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들이 국내서열을 다투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수준의 대학을 지향하고 나선다니 희망적이다. 국내 몇 위건 세계 몇 위건 대학순위 매기기의 타당성과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지만.

한국의 대학들은 대체로 미국의 아이비리그 Ivy League 대학들을 세계수준의 모범으로 삼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미국 동부 명문대학들조차 애초에 본으로 삼았던 이른바 명문대학의 원조는 영국의 옥스브리지 (Oxbridge: 옥스포드Oxford와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을 함께 일컫는 말)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정작 옥스브리지는 근래 들어 위기를 호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명문의 지위를 굳건히 지탱해 주던 엘리트교육모델이 정치적 논란에 휩쓸려 있는 한편으로, 미국명문대학들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빈약한 대학재정의 문제 또한 심각해져가고 있다.

옥스브리지는 대학교육의 기회확대를 교육개혁목표의 하나로 삼은 현 노동당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부유한 사립학교출신학생을 우대하는 차별적인 입학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졸지에 개혁대상으로 몰린 옥스브리지 대학당국은 노동당 정부가 날로 악화되어가는 공교육현실과 대학발전을 위한 재정지원 실패를 덮기 위해 옥스브리지를 폐쇄적인 엘리트집단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불만이다.

몇 해전 우수한 성적의 공립학교 출신 여학생이 옥스포드대학에 불합격된 뒤 하버드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 불거진 옥스브리지의 공립학교 차별논란은 정상적인 입학심사절차를 거친 결과였음이 해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았다. 도리어 정부가 옥스브리지에 대해 등록금의 대폭인상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그 엘리트 이미지를 걷어내고 입학절차를 보다 공정하고 개방적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양한 계층출신 학생들에게 대학교육기회가 널리 허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명문대학의 폐쇄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높은 학비부담의 문제인 측면이 더 크다. 그렇기에 정부가 대학재정지원과 학비보조제도를 확대하는데 애쓰기 보다는 등록금 현실화를 추진하면서 옥스브리지의 엘리트 이미지를 스캔들 삼아 등록금인상에 대한 비난을 피하고자 한다는 지적도 이유있다. 정작 영국대학교육의 문제는 소득격차에 따른 학생들의 학력차이로부터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초중등교육에서 공사립학교를 가릴 것 없이 학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성취에 심각한 불평등이 엄연한 현실에서, 옥스브리지의 우수학생선발제도를 차별적이라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물론 영국에서는 대학개혁이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 온 전통이 있다. 정치적 노선을 불문하고 역대 정권들은 대학이 사회진보의 역할을  일정부분 맡아야 한다고 여겨왔다. 전 국민의 절반이 대학교육의 혜택을 받게 하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도 그렇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의 인력과 재정 형편이 별달리 나아지지 않는가운데 정책적인 요청이 앞서다보니, 평생교육 내지 직업훈련을 위해 대학교육의 본질은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대학전반의 위기 앞에 팔백년전통의 옥스브리지도 예외일 수가 없는 셈이다.

대학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식기반을 일구고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하면서도 고유의 학문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되 대학의 자율성은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자기개혁을 게을리 하지 않을때 비로소 명문대학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그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음을, 명문대학의 원조 옥스브리지가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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