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강도 높은 대기업 비판에 나선 이후 총리와 장관들의 유사 발언이 줄을 잇고 있다. 기업인들은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연일 중소기업 상생 대책을 급조해냈다. 총수들을 앞세운 협력업체 방문 사진도 신문지상에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찌는 듯한 더위에 긴소매 점퍼를 입은 총수들이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함께 상생을 약속하며 악수하는 사진은 한눈에 봐도 어색하지만 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관계를 이뤄야한다는 정부의 명제는 일단 옳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허우적대던 우리나라를 수렁에서 건져낸 것이 사상 최대 수출실적을 낸 대기업 덕분 아니었냐는 기업의 반론도 옳다.

문제는 ‘정부가 대기업을 이만큼 도와줬는데 왜 중소기업과 과실을 나누지 않느냐’는 정부의 주장이다. 위기 때 펼쳤던 정부가 내놓았던 정책들이 과연 대기업에만 차별적으로 혜택을 준 것이었냐는 말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정부는 정책금리를 사상 최저수준까지 내려 경기부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최장기간 유지됐던 초저금리 정책은 대기업에 차별적 이익을 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에 상대적으로 더 큰 이득이 돌아갔다. 대기업은 금융위기 이전부터 현금유보율이 높았기 때문에 이자 싼 돈에 대한 큰 매력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화정책 완화를 통해 신용경색에 적극대처하면서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은 확실히 지연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향후 금리가 오르면 얘기는 달라진다. 현금을 쌓아놓은 대기업이야 문제없겠지만 빚으로 견디는 중소기업들은 매달 이자 갚기도 힘들어져 결국 퇴출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정부가 이때를 대비해 미리 중소기업 상생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다. 다만 서민경기가 지표경기보다 안 좋다고 해서 인기 위주의 발언만 늘어놓은 것이라면 기껏 살려놓은 경기 불씨마저 꺼뜨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경기부양을 위해 구조조정을 미루느냐, 구조조정을 위해 경기부양을 늦추느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경제정책 당국자들의 고민이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위해 대기업을 비난하면서 중소기업에 혜택이 주는 척 하는 것이라면 정부는 이 숙제를 잘못하는 것이다. 경기는 정권의 인기와 직결되며, 더욱이 반환점을 돈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힘쓸 수밖에 없다. 하루살기가 힘겨운 사람들은 윗목의 온기가 아랫목에도 내려오기를 바라고, 한 표가 아쉬운 정권은 그에 맞춰 인기 위주의 시책만 고를 것이다. 머리를 버린 가슴만의 정책, 그게 바로 무책임한 포퓰리즘 아닌가.

인기(人氣)가 허기(虛氣)를 면해주지는 못 한다.

<雲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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