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0여일째다. 멕시코 만 사고가 좀처럼 수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기름유출 봉쇄에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고 있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다국적 석유기업 BP는 새로운 차단 돔 ‘톱 햇 10’을 사고 유정의 분출방지장치에 성공적으로 연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연결된 차단 돔은 압력 테스트를 통과해 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 날마다 약 1,600만 리터씩 흘러나오고 있는 원유를 일단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아직 안도하기는 이르다. 새로운 차단 돔의 설치가 유정에서 흘러나오는 기름 유출을 근본적으로 막는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고 유정의 밑바닥에서 원유 유출을 차단하는 감압유정 설치에 성공해야만 유출되고 있는 기름은 완전하게 차단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4월 20일 멕시코 만에 인접해있는 미국 루이지애나 주 남부 45마일 해상에서 원유탐사 작업을 하던 딥워터 호라이즌 호가 폭발을 일으켜 침몰하면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흘러나온 기름의 양으로 보면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로 평가 받아 왔던 엑손-발데즈 호 사고를 훌쩍 넘어선 상태다.
유출된 기름으로 초래될 생태계 피해 규모는 아직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다. 미 당국은 조류 934마리, 거북이 380마리, 돌고래 등 포유류 46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파괴된 바다생태계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피해 지역이 넓기 때문에 미처 발견되지 않았거나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동물들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지점에서 불과 67㎞ 떨어진 미 남부 루이지애나 인근 섬들과 늪지대는 바다거북 ‘켐프스 라이들리’를 포함해 모두 600여종의 생물이 살고 있는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지구상에서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인 ‘켐프스 라이들리’는 이미 207마리가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세계 최대 해양생물 서식지인 브레튼 국립 야생생물보호구역 가운데 최소 10곳에 원유가 밀려들었다”며 “이 일대가 조만간 ‘킬링 필드’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름 유출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생태계를 파괴한다. 먼저 유출된 기름은 바다 표면에 얇은 피막을 형성해 햇빛과 산소를 차단해 사고 해역을 ‘죽음의 바다’로 만든다. 또 바닷물과 섞인 기름은 무거운 덩어리 상태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박테리아의 성장을 억제함으로서 플랑크톤이 살 수 없게 만든다. 플랑크톤이 타격을 받으면 바다생태계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
생물들이 기름이나 유해성분에 직접 노출되면서 죽는 경우도 있다. 원유처럼 점도가 높은 기름에 노출되면 바닷새는 깃털의 방수와 보온능력이 떨어져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1989년 미국 알래스카 해안 2,000㎞를 오염시켰던 엑손 발데즈호 사건 당시에도 초기 6개월간 30만~67만 마리의 바닷새와 3,000~5,000 마리의 수달, 253마리의 대머리 독수리가 비슷한 경로를 통해 희생됐다. 이는 이 지역에 살고 있던 해당 동물 개체수의 10%에 달하는 것이다. 물고기와 달리 이동능력이 없는 패류 등 저서생물들은 특히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아 살아나더라도 번식력과 산란율이 현저히 떨어져 생태계를 장기적으로 교란시킨다.
이번 사고로 환경영향평가 무시, 관련 당국의 늑장 대응, 석유회사의 환경파괴 비용 부담 회피 등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심해원유시추를 금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도 뜨거운 쟁점이다. 사고가 수습된다 하더라도 재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멕시코 만 해저에는 석유회사들이 유정 개발 과정에서 포기하거나 채산성이 맞지 않아 방치한 유정이 27,000개 이상 존재한다. 유정과 가스정이 오랫동안 바닷물에 노출된 상태에서 압력을 받으면 시멘트나 연결관이 부식돼 기름이 유출될 수 있다.
현재의 정치 및 경제구조 속에서 원유유출로 인한 재앙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석유문명의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으로 신속하게 전환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일까?

안병옥 기후 변화행동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