “땅 주인과 관련된 믿을 만한 사람에 의하면, 땅을 사들인 게 고려대 법과대고 로스쿨 기숙사 자리로 선정해뒀다”고 주장했다. ‘땅이 팔렸다’는 소문이 돌기 전에는 본교 법과대학장이 가끔 주민들을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법과대학장은 주민들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정 씨는 “이전엔 법과대학장과 통화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할 얘기가 없다’며 통화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법과대 고위 관계자는 “그 땅이 로스쿨 기숙사의 유력한 후보지인 것은 맞다”며 “하지만 법과대 소유도 아니고 직접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신광연립 주민협의회는 땅주인 이 모 씨, 법과대, 신광연립 주민이 모여 이주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 씨는 “고려대에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학교는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번 주 강제철거 예정

신광연립에는 이미 군데군데 빈 집이 있다. 지난달 16일에 강제집행을 당한 집과 땅 주인과 합의를 해 이사를 간 집들이다. 정 씨는 강제철거 때 다친 상처를 보여주며 “강제철거를 하는 데 용역 160명이 왔다. 용역 고용에는 돈이 4600만원 들었다더라. 차라리 그 돈으로 합의를 해달라”고 호소했다. 주민들은 지난달 28일에 정문 앞에서 신광연립이 처한 상황을 알리는 시위를 벌였다.

신광연립엔 4일(화) 또는 5일(수)에 강제철거가 집행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주민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그들 중엔 70세가 넘은 독거노인이나 암 투병중인 사람도 있다. 이 땅을 사들인 게 본교라면, 로스쿨 기숙사를 위해 원주민이 억울하게 내ㅤㅉㅗㅈ긴 땅을 샀다는 도덕적 책임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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