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드라마를 보면 응급실에 환자가 끊임없이 들어온다. 주인공은 대부분 외과에서 근무하고 잠 잘 시간도 없이 바쁘다. 의학 드라마와 실제 병원의 모습은 얼마나 다른지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차 채진언(의대 의학과03) 씨에게 들어봤다.

"4층 외과병동 중환자실 앞에서 뵈요"라고 말했던 채 씨는 그 통화 후 30분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채 씨의 얼굴은 매우 피곤해 보였다. 

 

레지던트의 오전

레지던트의 하루는 예상처럼 일찍 시작된다. 보통 새벽 5시나 6시에 기상해 7시 검진 브리핑 준비를 한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저는 아침잠이 많아서 6시30분에 일어날 때가 많아요. 그것 때문에 아침식사를 거를 때가 많죠(웃음)"  

브리핑 시간이 끝나면 8시부터는 오전 회진을 하면서 담당교수로부터 환자에 대한 조언과 지도를 받는다. 회진을 돌며 환자상태를 파악하고 회진 후엔 환자별로 상처, 수술부위 드레싱(dressing)과 환자상태에 따른 컨설트(consult)를 신청한다. 컨설트는 다른 과에 환자상태에 대해 조언 받는 일이다.

이렇게 모든 환자를 살피면 오전 일과가 끝나는데 환자 수에 따라 늦으면 오후 2시에 끝나기도 한다. 채 씨는 25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고 보통 한 레지던트가 10명에서 30명까지 환자를 맡는다.

당직근무

레지던트 1년차는 수술에 참여하지 않는다. 대신 주로 중환자실에서 당직근무를 서며 환자상태를 파악한다. 인터뷰 도중에도 휴대폰이 쉬지 않고 울렸다. "그 환자분은 디톡션 처방하시고 리튜브 한참 해주세요" 채 씨는 두 개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당직폰인데 하루 평균 전화 100통이 걸려온다.

"새벽에도 끊임없이 전화가 와요. 잠들어 못 받을 때가 많아 담당간호사 분들이 자주 깨우러 오세요. 원래는 당직실에서 근무해야 되는데 너무 졸리면 환자실 침대에서 잠깐씩 눈 붙일 때도 있어요. 다른 레지던트가 상담실 바닥에서 자는 걸 본적도 있죠" 

채 씨는 당직실의 모습을 보여줬다. 3평 남짓한 공간엔 화장실과 2층 침대만이 놓여 있었다. 열악한 근무환경이 느껴졌다. 침대에는 책과 옷가지가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권으로 시작했는데 쌓이다 보니 치울 엄두가 안나네요"  

레지던트는 처음 100일 동안은 외부로 나가지 못한다. 그 뒤로는 주 6일간 당직근무를 보고 하루 외출이 가능하다. "저는 운 좋게 5주 만에 나갔어요. 오랜만에 나가서 친구들과 밤새 놀다 다음날 아침 7시에 병원에 돌아왔는데 교수님하고 레지던트 3년차 선배님이 진료를 하고 계셨어요. 12시까지 쉴 수도 있었는데 차마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외과의 현실

그때 당직실에 채 씨의 룸메이트인 신경외과 레지던트 1년차 최고(의대 의학과03) 씨가 들어왔다. 최 씨는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왜 진언이를 인터뷰 하세요? CR(흉부외과)이라서요?"라고 물었다. 병원신임위의 레지던트 모집결과에 따르면 "레지던트들이 가장 기피하는 과" 1위는 흉부외과, 2위는 외과였다. 안암병원 흉부외과에도 레지던트는 3년차인 이은주 레지던트와 1년차인 채 씨밖에 없다.

"보통 과를 선택할 때 개인병원을 차리기 쉬운가, 수입이 높은가, 일이 편한가를 보는데 흉부외과는 세 가지 모두에 속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요. 정부에서 지원책으로 추가수당을 지급하지만 지원자가 늘지는 않아요. 기껏해야 5%정도 늘었을까요?"  

채 씨에게 왜 흉부외과로 지원했는지 물었다.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일을 하고 다른 과에서 넘볼 수 없는 부분의 일을 담당하거든요. 한마디로 병원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죠" 

레지던트의 오후

오후는 진료의 연속이다. 점심시간 이후로는 환자실을 돌며 환자들의 혈압, 호흡수, 맥박, 산소포화도 같은 생체징후를 확인한다. 생체징후가 불안정한 환자가 발생하면 몇 시간동안 그 환자에게 시간을 소비하고 심하면 일주일 동안 한 환자에게 집중하기도 한다. 환자 파악이 끝나면 담당교수와 함께 오후 회진을 돌며 환자에게 처방할 약과 다음 날 쓸 처방에 대해 조언을 받는다.

"5시쯤 다음 날 처방할 약을 정하고 오늘의 처방전을 작성하고 나면 심적으로 여유가 좀 생겨요. 드라마를 보면 응급실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는데 실제는 일주일에 한 두건 정도에요. 매일같이 응급상황이면 저희도 못 살죠"

의사가 된 이유

채 씨는 원래 2001년 본교 공과대학에 입학했다가 2003년에 의대로 재입학했다. "공대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기업에 어울리는 성격도 아닌 것 같았어요"  

의사가 되기로 한 것을 후회하지 않냐고 물었다. "주위에 레지던트나 전문의가 되고서도 그만두는 사람이 10%는 되요. 다른 과로 가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하는데 저도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요. 눈앞에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을 때 다른 사람보다 대처를 잘 할 수 있다는 게 어디에요. 위급한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보람도 느끼고요"

당직폰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진료하러 가는 채 씨의 뒷모습은 피곤해보였지만 열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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