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전시회는 끝난 뒤였고/ 앞마당엔 비둘기 대신 닭들이 뛰어 놀더라/ 봄에나 와보라는 관리인의 말을, 등으로/ 약속하면서/ 다시 또 오게 될까/ 의심하면서"〈‘가을 3’-성북동 간송미술관〉

대외적 홍보를 꺼리며 전시 기간은 일년에 딱 두 번, 그 후엔 일반인의 미술관 진입을 막는 보수적인 곳. 새파란 5월의 초여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간송 미술관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현재 봄 정기전이 한창이다.

어제(18일)를 시작으로 다음달 1일(일)까지 2주의 짧은 기간 동안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근대 회화 명품〉이란 주제로 동양화와 한국화 등의 근대회화 작품을 통해서 그 당시 지식인들이 근대시대의 혼돈에 어떻게 대처했고 반응했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근대의 시발점을 추사 김정희로 설정하고 추사의 직계 제자였던 오원 장승업부터 오원의 학풍을 계승해 근대 회화의 토대를 이룬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의 작품 등까지  접할 수 있다. “전통화풍의 고수와 외래학풍의 수용이라는 상반된 진로를 놓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뚜렷한 이념적 기준 없이 각기 부침 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시대를 살면서 각자의 방식대로 그림을 그렸다”는 전영우 연구소장의 말처럼 인터넷 등지에서 취화선 또는     자의 대표 인물로 인식되는 오원 장승업의 작품을 보면서 당시 그의 진지한 고민을 함께 생각해 보는 자리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호림 박물관ㆍ호암 박물관과 함께 국내 3대 사립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는 간송 미술관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예식 전 충청북도정책보좌관은 “고유섭, 송석하가 유ㆍ무형의 문화 유산을 학술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해 우리의 뿌리를 잇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면 간송 전형필은 개인적인 상속재산을 이용해 문화재 수집과 보호에 심혈을 기울인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간송 미술관은 전시회를 열어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5월과 10월 이외에는 전시실은 물론 미술관 내에 일반인의 출입도 제한한다. 이에 대해 백인수 한국미술민족연구소 연구위원은 “간송 미술관은 전통미술을 연구하는‘연구기관’이다”라고 강조한다. 전시 기간 외에는 한국미술민족연구소(소장=전영우)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백인수 연구 위원은 ‘보존→연구 작업→전시’의 순서를 언급하며 간송 미술관은 전시 전 작업인 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에 전시횟수가 적다고 설명한다. 현재 대부분의 미술관은 충분한 연구작업을 거치지 않은 이벤트성 전시가 많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국내 3대 사립박물관의 하나인 호암미술관의 경우에도 간송 미술관처럼 개인이 수집한 문화재로 세운 미술관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운영 목적은 다르다. 호암미술관 이정진 홍보교육 담당자는“간송 미술관에 비해 연구 작업은 상대적으로 적은것이 사실이지만 분야별로 연구원이 배치돼 일년에 연구논문집을 두 차례 발간한다”며 “서울의 호암 갤러리와 호암미술관은 공공성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연구 성과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미술관의 사전식 정의는 미술품을 보관하고 전시해 일반의 감상과 연구에 이바지하는 시설이다. 유명한 미술관은 교통이 편리하거나 안내가 잘되어 있다. 그러나 간송 미술관은 지하철역과 가깝지도, 최신식 건물도 아니며 안내직원도 하나 없다. 정원 한가운데 자리잡은 전시관의 찾기 힘든 입구는 그동안 간송 미술관의 폐쇄성이 묻어나기도 한다. 벌써 64회째 전시를 맞는 간송 미술관. 공개보다 연구사업에 치중함에도 불구하고 전시회의 명맥이 끊기지 않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직접 방문해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