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고대신문>을 좋아해 방학호에 많은 기대를 했다. 이번 방학호에는 방학 중인 학우들을 위한 노력이 드러났다. 방학중 학교에서 일어난 일과 중요한 학사 일정을 알려주고 서울 근교의 좋은 여행지를 소개해 학우들이 방학 중 무료함을 달랠 수 있게 했다. <고대신문>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러나 실망한 부분이 한 가지 있다. 안암병원 미화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다룬 11면이다.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다룬 11면에는 두 기사가 있었다. 미화노동자의 하루를 다룬 기사와 미화노동자들의 요구와 병원의 해명을 다룬 기사다. 미화노동자의 하루를 다룬 기사에서 미화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하지만 기사의 분량도 적고 작은 곳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말았다. 미화노동자의 하루에서 우리가 보고 싶었던 것은 미화노동자의 시각이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는 미화노동자의 시각을 찾기가 어려웠다. 미화노동자의 하루를 정밀 묘사하듯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미화노동자와의 인터뷰를 쓰는 것이 미화노동자의 시각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화노동자들의 요구와 병원의 해명을 다룬 기사에서는 <고대신문>이 안암병원을 대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기사는 미화노동자의 요구 다음 병원의 해명을 쓰는 형식이었다. 또 불충분한 병원의 해명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므로 병원의 입장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인해 독자들은 미화노동자들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미화노동자가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왜 병원은 이런 대우를 해왔는지, 여러 사람이 불편을 겪을 것을 알면서도 노조가 움직이려는지 기사를 통해 근본적인 내용까진 알 수 없었다. 미화노조와 병원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기사를 쓰는 것보다 쟁점별로 분석하여 제시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고대신문>은 편향성과 형평성을 신경 써서 중립적인 사실만을 전달하는데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태도는 그렇게 좋다고 할 수 없다.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다. 중립적으로 사실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중립적인 시각이 한쪽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고대신문>은 고대의 모든 가족을 위한 신문이다. 때문에 <고대신문>은 가족의 어려움을 알고 여러 사람들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고대신문>이 사실뿐 아니라 진실을 전하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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