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강승리 기자 noside@kunews.ac.kr
미국은 세계 최고의 금융 강국이다. 미국 전역에 있는 은행은 8400여개가 넘는다. 이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전을 하고 있는 한 은행이 있다. 윌셔은행(Wilshire Bank)이 바로 그곳이다.

윌셔은행의 자산규모를 미국은행 중 상위 3%로 키우고, 자산·자본 수익률을 소규모지역은행(Community Bank) 1위로 높인 장본인은 조앤 킴(영어영문학과 73학번, 본명 임종화) 은행장이다. 1978년부터 30년 간 은행업계에서 일한 그녀는 정작 학창시절엔 금융을 배우지 못했다.

2월 9일, LA에 위치한 윌셔은행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윌셔은행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처음 미국에 온 1978년엔 한국인 은행이 가주외환은행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곳에서 일하다 1980년대 윌셔은행이 설립됐을 때 입사해 7년을 일했어요.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 1999년에 같이 일하던 선배와 함께 스카우트돼서 돌아왔죠. 그 선배가 은행장으로, 제가 보좌격으로 왔어요. 그때 윌셔은행 자산이 2억 4000만 달러, 지점이 4개였는데 10년 만에 자산을 12배, 지점은 23개로 키웠죠. 그리고 2008년부터 은행장을 맡았어요.

윌셔은행의 급성장 비결이 뭔가요
뭐니 뭐니 해도 실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아무리 줄을 잘 타도 흔들려요. 실력은 누가 갖다 주지도 않고, 돈으로 살 수도 없어요. 오직 노력이 결정하죠. 노력하면 실력이 늘고, 실력이 늘면 직원이 따라와요. 지금은 직원이 제가 말한 걸 일일이 메모할 정도입니다. 그러면 조직이 발전하지요.

전공이 금융과 무관한데요
그게 저를 겸손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더 노력했어요. 경영학 석사학위도 없고, 경제·경영도 공부 안 했으니 어떡하겠어요. 배운 사람을 찾아가서 배우고, 야간 은행학교(Banking School)나 학술회의에서 배웠어요.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니 실력이 빨리 늘고, 또 경영자가 배우려는 자세가 있으니까 직원이 따라와요. 지나고 나서 보면 비결은 없었고, 그저 죽어라고 열심히 했어요. 

해외로 나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일자리를 구하려던 시기에 한국의 은행에서 여자를 처음으로 공개채용했습니다. 당시엔 은행에서 여자가 일할 자리가 비서 말고 없었어요. 비서는 도저히 못 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사귀던 사람이 미국으로 가자고 해서 같이 왔죠. 그리고 1달 만에 가주외환은행에 취직했어요.

미국은 남녀차별이 없었나요
참 심했어요. 남자가 10개를 하면 여자는 13~14개를 해야 같은 취급을 해줍니다. 집안일도 하고 아이도 챙겨야 했어요. 남자들이 저녁에 나가서 술 먹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자기 실력을 키워야 했죠.
윌셔은행 첫 여성은행장인 옛 상사를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여자로서 어떻게 경력을 쌓아야 하는지 많이 배웠어요.
지금은 윌셔은행 직원 80%가 여자에요. 그들은 저를 쳐다보고 있어요. ‘여자 행장이라서’란 비판을 듣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응원단 출신입니다. 그 때 경험이 도움이 되는지
물론이죠. 은행 업무에서 협상이 중요한데, 협상에 필요한 담력을 응원단에서 배웠어요. 처음 전교생 앞에서 공연을 했을 땐 떨려서 죽을 뻔 했죠. 그래도 하고 내려오니까 겁이 없어졌어요. 다음부턴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을 즐길 수 있었어요.

글로벌 프론티어 스피릿을 내세우며 국제화를 추구하는 본교에 한마디
‘민족고대 100년, 세계고대 1000년’ 같은 거창한 비전만 세우기보다 ‘지금’에 좀 더 충실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에 충실하지 못하면 100년 필요 없고, 1000년 필요 없거든요. 개인도 마찬가지에요. 오늘 최선을 다해야 나도 발전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무엇을 줄 수 있습니다.
또 더 많이 해외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길이 있고 기회가 있어요. 굳이 한국이란 사회에서 피터지게 경쟁할 필요는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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