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신문이 개교기념일을 맞아 고려대 발전을 위한 재단법인의 지원전략을 취재하고자 4월 28일 고려중앙학원 전략기획실을 방문했다. 박종규 전락기획실장은 뜻밖에 김정배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주선했다. 세종시 새 캠퍼스, 세종캠퍼스 약학대학 지원책, 차기 총장선거 등 굵직한 현안이 가득한 시점이다. 29일 인촌기념관 법인이사장실에서 김정배 이사장과 2시간 가량 대화를 나눴다.

 

김정배 이사장은 기자의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다. “세종시 캠퍼스 지원책이나 총장 선거에 대한 관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쓸데없는 오해와 말썽이 생길까봐 말을 아꼈어요. 이제 취임 1년이 다가오는 데다, 총장 선거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해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취임 10개월
그는 2009년 7월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14대 본교 총장을 역임했다. 총장 시절 중앙광장과 지하주차장을 만들었고 강도 높은 직원 구조조정으로 칭찬과 비판을 모두 들었다. 그가 이사장으로 취임하자 학교가 어떤 식으로든 변할 거란 여론이 형성됐다.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그간 뭘 하셨습니까.” 이사장은 전략기획실을 설치했고, 재단이 집중할 만한 사업을 선정하면서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재단의 단기 목표를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음…. 캠퍼스의 시간과 공간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24시간 캠퍼스’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선 24시간 연구와 교육이 계속돼야 하는데 지금 그런 공간이 많지 않죠. 또한 현재 공간을 내부인만 쓰는 게 아니라 외부 사람에게도 개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아이스링크장과 덕소농장에 얽힌 오해
올해 2월 말 학교가 운영하던 아이스링크장 사업권을 재단이 회수했다. 덕소농장 또한 재단에서 관리하려 한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일부 학교 관계자는 재단이 학교가 잘 운영하는 사업을 빼앗지 말고 새로운 사업을 창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사장 이야기는 달랐다. “아이스링크장은 원래 재단이 운영했습니다. 학교가 맡아보겠다고 해서 잠시 운영권을 넘겼죠. 그런데 돈이 나오는 시설이라 서로 운영하려고 싸움이 납니다. 체육위원회 운동부 감독 선정 문제로 잡음이 잦은데, 이권이 걸린 아이스링크장 문제가 불거지면 또 얼마나 일이 복잡해지겠습니까.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재단으로 운영권을 가져왔습니다. 그후 체육위원회에서 추천하는 사람에게 아이스링크장 운영 책임을 맡겼습니다. 아이스링크장 수익은 재단이 다른 곳에 쓰지 않고 전부 체육위원회 발전기금으로 줍니다. 시간이 지나면 학교가 운영하던 기간과 재단이 운영하던 기간 수익을 비교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때 한 번 지켜보시죠”
“그럼 덕소농장은 어떻게 활용할 계획입니까?” “덕소농장은 교육기관이 아닌 순수한 수익기관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덕소농장 참기름은 질이 우수하지만 선물용으로 쓸 뿐 판매하지 못합니다. 재단에서 상품화가 가능한지 검토해 시장성이 검증되면 팔 계획입니다.” 김정배 이사장은 식품 수익사업이 재단의 장기 목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사장과 총장의 관계
고려대 발전의 세 축은 재단, 대학 본부, 교우회다. 세 축이 솥다리처럼 튼튼히 고려대를 받칠 때 학교가 발전한다.
김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일각에선 재단과 본부의 관계를 걱정했다. 김 이사장과 현 이기수 총장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이 돌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이사장은 웃었다. “낭설입니다. 이기수 총장에게 한 번 물어보십시오. 재단이 학교 발전을 돕고 있는지 막고 있는지…. 학교가 추진하는 사업을 전적으로 돕고 있고, 학교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차기 총장 선출
총장 인선 이야기를 건넸다. 본교 총장은 재단 이사장이 임명한다. 당연히 이사장의 사소한 의견도 총장선거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사장은 총장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우선 올해 총장선거에서는 큰 틀을 바꾸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네거티브 선거방식만은 올해 반드시 없애겠다고 말했다. “될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떨어뜨릴 사람을 뽑는 네거티브 선거방식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제도입니다. 총장 자격 논의는 단과대에서 총장 후보를 뽑을 때 끝내야 합니다. 경선 때 그렇게 헐뜯는 일이 대학에서 일어나면 안 됩니다. 이번 선거부터 네거티브 선거제도를 없애겠습니다”
이사장은 장기적으로 총장선출제도와 총장임기, 복무조건, 후보선정안을 개혁할 방침이다. “총장 임기가 꼭 4년이어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잘하는 사람은 두 번, 세 번 연임하고, 못하는 사람은 4년을 채우기 전에 그만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전략기획실에서 총장 중간평가제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또 고대 출신만 총장이 돼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총장에게 필요한 자질
그는 이어 총장이 갖춰야할 자질과 역량을 역설했다. “대학의 리더인 총장은 우선 학문에 상당한 조예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운영모금능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갖춰야 합니다. 국제화에 대한 안목과 임무를 완수하는 책임감도 필요하죠. 그러려면 가족에게 쏟는 애정의 백 배, 천 배를 학교 구성원에게 쏟아야 합니다”
세종시 새 캠퍼스, 약학대학 지원책
세종시에 새로 생기는 캠퍼스, 세종캠 약학대 설립을 위해선 재단의 지원이 필요하다. 세종시 새 캠퍼스를 마련하는데 드는 부지값만 1000억원 가까이 든다. 올해 약학대 신입생을 선발하려면 당장 100억원이 필요하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계획인지 물었다. “재단 소유 부동산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게 흩어졌던 부동산 중 키울 건 키우고 정리할 건 과감히 정리할 계획입니다. 갖고만 있던 토지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거죠. 재단에선 세종시 새 캠퍼스와 약학대학 설립 지원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단전입금이 낮은 이유
올해 교비회계 규모 상위 8개 사립대학 중 본교가 재단전입금이 가장 적다. 이사장으로서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다른 재단은 일반적으로 대학 수익금이 재단을 거쳐 대학으로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연세대 의료원은 재단 산하 수익업체입니다. 반면 고대 의료원 수익은 학교 수익금이라 재단으로 오지 않습니다. 보고만 될 뿐이죠. 이런 차이 때문에 재단전입금 규모가 적은 측면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재단도 다른 재단처럼 운영하려고 합니다”
이사장은 재단전입금 중 법인부담금 분야를 지적하기도 했다. “법인부담금은 교직원 퇴직금이나 학교 적립금에 보태라고 재단에서 지원하는 돈입니다. 저는 법인부담금이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재단에서 수익이 나면 학교에 전액 투자하는 건 당연합니다만 필요한 곳에 써야지 비효율적으로 써선 안 됩니다”


재단이 바라는 고려대 발전상
재단에서 생각하는 고려대 발전방향을 묻자 이사장은 ‘한 단계 진전된 국제화’를 언급했다. “외국 학자와 학생을 많이 데려오기만 한다고 국제화가 아닙니다. 숙박, 여비, 식사까지 제공하고 그들이 고려대에 적응하게 해야 합니다”
이어 외국인을 교직원으로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캠퍼스가 한국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국제화를 강조할 수 없습니다. 교수, 직원을 막론하고 적절한 인재가 있으면 외국인을 채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학생들이 재학 시절 국제화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중앙대 재단을 바라보는 시각
재단 이사장의 개혁 시도로 논란이 일고 있는 중앙대 사례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먼저 다른 대학 운영에 간섭할 입장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 뒤 조심스레 의견을 드러냈다. “재단이든 대학이든 조직은 변화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변하려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오죽했으면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겠습니까. 고려대도 문제가 있으면 과감히 뜯어 고치고 바꿔야 합니다”

포용하고 비우라
이사장의 좌우명은 해납백천(海納百川)이다. 모든 물길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포용을 중시한다.
고대신문과의 취임인터뷰(1619호) 때 해납백천을 권하던 그는 이번에 ‘비움’을 화두로 던졌다. 인터뷰 말미에 리더의 조건을 언급하던 대목이었다. “하나쯤 포기해야 합니다. 남 하는 걸 다 하려니 여유가 없고 초조합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골프를 치지 않습니다”

인터뷰가 끝났다. 총장으로 재직하던 10여 년 전부터 변화와 혁신의 대가로 그가 또 하나 포기한 것은 주변의 인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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